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하나님 내 마음을 감동으로 지키소서(느7:1-60) 본문
(느헤미야7:1-7:60)
1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 내부까지 이쁘게 완성이 될 때까지 힘내서 건축합시다. 샬롬...^^*)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방심해서일까?
내 외부적으로 흔들린다.
성이 건축되었다는 것은 혹여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4절에 가옥을 건축 못했다는 의미와 더불어..
일단
절차탁마, 석공이 조각하기 전에 큰 본을 뜬 것 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통과한 후 일차로 커다란 위협을 통과한 후에 신광야에 머문 것 처럼
주님과 아침 묵상 2년 가까이 하면서 얻어진 나름의 믿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때가 반드시 안심할 시기가 아님은 느헤미야 선지자께서 보여주고 계신다.
문지기를 세웠다.
주님나라 갈 때까지 전혀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노래하는 자들을 세웠다.
연단과정은 인고의 세월 만이 되어선 안된다는 의미다.
혼자 노력하고 고통을 참는 과정으로 만 인식해서는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주님을 찬양하고 그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아침에 병원 큐티에서 늦게 갔지만 눈에 띠는 구절이 있었다.
로마서 6장
14. |
|
은혜 아래 있어야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한다.
난 지금 속이 상하다.
하는 일이 꽉 막혔다.
집안 일도 순탄치 못하다.
어제는 교회 일에 나름대로 노력 봉사했는데 결과가 안좋으니 별일 아닌데도 마음에 부담이 왔다.
그게 더 힘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장래도..
이제 어느 정도 나름대로 성의 모습이 내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방심해서 일까?
흔들린다.
속이 많이 상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건축한 다음에
망대지기와
찬양과
레위 같은 예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3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주의하는데
이게 어떻게 하라는 말씀일까?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요새 아침에 일찍 일어나 30분 주님 묵상하는 걸 게을리 했었다.
그걸 아시나 부다.
일찍 일어나는 행위보다
그 행위를 기쁨가운데 하지 못했다는게 문제다.
내 속에 어느 샌가 게으름과 이 정도면 되었지 ...하는 안일함이 자리잡고 있었던 게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불안감이 자리 잡고 불만족이 차게 되었으며 그 열어둔 성문을 통해 알게 모르게 도비새 세력들이 침투 했던 모양이다.
아직 파수할 때다.
문들 닫아야 한다.
예전처럼 기도하러 열심을 내야 한다.
기도원가서 잠도 자고
주님의 기쁨을 정말 어느샌가 알게 모르게 잊고 지냈다.
내 마음의 뿌듯함과 기쁨을 즐기기만 했지
그 기쁨의 원천인 주님을 채우고 내 마음을 단속하는 작업을 잊었다.
정말이다.
주님은 생각나게 하신다.
그 오묘한 주님의 기뻐하심의 내 상태를...
빗장을 가로 지르는 작업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하겠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4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이 보라.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성은 굉장히 규모가 크다.
혼란스럽고 그 혼란 스러운게 오래지만
그건 내 성이 크기 때문이라 위로하시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그 안에 채워야 할 내용이 많다고 하신다.
가옥을 많이 건축하라 하신다.
가옥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인가?
세상적인 지식은 완전히 무시하라하시나?
아니
작년 11월 이후 개인적으로 주님께 맡기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하루에 책 두세권씩 들고 다니면서- 읽지는 안해도- 불안해 하던 세상적 공부를 다 놓던 게 기억난다.
그 후 내 맘은 주님께로만 향했고 서서히 내 맘 속의 성벽이 쌓여져 왔던 게 기억 난다.
그 가옥은 세상적인 공부인가?
아니면 더욱 더 세심하게 주님의 공부로 채우라는 말씀인가?
신학이라도 하라는 것 같지는 않고.. .
오늘 하루
주님께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다.
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내 하나님
내 마음
감동하사.
느 선지자님의 귀한 부분.
세상과 성령의 소욕은 양립하지 못한다.
세상을 열심히 살면서 세상에 눈 안돌리고 성령을 갈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주님의 그 인도하심을 받아가면서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내 맘은 멍하니 굳어져 버리고 슬그머니 내 속에는 내 자아의 벽이 또 얼마나 굳어져 있단 말인가?
마치 모래로 지은 성처럼 파도 한번 쳐오니 스르륵 하고 무너져 버려 마치 옛적과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아침은 늦게 일어나고
주님에 대한 감동은 없고...
느 선지자께 감동을 금치 못하면서
수도자로서 가지 않고도
세상에서 열정적으로 주님을 믿고 사는 산 증인을 보고 있어서 더욱 기쁘다.
그 분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분이시다.
오히려
'내 하나님'이라고 어찌 보면 건방질 듯하기조차 한 고백을 서슴없이 한다.
주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백이다.
그분
인격적 하나님이자 느 선지자 개인적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감동'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의 절절한 하나님의 기쁨.
감동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그의 하나님 기쁨은 부럽기만 하게 한다.
뭐가 그를 그처럼 수년동안 장애물을 견디게 하고 눈앞의 세상적 완성을 보면서 까지 놓치지 않을 감동을 유지하게 하였단 말인가?
인간의 의지와 율법과 개인적 뛰어난 성정을 가지고도 넘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성직자들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일상을 이끌림 받아 나가가며 힘있게 사는 그의 신행일치의 삶이 부럽다.
개인적으로도 수도없이 비틀비틀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더더욱 부럽고 질투가 난다.
내하나님
내 맘
감동
행동
오늘 하루 그 분을 질투하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적용
. 기도원 가서 자면서 여쭌다.
. 나의 성벽은 정말 완성된 것인가?
. 나의 내부의 완성할 가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아침 30분을 회복해 달라고 기도한다.
. 내 고민을 주님께 고백한다.
. 내 나갈 방향을 여쭌다.
. 내 하나님
내 마음
감동
행동 에 대하여 생각한다.
회개한다.
. 쉼을 달라고 간구한다.
기도
주님
참으로 어려운게 삶입니다.
그 과정을 누구보다 힘겹게 겪고 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계신 느 선지자를 묵상하면서
절묘한 주님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님 만 바라보고 수도하고 싶은 충동도 없지않아 들고 있는 즈음에
세상에서 살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느끼고 있는 즈음에
주님은 그 분을 통하여
모델을 보여주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전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쌓아가는 성벽이 무너져 내리어 도비새 일행이 침투할 것 같은 두려움도 없지 않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에서 처럼
저도 노래하고 성지키고 레위인으로 인하여 예배도 열심히 하길 원합니다.
내 속의 가옥들을 하나하나 채우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일상을 살면서 느 선지자 처럼
그리 올바르게 신앙으로 익어가길 원하나이다.
부족한 죄를 고백하오니 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리더십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그들이 내면에서부터 움직이도록 돕는다.
- 프레더릭 카펠
sung by Silkroad(연습곡 , mp3녹음)
in 2층 세미나실
" 주는 내 피난처니"
-----------------------------------------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한날 , 주님을 기뻐하자(느8:1-12) (0) | 2006.09.13 |
---|---|
나를 되돌아 볼 때 (느7:61-73) (0) | 2006.09.12 |
리더는 ! (느5:14-6:9) (0) | 2006.09.09 |
운영매뉴얼(느5:1-13) (0) | 2006.09.08 |
수레를 버티는 버마재비 마귀 (느4:7-23) (0) | 2006.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