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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 주를 가까이(창28:10-22)

주하인 2007. 5. 8. 09:19

제 28 장 ( Chapter 28, Genesis )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 하늘 문을 열어 슬쩍 들여다 보면 그곳은 이런 모습을 몇배나 더 능가할 까? ^^;;)

 

  주님의 약속은 이리도 달콤합니다.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내가 어디를 가도 나를 지키신데요.

다시 正道로 돌려 이끄신 다고 하시네요.

나한테 무엇인가 필요한게 있으시다 합니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 제껴놓고

이 죄많은 죄인을 쓰신대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잠이 벌떡 깰일 입니다.

늘 내 곁에 계시거늘

이제야 난 깨달았습니다.

늘 날 보고 계시지만

이제야 난 그 시선을 느꼈습니다.

'과연'이라는 야곱의 사용한 단어가 내 어리석은 심사를 꿰뚫습니다.

 

 아침에 세미나실에 가 앉았습니다.

키타를 짊어 메고 들어와서

역시 방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혹시나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돌아갈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나라도 이 곳에 있음을 알게 하려구요.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아침에 10분 버스의 시간 속에 바삐 들여다보는 묵상을 되뇌이려구요.

 인생의 격변의 지점에서

죄의 삶과 하나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야곱이

자다말고 깨어나서

외치는 장면이 눈에 슬쩍 들어왔었습니다.

"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고 하늘의 문이다

 내가 과연 여기 계시었던 하나님을 못 느꼈구나"

 뭔가 주시려는 뜻이 있으시겠구나 생각하던 구절인 바

눈을 감고 앉으니

세미나 실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 이후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어디가든 그 분이 함께 하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실을 '과연'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니

어제 열이 펄펄나서 울던 우리 큰 아들과 동갑내기 간호사의 딸이 아무도 없는 소아과 외래를 즐거이 뛰어 노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며 아무렇지 않는 얼굴로 다가와 손을 꽉 쥐면서 이리저리 날 끌고 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이쁜지요.

 한참을 그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치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럴 것이란 생각을 하며 한번 꼭 안아 주었습니다.

만일 아이가 내가 오라고 손짓을 해도

혼자만 놀려고 뛰어 다녔으면 좀 덜 이뻣을 것 같았습니다.

 

 과연

과연 나는

내 아버지 하나님

내 구주 예수님

귀하신 성령님의 그 눈길을

따사로이 받고

그 아이처럼 자연스레이 받았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참 기쁘게도

조금은 그랬습니다.

이 아침의 큐티가 그 분을 즐겁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홀로 나와

혼자 키타 쳐가며 혹시나 나 같은 기쁨을 갈구하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는 야곱같은 자들을 위해

문열고 유혹하는 찬양을 하는 날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기쁨이 슬그머니

눈을 감고 묵상하는 내 영혼을 감싸며 올라오는 그 순간,

선교회 닥터 김이 들어옵니다.

아~

기쁩니다.

천군이 따로없고

만마가 이런 것임을 느낍니다.

둘은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흐르려 하는 것을 참았습니다.

내 감상의 소치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 아무 때나 눈을 들어 주님을 생각할 때, 주여 여기있다 대답해 주소서 !)

 

 

주님은 또 이렇게 위안하심을 느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전이요.

이게 하늘의 문입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걸 자주 느끼고 잊지 않고 산다는 가이지요.

이것은 어디나 가능하지만

또 더 잘 느끼기 위하여서는 주님이 기뻐하실 장소와 모임과 화합과 연합이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큐티에 모이지 않아도

주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야곱도 이삭의 그늘아래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라고 목이 메어 고백하는 이유가 또 무엇이겠습니까?

 

 구약 시대라서 다르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라고 고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골로새서 3:2에 보면 '위엣 것을 찾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참 귀합니다.

특별히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고 예수님은 보시고 성령님은 계시지만

우리는 이 직장의 선교비전을 위해서라도

날마다 주님 앞을 향해 다가가는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 손을 잡기 위해서라도

아침을 밝혀야 합니다.

 주님은 비록 그게 내 부족한 인지의 탓으로 혹여 행동이 틀렸어도

그 분을 사모하고 위엣 것을 보려하는 마음 가짐을 보시고

기뻐해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이게 하나님의 전을 쳐다보는 것이고

그것이 하늘의 문을 열어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세상의 일시적 爲樂으로는 느낄 수 조차 생각조차 못하는 비밀한 기쁨을 주십니다.

 

늘 주님이 주시는 크고 비밀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단 이 직장 뿐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이 말입니다.

 

 

적용

 

1.  아침 큐티 모임을 위해 기도한다.

 

2.  위엣 것에 따라 오는 아래 것들의 축복의 원리를 체험키를 기도한다.

 

3.   주님의 뜻대로 ,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해지기를 원한다.

 

4. 하나님의 전

   하늘의 문을 묵상한다.

 

5. 전도 한명 하겠다.

 

6. 성경 다섯장 읽겠다.

 

 

 

기도

 야곱의 문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입장이 전혀 은혜로울 입장이 아님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 축복을 하십니다.

이에 따라 야곱은 또 감탄의 언어를 발합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실에 상관없는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늘 주님께 집중이 되어 있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침을 밝히소서.

늘 나를 붙드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날 지키소서.

날 지킴을 알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하심을 가슴떨리는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이웃에게 전하게 하소서.

아울러 제 있는 주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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