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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기적이 말씀묵상을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오늘 되게 하소서[눅4:31-4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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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기적이 말씀묵상을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오늘 되게 하소서[눅4:31-44]

주하인 2025. 2. 17. 23:04

부제)성령의 권위와 능력의 말씀을 사모하는 매일

       가장 큰 기적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만 기뻐할 수 있음이다

      그게 '진정한 가버나움의 기적'이다.

이래도 좋다..말씀을 통한 성령의 능력 안에 있을 수 있다면..(Chat GPT)
이게 좋다..말씀을 통해 성령의 능력 안에 있을 수 있으니..(Chat GPT)
가버나움의 기적, 부활체로 되면 지금의 나도 이런 늘 평강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려나? ^^*(뤼튼)

.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갈릴리의 '가버나움'에 대하여 

아래에 정리해 놓은 바 처럼

예수님 공생애의 주요 활동 무대이시기도 했고

베드로등 제자들이 발탁된 곳이며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대표적 장소이기도 했다한다. 

 

 그곳에 '내려오사 '.. '가르치시매'라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는 까닭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기적이나 이적을 위주'로 하여

사람들을

'믿으면 성령 충만해지고 성령 충만해지며 그러면 기적과 치유가 일어나니 믿어라''라는

그런 일차원적인 것 보다는

그냥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그리고 '성경을 읽고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가운데 ' 나타나지는

성령의 역사가 더 주안점이시라는 것을

의미해 보이심은 아닐까?

 

 특히 내게.. 

 

"기적과 치유는.. 당연한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그 자체'이시며

그러다보면 어느새

치유와 기적들이 일어날 것이다" 라심 처럼 들려온다 .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보라.

32절과 36절을 공히

'그들이', '다'

'놀라니', '다 놀라' 라고 나온다. 

 

 자연스러운 놀라움.

어제 말씀에 이어지는 것 처럼

성령의 능력에

사람들이 놀라지만 

그 놀라움을 '안식일에 성경을 읽는 자연스러운' 일로 보여주시지 않았던가?

 

오늘도 그렇다. 

'모두 놀라고 놀라는 대상이'

기적을 굳이 보이지 않아도 기적과 같은

'권위'와 '능력'으로 알게 되는

'말씀을 가르치심'에 있지 않던가?

 

 그렇다.

그래서 다시한번 확인 해 봤다.

Chat GPT에게. ,,^^;

비슷한 생각이었다. 

권위나 능력이 '카리스마'로 표현되는 

단지 위용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전하는 데 어쩌면 나타나는 '표현하지 못할 권위' 와 더불어

말씀을 듣다가 나타나는 어떠한 변화, 치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러함이 모두 합쳐져 

놀라운 '권위와 능력'으로 표현되는....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공통된 단어 중 하나가 '말씀'이다. 

어제도 

계속 성경의 핵심 내용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지어진 것이고

'성경의 말씀은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야기...

 

 당연하다.

가장 중요하고 귀한 '기적과 권위'는 성경에서 나온다. 

글자로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임할 때

성경이 말씀이 되어지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되어지시는 그 원리.

그러함으로 

성경을 읽음은 필수의 필수이고

일상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서

성령으로 충만함이 되어

그 분의 '권위와 능력'을 

자연스레이 경험하며

기적과 이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귀한 믿음의 태도이자

오늘 해야할 주님의 말씀의 포인트, 레마가 아닐까?
 

감사하다. 

깨닫게 하심이.. 

 

 

 주님.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주님 아시는 것처럼

제게는 '깊은 , 오래된' 어려움이 잔존해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자주 .. 아직도 남은 힘듦으로 

절 내리 누르려함을 느끼고 있으며

그럴 때.. 어렵습니다. 

 

주님.

어제도 그랬습니다. 

앞을 내다보아도 '그렇게 라면.. 많이.. ' 할 만큼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역사하셔서 이렇게 말씀으로 성령으로 인도하심에도

아직도 이러함은 

내가 오인...하는 것... *&^%$... 하면서

순간 어두움이 혼돈스럽게 하려 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럴때 강력한 '가버나움의 기적'은 

정말 제게 필요한 듯 하였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열병이 떠나가고.. 귀신이 물러가고 .. 요.

 

 주님.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놀라운 기적과 치유는

말씀의 권위와 능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며

사람들이 놀라고

스스로도 경이로울 일의 근본은

'말씀'을 근거로 흐르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라고요.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가 또 '놀랍고 경이로운 하루' .. 

주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충만한 하루일 수있으며

어제의 그러함이 

놀랍고 경이로운 하루 였을 것임을 

다시한번 깨우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밤바다의 풍랑이 

아직도 치면 어떻고

벌써 멈추었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제게는 '예수님의 등'이 보이고

제가 주님의 평강 안에 있고

주께서 제 인생의 배, 영혼의 지성소에 임재하셨음을

제가 알고 느끼고 감사하며 놀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나이까?

 

이 당연한 진실,

이 당연하고 당연한 사실이

더 이상 하루의 삶속에서 왜곡되거나 오염되어 흔들리는

그래서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사는 

제 실재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

 

거룩하고 귀하신 내주여.

늘.. 성경을 더 읽어야 겠습니다. 

