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안의 소[출21:28-36] 본문
이렇게
운동을 하고
이처럼 좋은 곳을
찾아 다닌다 해도
그게 단지
내 속에서
매사 부딪쳐 오는
미련한 소를 피하기 위함이면
그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분의 도우심으로
연단 받아가는 과정으로
모든 일을 바라볼 때
비로소 세상은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주어진 모든 환경은
비할데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되어진다
이제 곧 다가올
주님을 만나뵐 그 시간
두팔 벌려 마중하실
우리 주 예수님을
가슴 떨리게
사모할 수 있게 된다
29.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36.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
소牛.
본래의 버릇 , 본성.
본래 받는 버릇, 원죄적 성품.
자신안에 자신 마음 대로 뛰어노는 죄악성.
특별히 각 개인 마다 강한 다른 성품의 소들.
그 소는 주인이 있다.
주인이 누군가?
말씀을 묵상해보니
그 미련한 소, 강한 성품이고 미련한 성품은
내 안의 자아다.
보라.
주인은 나고
내안의 나도 모르게 일방적 달음질을 쳐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날 몰아 가는
그러한 질주의 힘을 가진 '소'같은 것이 있지 않던가?
사도 바울님이
'원함은 내게 있으나 원치 않는 그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죄니라' 하신 것
바로 그 원치 않음을 행하게 하는 무대뽀의 죄성이
바로 '소'다.
그것도 내 소 ' 我 牛' , 아우~~~~ !!! '다 .
나.. 어려서 부터 황소고집이란 지적을 많이 받았다.
한번 고집 부리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고
그 황소고집이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자라야만 했다 ㅜ.ㅜ;;
이 미련한 아~우 ㅎㅎ, 내 소는
내가 주인이기에 내가 콘트롤 해야 한다 .
보라.
단속하지 아니하여
타인을 상처 입히면
그 죄는 다 주인의 죄라 하시지 않는가?
오늘 특별히 내 소
내 내면의 질주하는 '소'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이곳 CJ에 와서
하나님은 내 내면을 더 들여다 보게 하신다.
과거에 어찌할 수 없는 속상함이나 갈증...으로 밀리듯
해치웠던 ㅠ.ㅠ;; 많은 부족한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기에
그냥 안타까운 눈으로 긍휼히 여기시며 기다려 주셨다면
이제 그 실체, 그러한 상황의 가장 중심에 어떠한 일이 있어서인가
이론 만으로 깨달아 생각하던 것,
밀려서 몰려서 그냥 속절없이 버릇으로
꼼짝없이 남겨 놓아야 할 부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게 하신다.
오늘 말씀처럼
누구나 자신 안에 '소'를 키운다 .
그 소는 '아담의 원죄' 덕에 우리의 영혼 속에 생겨난
죄의 이유가 되게 하는 '비뚜러진 본성'., 이그러진 정욕이다.
그 정욕은 (성욕이 아님 ) 하나님 께서
우리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서 허락된 선한 성질이지만
아담 이후 , 악한 바램으로 뒤틀려 지게 되었다 .
그래서 그 악한 정욕을 향해
인간들은 마치 꿀에 빠져 죽도록 달려드는 파리처럼
치달케 되는 위험한 질주의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과 이성을 주시고
그것들의 치달음을 막아서서
의지로 이겨내길 바라시면서
십자가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
도우미로 '성령'을 주셨다 .
하지만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 사단의 세력들은
다양한 방법(프리메이슨, 포스트 모더니즘....과 스마트폰... 을 통한 하나님 찾을 시간 뺏음)으로
성령을 잊게 하고
하나님을 고리타분한 설화 속의 주인공으로 바꾸어 버리며
예수님을 우상의 신들과 같은 레벨의 선지자 정도로 바꾸어 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안의 숨어 있는 '소'가 죄와는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소'의 이리 저리 치받아 나타나는
악한 탐심과 욕정들을
인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옳다면서 방임하도록 만든다.
