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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 내 기쁨을 기억한다 (딤후1: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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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 내 기쁨을 기억한다 (딤후1:1-8 )

주하인 2010. 6. 4. 11:13

 제 1 장 ( Chapter 1, 2 Timothy )  

늘 붉은 丹心으로

눈물로 기도하자

 

사는 모든 곳이

주님의 기쁨으로

불일듯 타오르게

 

내 온맘 다하여서

그렇게 또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가는

 

그런 자 되기만을

부족한 영혼바쳐

간절히 그리고 또

정성다해 기도합니다

 

주여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어디 있던 말인가?

그것을 인정하게 된 내가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런 나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약속이

함께 함을 알고 있다.

점차로 확신해 가고 있다.

확신이 커질 수록 근심이나 염려의 폭은 짧아지고 깊이는 줄어들고 있다.

 

 감사는 점점 커진다. ^^* 
 

 
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도 바울께서 감옥에 투옥되엉 있는 상태라 하신다.

그럼에도 그 분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위의 고백이 이분 사도 바울님의 고백과 일치하니 감사하다.

단, 그 감사가 나와는 다른 면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그 분의 상황과 상관없는 '감사'가 넘치는

감사의 공력 ^^; 이 대단하시다는 것이다.

배워야 한다.

감사는 '선택'이란다.

감사할 기분을 주시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길 선택하고 말씀에서 그리하라니 그럴 결심을 하고 선택을 하면

주님이 성령으로 부어주신다.

결심이 먼저다.

그분의 그 놀라운 결심과 공력이 새삼 부럽다.

나도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또 하나는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그 중보의 사랑이다.

그 분은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위하여 밤낮으로 간구하고 쉬지 않고 생각하였다.

감동적이다.

나,

그리 뛰어나지 못한 긍휼의 소유자이고

자식마져도 내 감정의 안정 후였던 것 같다.

이제 주님 안에서 모든 올바른 흐름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아왔고 받았으니

이제 '자식들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더 큰 긍휼의 중보'를 시행하길 원한다.

그것 역시 결심이다.

월요 아버지학교 스텝모임을 꾸준히 ~ 하고 있다.

난, 거기에서 '중보'를 배운다.

내 성격에 없던 부분이 이제 자연스레이 나의 영혼에 자리 잡기 시작함을 느꼈다.

난, 내 자식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중보하면서

나도 모르게 깊이 영혼이 흔들리는 감동의 기쁨을 자주 맛보았다.

중보는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나.

사도 바울님에게 배울것이 너무도 많다.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눈물'

디모데의 눈물.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

사도 바울의 가슴을 울리는 영적 아들의 눈물.

 

 아마도 디모데님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서는

그 분 인격내의 어떠한 저항,

그러면서도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리라는 그 결심의 처절함이

사도바울, 그 영적 아버지의 가슴을 울렸을 지 모른다.

디모데님의 눈물은 어쩌면 '중보'로 나오는 깊은 사랑의 눈물이자 긍휼의 눈물일 수 있을 지 모른다.

감동의 눈물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 눈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으로 넘치게 한다.

 

 '기쁨'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기쁨,

'내 기쁨'이라 표현 하고 있는 그 놀라운 기쁨을

영적 아들에게 물려주길 원하는 그의 '유산'을 강렬하게 설명하고 있다.

 눈물

 기쁨

이 두 단어를 조합해 보면 아직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영성은 '사도 바울'님의 그것과는

따르지 못한 듯 싶다.

아직 순수하고 열정은 있지만 '기쁨'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주시고자하는 영적 에너지의 원류이고

그 기쁨을 통해서만 인생의 연단의 길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임을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인 그 마음이 읽혀진다.

 

 나.

내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세상에 뛰어난 대인관계 술이나 처세술,..그런 것 가르쳐 줄 능력없다.

유산, 재산............................................거의 없다. ㅜ.ㅜ;;

단..

내 아는 하나님의 기쁨을

그 아이들에게 물려주려 몸부림친다.

아들에게 강요 ^^*한다.

 

 나.

서서히 아들들에 대한 눈물을 회복하고 있다.

깊은 눈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안수 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안수할 자격은 없지만

아침마다 자식들 '축복'기도는 해주고 나온다.

나.

습관처럼 하지만 그 아이들 머리 만질 때

내 자격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게 되는 통로라 생각하고 그런다.

시간이 지나면 내 삶의 간증거리 처럼

저 아이들에게도 주님이 뚜렷이 인도하실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런다.

 안수.

그 자격은 없지만 난 내 기도가 안수라 생각할 것이다.

 

 요새는 기도 제목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 우리 달란트를 통하여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길

 그러함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드러나길

 과정에 막아서는 단점, 결점들이 녹아나길........' 하고.

