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시몬의 배 ,주하인의 배 & 베드로의 배[눅5:1-11] 본문
부제) 시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날떠나소서
베드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니 날 떠나지 마소서
시몬의 배, 내 배 & 베드로의 배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게네사렛'호수가 '갈릴리 호수' 란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
시몬이란 이름이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과 더불어
총 6번이 나온다.
다른 이들은 한번 이나 무리에 뭉쳐져서 나오는데..^^;
'세상적인.. ' 아직은 '세상'의 사람이었던 시몬을
그처럼 사랑하신다.
예수께서...
나.
그래서 구원 받았다 .
아직까지 내 안에 남아 있는 '시몬'적 부분까지도
이처럼 사랑하신다.
내가 나를 사랑해도 될 이유.
주님이 사랑하시고 사랑하시며 또 사랑하시고....하신다.
#2.
시몬이 사랑 받는 이유가 나온다.
5절 '말씀에 의지하여' 라지 않는가?
말씀 묵상을 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
그들을 기뻐하시고 이뻐하고 사랑하신다.
내가 그렇다.
아직도 진득히도 묻어 있는 세상의 흔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난 .. 말씀을 정말 사모한다.'
#3. 시몬의 배.
3절 시몬의 배는 '무리'를 가르치시는 '배'가 되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시몬의 배'가 될 수 가 있다.
'시몬의 배'에 앉아서
말씀을 전할 때
마이크가 없던 그 시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웅웅대며 모든 사람의 귀에 꽂히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을 거라고
옛날 묵상에 쓴적이 있다.
하지만 AI에게 물었더니
물 위에서 말하면 '음파가 잘 들린다' 한다.
그 지점에
그렇게 '시몬'의 배가 있음,
그를 위해 쉽게 주님께 내어준 시몬...
그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시몬..
모두 '어딘지 내 경험'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
나를 구원하신 것은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지점이었다.
'이 블로그'에 20년 넘게 써 놓은 간증들... 불신의 시간들... 말이다.
그러나..
그 '시몬' '시몬' 시몬.. 같던 거칠고 날것의 나를
내 삶속에서
내 삶의 행동 양식
내 삶을 이루어가는 일터 , 가정에서 '구원'하시고 이끄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4.
8절에 '시몬베드로'라 잠깐 나온다.
시몬과 '베드로'가 잠깐 영화의 한장면처럼 찌리릿 하고 교차되는 지점처럼..
그의 영적인 옳은 지점.
날 사랑하셨던 이유.
내 특질.. .
거칠고 .. 뭐 그렇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까지 이렇게 걸어오고 서게 될 줄
주님은 다아셔서
'영원 전 부터 나의 시몬이자 베드로인 면'을
깊이 기뻐하셨던 거다.
그 기뻐하시는 '시몬'의 특질..
베드로로서의 시몬의 특질이 8절에 나온다
기뻐하고 날뛰어도 무방한 시점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한다.
여러 신학적 해석이 있다.
아래에 정리 해놓았다.
#5
그외에도 많이 정리해 놓았는데
다 날아 났다.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저를 떠나소서.. 했던 시몬대신
저는 '죄인이지만 그러기에 더 떠나지 마시고 절 이끄소서' 하는
'베드로 '되길 원합니다.
주님.
시몬의 배로 대표되는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생의 터전'들을 통하여
'무리를 권면'하시고
등 뒤에 듣는 시몬을 '베드로'로 일깨우시듯
저를 완전히 '주하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 부족하고 열등감 많았던 '인생의 배'를
주님 쓰셔서
저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이 특별하고 특이한 삶 조차도
하나님 다 아시고 인도하심을
다시금 기대하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여.
잊지 않게 하시고
시몬이 베드로로 된 것처럼
저도 더 완전한 '주하인' 되도록 도우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Chat GPT로 정리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의 이유, 신학적 분석
베드로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한 이유에 대해 일반적인 설교에서는 보통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
1.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깨달음 (이사야 6장과의 연결)
보통 이 장면을 이사야 6장 5절과 연결해서 해석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친 것처럼,
베드로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체험하면서 자신의 죄성을 깨달았다는 해석입니다.
즉, 베드로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신적 권위를 직감했고,
그 거룩함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죄인 됨을 깨닫고 겸손히 엎드렸다는 것이죠.
예시 설교: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
2.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절감 (교만한 마음의 무너짐)
베드로는 베테랑 어부였고, 자기 방식과 경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새 한 마리도 못 잡다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을 때 엄청난 고기를 잡음.
이 순간 자신의 무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스스로를 믿었던 교만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예시 설교:
➡️ “우리는 종종 내 경험과 실력을 의지하며 삽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3. 은혜를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감 (자격지심, 낮은 자존감)
베드로는 어부였고, 당대의 기준에서 볼 때 학식이 높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기적)를 받은 것을 보고
“이런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기적을 체험해도 되는 걸까?” 하는 부담을 느낀다는 해석입니다.
즉, 너무 큰 사랑과 은혜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고 죄책감이 든 것이죠.
이 해석은 자존감이 낮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예시 설교:
➡️ “베드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떠나지 않으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가기 부족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십니다.”
주하인 님이 공감하는 부분: 낮은 자존감과 하나님 앞에서의 반응
주하인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기적을 체험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무엇이기에 주님이 나를 이렇게 찾아와주실까?”
라는 마음과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정체성을 바꾸고 사용하셨습니다.
주하인 님도 마찬가지예요.
주님은 주하인 님이 어떤 모습이든 끝까지 함께하시고, 결국 멋지게 사용하실 겁니다.
---
결론: 베드로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죄성을 깨닫고,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 앞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새로운 사명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님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시면 됩니다.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주하인 님을 향한 큰 계획과 사명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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