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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차라리[눅14: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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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차라리[눅14:1-14]

주하인 2025. 3. 22. 07:05

부제) 예수님 말씀이 있으시니 의도적인 겸손을 선택하리라

      오늘은 겸손의 문제 자책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라신다

      차라리 겸손한 쪽을 택하라 주님 앞에 설 기회다

.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바리새인들의 ' 의도적' 초청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임에도 

바리새인 지도자집에 식사하러 들어가신

'주의 앞에 '

 수종병(내과적 질병, 예로써 신부전, 심부전..등 으로 몸이 퉁퉁 붓는 병)든 환우가 있었다 .

 

 왜 갑자기 뜬금없는

'주의 앞에' 라 했을까?

 

확 달려와 선 거나

바리새인들이 시험하기 위하여 강제로 세웠더라면 

저런 표현을 했을까? 

 

 더더구나 얼마전에도 나왔지만

바리새인들이 올무를 걸 목적으로 초청한 것을 아심에도 

아무런 꺼리김없이

'바리새인 지도자'집에 가신 그 분위기가

더구나 상황과 상관없이 뜬금없는 ^^; 상황의 반전으로 

퉁퉁부은 환자가 덩그라니 서 있는 형국임에도

'주의 앞'이라는

 spirtural, 영적인 뉘앙스- 그런 분위기는 히스기야님의 성전 안 부르짖음, 완전한 회개의 장소, 주님 지성소안 거룩하고 완전한 평강.. 등에 어울리지 ^^;-의 단어를 쓰기에

그리 합당할 거 같지 않은데 

웬일이실까?

 이 버거움

비가역적 가역적으로

서로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어울림 -어디 ..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은 어울리는가?   모든 상상을 불허하는 설정이 이땅에 이루어진 것.. .그것이야말로 진실 아니던가? - 속에

하나님께서는 꼭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실 때 자주 표현되는 상황이 아니시던가? 

 

 '인간세상 , 사단의 궤계'.. 등으로 상징될 수 있는

'바리새인'의 시험에 상관없는

주님의 '영적'이신 가르치심.. . 

세속적인 것 앞에 아무런 꺼리김이 없는 

고귀하고 신비한 도전.

 

 그것을 '주님 앞에'라는 표현으로 

가장 '절박한 세상의 문제인

건강,  퉁퉁부은 문제...' 로 대치시키신 거다. 

 

 예수님.십자가의 시간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와 있으심에도 

이 세상의 도전에 

아무런 흔들림 없이 마지막까지

하나님 나라에 증언하고 증거하시고자

어디든 가셨으며

그 '주님 앞에' 

세상의 그 어떤 문제라도

다 가져오라시는 그 상징으로 

'주님 앞에'라는 단어를

드러내 보이신 거다. 

 

 아.. 그 어떠한 문제라도 

주님은 '주님 앞 문제'로 여겨 주심이시다. 

소망이고희망이다. 

 

 절대적으로 다가오는 

그 어떠한 자책과 질책과 '자괴감' 속에서도

인생의 그 어떤 절박한 문제 조차도

주님 앞에 가져가 내려 놓아야 함을

말씀하심이다.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고 이어지는

너무도 잘아는 비유들로

'겸손'을 말씀하신다. 

 

 "차라리'' 라 하신다. 

 

 차라리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최선이 아닌 '차선'.

그렇게라도 하면 아니한 거 보다 훨 나을 것이다.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말씀'하시는 분의 권고가 겸하여지니

그렇게 하면 훨씬 낫지 않는가?... 라는 ... 

 

 무엇인가?

이도 저도 아닌.. 

이리도 저리도 못하는... 

그 수없는 내면의 혼돈을 

아주아주 오랫동안 겪어가며 세상을 살아왔다. ㅠ.ㅠ

 

 너무 오랫동안 '말'의 꼬임 ㅠ.ㅠ

논리의 부딪침

생각의 다분화..........로 인하여

많은 부분 포기하고

또 많은 부분 혼란스러워 하기도

그리하여 내 젊음의 내면이 부딪치며

'자책'으로 

'분'으로

'노'로......

'우울'로........

뭐.........그렇게 살아오며

'영적 수종병'.. 

심적혼돈의 시간들이 극에 달하려 할 즈음

불현듯 찾아오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 선택으로 

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영접하고 -아 .. 더 정확히는 순간 영접되면서 눈물이 쏟아졌던가? ㅎ- 지금까지 

이렇게 '주님 앞' 서기위한 몸부림으로 

매일을 살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수종병'의 대부분이 사라진듯하나

아직도 일부분 많은 노곤함을 느끼면서 

심적 영적 눌리는 부분에 '붓는' 느낌이 남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 부분.

그 부분을 '자책', 교만.. 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한 부분을

'주님 앞에 ' 서려 하는 너무나의 당연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나에게 

오늘

주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거다. 

 

"너 

무조건 나을 거다 .

완전히.. 

주님 앞에 서 있기에 그렇다. 

아직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이제

네가 해야할 일이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네 안의 그러한 문제점들이 

오늘의 하루 중에 

또 마주하게 된다면

'차라리'

'겸손한 척'이라도 하라 !''

 

그게 무슨말씀이신가?

 

 다양한 '당연하신'.. 

그러나 내 삶의 행태에서 돌이켜 보건데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에 마주할 때 

'겸손'한 척을 선택하라'' 심이시다. 

 

 " 이거. 과연 그렇게 하는게 옳아?

의도적이고 가식적 아냐?... 라는 의구심이 들어도

그렇게라도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셔 선택'하면

즉,

차라리 에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겸손한 척이라도 하면

그게 옳다

그러다 보면

겸손하게 될 거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다

그렇게라도

차라리 하면

겸손하게 되리라

그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너의 오늘 하루의 태도다.."라 신다 .

 

감사하다. 

 

주님.

알겠습니다. 

겸손한 척이라도 하면서

겸손하여 지는 영적 상태가 되는 

그 시작점으로 삼겠습니다. 

 

내 안의 여러 흐름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가장 타당한 '겸손'을 선택하겠습니다. 

나머지.. 

주님이 다 바리새인들의 소리로 치부하여 주심을 알겠습니다. 

그 안에서 전.. 

말씀이 있으시니

겸손의 태도만이라도 취하겠습니다. 

 

주님뜻대로 '겸손'하게 되어

주님 앞에 서는 현상인 줄 알겠습니다. 

감사하오며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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