묘한 기대도 없지 않다.

내 달란트를 쓰이게 하여 그를 통하여 내 후반의 삶도 조금은 윤택히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하며 삶도 책임져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내 수년간의 사역아닌 사역을 통하여

찬양을 하고 사진도 찍고 글도 써가며

더더욱 내 진료의 패러다임이 확 바뀐 과정을 여러번 고백했다.

난 그런 체험을 하고 있다.

돌아보아도 그때도 난 전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을 자연스레이 이루어가게 하시고

과정과정에 '영감'처럼 번득이는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하나 깨우치신대로

난 따랐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지금... 잠시 멈추고 있지만

내 .. 그리 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함은

아직도 말씀을 붙들고 있고 그것이 그리 감동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로

난 그리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난 내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길 바라고 있다.

그 바램을 오늘 묵상을 통하여

사도 바울께서 훨씬 강력하고 뚜렷하게 대신 기도해주시고 있다.

 

 내 아들들에게 하고 싶은 기도를 디모데에게 하고 계시며

그 아들들에게 하는 그 간절함을 더 뚜렷이 나에게 그런 마음 가지도록 권유하시며

앞으로의 더욱 감동스러운 축복이 있음을 예언처럼 하시는 것으로 느껴진다.

 

감사하다.

오늘은 '금요일' 반휴다.

오전 바쁜 과정에서 기쁘게 보내며 여기까지 묵상을 이어오게 해주신 하나님이 감사하다.

난 그렇다.

감동이 있으면 일사천리다.

요 며칠 마음이 무거웠고 아침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럴 때 몸이 천근 만근 인 것은 내 나이의 근육이 다 이럴 것이다라는

'성령없는 중년'의 그것을 확실히 이해하게 하신다. ^^;;

하지만 은혜다.

내 삶이 은혜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가벼웁고 의미가 차오르고 가벼운 흥분이 나를 사로잡는다.

블로그를 채울 의무가 거의 완성되어 갈 뿐더러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이 날 자유롭게 한다.

얼른 퇴근하고 수영을 하고

오늘 저녁있을 찬양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길 기도하고 기다릴 것이다.

날씨도 맑다.

 

 

 

적용

 

1. 성경 세장 깊이 읽겠다.

 주님께 페이지 숫자를 줄인게 죄송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가볍게 읽는다.

 그러다 보면 은혜가 더욱 넘치고 몇장 더 읽는 경우가 많아진다.

 

2.  아들들에게 내려 줄 것은 '기쁨'이다.

 아들들의 어려움이 이해가 간다.

 믿음과 이 어려운 현실 사이의 괴리.............

어려운 것은 어렵지만 아버지 바울의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 아들들의 은사가 불일 듯이 타오르도록.......

 

3. 네 눈물을 기억하마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기도를 하자.

 하나님의 기쁨으로 채워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4. 기쁨으로 찬양드린다.

 금요 성령 예배

 나이든 자가 공적으로 소리칠 수 있는 자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적은 소리로도 만족할 수 있는 기쁜 찬양드리자.

 

5. 주님의 뜻 이 아닌 것이 어디있단 말인가?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리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 상급이 높고 저것이 부족한 그런 삶이 어디있는가?

 불신의 지옥같은 삶을 제외하고는

 그리하여 주님이 그대로 방치하신 죄악의 삶 빼고는

 비교할 것도 당황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시다.

 오늘의 나.  . 내일의 내 자식들.. 모두 주님의 뜻 안에 있다.

 내가 할 것은 늘 그 분의 뜻을 놓치지 않는 것 뿐이다.

 가볍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주님을 사랑하고 찬양합니다.

오늘은 중보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읽게 하셨습니다.

그냥 슬프고 불쌍히 생각하고 공감만 해주는 일차원적 차원을 넘어

그 눈물의 뒤에 있는 더 큰 기쁨을 자식에게 내려주고 싶은

아버지 멘토 바울님의 심사가 그대로 읽혀졌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 아버지의 마음이 제 아비로서의 마음의 변화와 길을 같이 한다는

공감이 간다는 것입니다.

주여.

귀하신 주여.

주여.

살아계신 주여.

저로

제 자식으로

세상을 위하여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고 그들에게 펼쳐내는 과정임을 깨닫게 하시사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기보다는

더욱 감사함으로 받아 들이게 하소서.

감사는 선택임을 알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어 더욱 감사로 폭팔되듯 살아가는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아들들이 하게 하시고

그 삶이 힘이 넘치게 하소서.

성령으로 그들을 안수하시사

그들의 마음에 불일듯 달란트가 터져나오고 개발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간절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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