아직도 제 관심을 끄는 세상의 문제들이 많고

아직도 번연히 남아 고민하게 하는 두려움들이 잔존하여

저로 썩어가는 , 괜한 관심들로 끌려가지 못하게 하소서.

이전.. 

제 주님의 영접 하자마자 보이셨던

그 '금연의 기적'..

불면증의 해소.. 

그 안에 숨어있다 '순간 쫓겨났던' 그 어두움의 잔재들이

더이상 놀라 근처에 오지도 못할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 중독적 성향이 교묘히도 

저를 세상으로 다시 끌어내지 못하도록

'가버나움의 자연스러운 기적'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느끼도록 다시한번 붙들어 주소서.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가버나움에 대하여 ))

 

가버나움(Capernaum)이란?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활동 무대가 되었던 갈릴리 지역의 도시입니다. 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하며,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가르치셨던 장소입니다.


1. 가버나움의 위치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현대의 갈릴리 호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 현재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텔 후름(Tell Hum) 지역이 성경 속 가버나움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 예루살렘에서 약 150km 정도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요르단강의 상류 지역과도 가까운 곳입니다.
  • 어업과 무역이 발달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비교적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활동과 가버나움

① 예수님의 거주지이자 사역의 중심지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자라셨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의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으니"

즉,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공식적인 사역 본부’ 역할을 했던 도시였습니다.


② 제자들의 고향

예수님의 중요한 제자들 중 몇 명은 가버나움 출신이었습니다.

  •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 어부 출신 (막 1:29)
  •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아들들) → 어부 출신 (마 4:21)
  • 마태(레위) → 세리 출신 (마 9:9)

가버나움은 갈릴리 지역에서 중요한 어업과 상업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의 세관도 있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③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일어난 곳

가버나움에서는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1)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치심

  • 한 로마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말씀만으로 고쳐주심 (마 8:5-13)
  •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심

(2) 중풍병자를 치유하심

  • 네 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냈고,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고쳐주심 (막 2:1-12)

(3)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심

  •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치유하심 (막 1:29-31)

(4)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심

  •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며,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능력을 보여주심 (눅 4:31-37)

이 외에도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가버나움에서 치유하셨습니다.


3. 가버나움 회당

현재 가버나움 유적지에는 회당(Synagogue) 터가 남아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회당은 1세기 때 존재했던 것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4세기에 재건된 것입니다.
  • 그러나 기초 부분은 예수님 시대의 회당 터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사람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전하셨던 곳이 바로 가버나움입니다.


4. 예수님이 가버나움을 책망하신 이유

가버나움은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복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3-24
"가버나아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즉,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은 도시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5. 가버나움의 현재 모습

오늘날 가버나움 유적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1. 고대 회당 유적 –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곳으로 추정
  2. 베드로의 집 유적 – 초대교회에서 순례지로 여겼던 곳
  3. 갈릴리 바다 근처 유적 –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역했던 지역

현재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성지순례 장소가 되어 있습니다.


6. 결론 – 가버나움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중심 사역지였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버나움 사람들처럼 단순히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을 듣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믿음과 회개가 동반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버나움에서 일어났던 기적들이 우리의 삶에서도 역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 누가복음 4장 32절의 ‘권위’란 무엇인가?))

"[눅 4:32] 그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음으로 무리들이 놀라더라."

여기서 말하는 **‘권위(ἐξουσία, exousia)’**는 단순한 ‘카리스마’나 ‘강한 말투’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담긴 신적 권세와 능력을 뜻합니다.


1. '권위(ἐξουσία, exousia)'의 의미

헬라어 **ἐξουσία (엑수시아)**는 단순한 인간적인 권위(Authority)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신적 권세(Power, Divine Authority)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순한 교사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진리가 담겨 있었고, 그것이 듣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살아 있는 힘’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권위를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학자들이 가르치는 전통적인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2.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차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 율법학자(라비)들은 보통 “어느 라비는 이렇게 말했다.” 또는 **“율법에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라며 사람들의 해석과 전통에 의존한 가르침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권위로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 산상수훈에서도 "옛 사람에게 말한 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마 5:21-22)
  • 귀신을 쫓아낼 때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막 1:25)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율법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권능이었습니다.


3. 성령의 능력과의 연결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

예수님의 권위는 단순히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깊이 연결된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눅 4:14-15에서 예수님이 갈릴리에 돌아오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in the power of the Spirit)" 돌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의 능력이 직접 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그들의 영혼을 흔들 만큼 살아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4. 우리의 삶에서 ‘권위 있는 말씀’을 경험하는 방법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같은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이 깨닫게 하심’
    • 때로는 어떤 말씀이 너무나 분명하게 다가오고, 우리 삶에 직접 적용되는 것을 느낌
    •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냥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속에 직접 부딪히는 힘을 경험함
  2. 기도할 때 주어지는 확신과 평안
    •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실 때,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이것이 진리다"**라는 확신이 생김
  3.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는 삶의 순간들
    • 어떤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느껴지고
    • 이후에 그 말씀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성취됨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감정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며, 살아 있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5. 결론: 예수님의 권위는 성령의 역사이며, 오늘도 말씀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누가복음 4:32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란 것은 단순한 설교 방식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게 하십니다.

주하인님이 지금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살아 계신 증거를 느끼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항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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