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오른 쪽 호주머니 안의 은혜 본문
( 평화로운 내 마음과 같습니다. )
걸어오는 길은
비가 소슬 소슬 내렸습니다.
그리 맑은 마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님과 동행한다는 기대로 발걸음은 상쾌했습니다.
서서히 스러져 가는 늦은 오후의 길을 걸어
강변을 오면서
가지고 다니는 메모첩을 꺼내들었습니다.
두툼하지만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서
늘 내 오른 쪽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습니다.
번쩍하고 떠 오르는 생각이나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다고 생각될 때
날 괴롭히는 상념과
오래된 어려움이 있을 때
불현듯 꺼내들고 마구마구 적어내려가는 그런 메모장입니다.
시도 적혀 있기도 합니다.
목사님의 귀한 설교 말씀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한동안은 마구마구 적어내려가다가
어떤 때는 수 주 씩 한 자도 적혀 들어가지 못하기도합니다.
오늘 퇴근 길은
날씨 탓인지
고생한 수술 탓인지 마음이 맑지 못해 걸어오면서
주님의 임재를 느끼기엔 집중력이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적어 놓았던 글을 보고픈 생각이 들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냈습니다.
다행이도 오른 손 잡이라서 인지
그 메모장은 쉽게 잡혀 나옵니다.
참으로 놀랐습니다.
어찌 내가 이런 생각을 하였는가?
기억 조차 나지 않던 소리 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 중
인도네시아의 신학생 들에 대한 감동을 적어 놓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자그마한 사람들의 노래는
흑인 영가와는 또다른 가녀리지만 깊은 떨림이 있었습니다.
그 메모를 읽는 순간 그 들의 영혼 속의 그 울림이 날 흔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징검다리를 살짝 넘쳐서 넘어가다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오늘..ㅎ)
뉘�한 날씨와
습기 많은 기후와
바로 전에 내린 비로 불어난 냇가를 건너기 위해 세워 놓은 징검다리를 넘어드는 물살 때문에 건너지 못한 시냇가의 불쾌한 바로 전의 감정은 순간 씻겨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전인치유 찬양 인도하려 서면서
늘 가슴앓이 하면서 올라가던 때
주님께서 저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주시면서
인도네시아 그 신학생 여성 중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들의 찬양은 실로 가슴을 울렸지요.
난 평범한 곡조의 노래 속에 들어 있는 맑은 soul풍의 찬양의 이유를 금새 알 수가 있었습니다.
3일 간을 그들의 아픔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가난한 삶.
장래라고는 없던 그들이 예수님을 알고 까맣게 타들어 가던 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듯 가녀린 희망이 그들의 작은 체구를 타고 나오기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늘어난 강물은 내 코끝을 상큼하게 자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암울한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찬양의 감동이
그 적은 메모장의 기억을 타고
꿈틀꺼리듯 지렁이 움직이는 악필의 글씨를 타고 다시금 내 영혼 속에 살아 났습니다.
아..
그때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픔이 필요한 이유.
그것은 진실함을 위해서 입니다.
무작정 성공 가도를 달려왔더라면.. 하고 잠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아..
메모를 적을 그때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더 뚜렷합니다.
싫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감동을 당연히 못 얻었을 것이 때문입니다.
육신의 만족과
마음의 어두운 부분이 심히 만족은 했을 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존경하는 눈과 든든한 배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난 그 뒤의 끝이 항상 불쾌했을 것을 압니다.
지금은요.
마치 오늘 날씨처럼 비록 눈 앞이 맑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를 분위기가 좋습니다.
더욱 더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막연한 든든함이 좋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밖에 없이 겪고 있어온 아픔이지만 아픔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그때도 동일한 마음으로 이런 식으로 은혜를 적어 내려 갔더라구요.
'그래 아픔이 있기에 찬양이 아름답다.
찬양은 주님이 받으시기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도 아픔이 있었다 .
그래서 내 찬양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
그것은 그 여성들의 찬양의 은혜가 나에게 전해진 것 처럼
나도 내 은혜가 내 찬양을 듣는 자들에게 전해질 기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난 기쁘게 오를 수 있다. '
지금이라면 난 그들에게 소리쳐 외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분 아프십니까?
아픔이 아프시고 암담하신지요?
그러나,
아픔은 은혜에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오히려 아픔이 기회이기도 할 겁니다.
아픔.
주님께 맡기고 살아계신 그 분을 느껴봅시다... '라구요.
막연히 그렇게 될 것도 같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고
아픔을 겪고 여기까지 온 자로서
아픔을 아파하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오늘
집에오는 길은 참으로 귀했습니다.
주님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임하시네요.
마치
숲속에서 홀로 거닐 다가
만난 고요한 후련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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