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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 볼 때 (느7:61-7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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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 볼 때 (느7:61-73)

주하인 2006. 9. 12. 09:09

(느헤미야7:61-7:73) 
 

61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2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63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
64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65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회개하는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

 

 

 

 성벽이 완성이 되고 나니 내 외부적 갈등과는 또다른 세력이 들어오려 한다.

같은 편인 것은 같지만 확실치 않은 보계.

바르실래로 예표되는 현실 타협파.

이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자가 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바 백성들의 헌물에 이들의 참여를 금한 것이다.

모이면 돈이 더 될 것을..

 

 철저하게 현실적인 것보다는 주님 앞에 바로서려는 몸부림이다.

 

느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고 싶은 것은 

혹여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서 현실에 적절히 발을 들여놓고 있으며

신앙 생활이

모습만 유지하고 경건은 없는 ..

어쩌면 신앙이란 영계의 존재를 믿는 것이며

영계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느 정도는 성령에 의하여 인치심 받은 증거를 보이는 것이지,

그걸  무시하는 무미 건조한 신앙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인 듯하다.

 매일 주님을 집중하고 성경을 바탕으로 은혜와 은사를 사모하는 신앙이 바로잡힌 신앙인의 모습은 아닌지..

 혹시 프로그램이나 봉사 헌금 건축이나 선교 등의 눈에 보이는 것만 (반드시 필요하지만 .. ) 치중하는 현실적이고 즉물적인 신앙인은 아닌지..

 

나 자신으로 따지면

큐티하고 기도한다고 믿음이 제일인것 처럼

변해야 하는 성품적 부분이 변치 않음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지

나의 아픔을 이유로 남에겐 강요만 하는 차가운 자는 아닌지

나보다 지력이 떨어지는 자들의 주장이라고 낮게 여기고 진리를 외면하는 미련한 자는 아닌지

세상의 요구에 따라가려고 적당히 바르실~~래~~ 하는 엉터리 신앙인은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

 

 

 

66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7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사십오 명이요

68  말이 칠백삼십륙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69 약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느니라

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방백은 금 일천 다릭과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이 다 그 본성에 거하였느니라

( 낮아지고 겸손 해져야 합니다.   저렇게 해서라도...ㅎㅎ  )

 

  노력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성벽을 완공하고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헌물들이 이어진다.

어떤 사람은 적당한 정도의 헌물을 어떤 족장은......

 

그리고는 레위로 대표되는 예배의 틀을 완전히 갖추었고

문지기로 상징되는 현실에서의 완벽한 수비와

노래하는 자들로 대표되는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갖추었다.

 

오늘 .. .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좀더 낮아지고 내 이름이 들어나길 원하는 마음을 버리길 원하신다.

썩어질 현실의 것을 탐내어 틀어잡는 마음을 내리길 원하신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마음 깊숙히 들어오길 원하신다.

주님의 일이라면 아까움 없이 헌금하길 원하신다.

예배를 최선을 다해 드리라 하신다.

내 일상을 지켜 가정에 최선을 다하라 하신다.

직장에 최선을 다하라 하신다.

노래하여 찬양하는 기쁨을 유지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끝까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안에서 백성들 머물 듯이 머물라 하신다 .

 

 

 

기도

 

주님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이지만

너무나 흐지브지 하고 있는 것이 비단 저 뿐 아니라 모든 현대 신앙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느 선지자 시대처럼

뜨겁고 열정적이고 하나로 뭉쳐지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겠나이다.

우림과 둠밈으로 예표되는 성령의 충만한 믿음이 되기를 원하심을 알겟나이다.

 

주여

주님 보시기에 선하신 대로 되기를 원하지만

아직도 내 속에서는 몸부림치는 악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안돼..

자존심이 상해.

아까워...

 

주님..

주님 뜻대로 날 이끄소서.

용서하시고 도우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모든 힘은 연합할 때 생기며, 모든 고난은 불화 가운데 생긴다.

-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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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과 둠밈>

 

 제사장 에봇의 가슴받이에 꽂혀있던 주사위 비슷한 물건으로 주님의 응답을 알기 위해 쓰던 제기.

 하느님이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사울에게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전한다(1사무 28,6).

 이 셋, 곧 꿈과 우림`-`둠밈과 예언자가 옛날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는 공인된 세 가지 방식이었던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제비 뽑아 맛디아를 임명하는 면이 나오다가 성령강림 이후 제비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성령'을 예표하는 물질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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