일단 .. 여기까지는
그들, 사단의 세력들이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신문을 보면 매일 상상도 못할 '소'들의 부딪침들로 인한
사건 사고 들이 떠들썩하게 한다 .
이유없이 총기 난사하고
10년 만에 나타난 대학 동기가 뒤따라가 갑자기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져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아간다 .
세상은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모든 원인.
우리 인간 모두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는
'소'들의 횡포이고
그 횡포를 인식조차 못하는 미련한 '주인'인 인간 들의 어리석음 탓이다 .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신다
"'소'를 제어하라"
소를 제어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모든 죄는
주인인 우리들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소'를 어찌 깨달아 알 수 잇던가?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당연히도 영생, 천국의 소망이 있어야 한다.
천국은 지금과 같은 더러운 영혼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한 '상급 심판'의 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심판의 자리는 비록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만 해당하지만...
어쨋든 심판의 자리에서 덜 혼나고 더 깨끗한 영혼으로
예수님의 두팔 벌리신 환영을 받기 위해서는
더 정결해져 가는
성화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고
벌써 며칠전의 묵상에서도
'이 땅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범죄하지 않음'이라는
하나님의 절절한 메시지가 잇었다
내 CJ에서의 삶에서
주님은 내 내면의 '牛'를 마주하게 하시는 작업을 하신다고 고백했다.
왜 나는,
꼭 똑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가?
그것.
'소'가 그 상황 만 되면 내 속에서 치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렇다 .
그게 맞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좋다
'과거의 전이 '?'
'상처?'
'원죄적 상처?'
'왜곡된 정욕?'...
예수님이 그로 인한 과거의 모든 파생된 죄를
구원하실 때에 일거에 가져가셨어도
내 안의 소는 그냥 남겨 놓으셨다.
그것을 깨달아 알면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고
성령과 예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려시는..
그래서 오직 예수.. 오직 주님.. 만이
내 인생의 살아갈 유일한 목적임을
기쁨의 눈물로 외쳐가며 두손들고
할렐루야 외치며 주님 앞에 달려가는
그 소천의 날을 기대하시면서
그 과정을 지켜보실 목적
그 즐거우신 사랑하심(이사야43:21 )을 이유로
'소'를 남겨 놓으신 것이시다.
그렇다면
난.. 요새 무슨 소를 들여다 보고 있던가?
어떻게 기도하는가?
내 소는 무엇이던가?
안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한다
"주여.
난.. 이리 결심했습니다.
이리 도우소서.
과거로 부터의 전이를 자르소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하소서.
그 소의 부딪칠 때마다 나오는 모든 파열음들의 책임은 제게 있사오니
성령으로 절 도우소서."
이제 그 소의 주인이
나 임을 다시한번 주님이 확인 도장 찍으신다.
그 소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님께 더욱 아뢰고 기도하고
이제는 잠잠하게 할 의무가 나에게 있고
그 책임이 모두 내게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이전에
내가 다룰 힘이 없었을 때는
그것은 '죄'가 아니고 '긍휼'이었으나
이제는 '죄'가 될 여지가 되어 버렸다.
어제 묵상에서 나온 것 처럼
이제까지는 '고의'가 아니었으나
방치하고 나에게 힘이 없음을 핑게로 주져 앉으면
이제는 '고의의 영역'에 들어가
'죄'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그 경계의 시점이란 이야기다.
나.
나는 세상의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 '소'를 기르고 있다.
그 소가 남들보다 더 강하고 포악하지만
내 몫이다 .
내가 주인이기에 내가 달래고
내가 힘을 길러
그를 제어해야 한다 .
그힘은 기도로 부터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하나님의 능력
엘샤다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성령을 통해서 길러진다.
깨닫고 이해하고
기대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신다.
내 안의 소는
이제는 내 제어를 넘어서는 강폭이 아니고
유순한 눈망울을 가진
초원의 젖소와 같은
나와 동행하는 '힘'이 된다 .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의 귀한 도구일 뿐이게 된다.
하나님의 오늘 이후의 내게 바라시는 뜻이시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내 하나님.
어제는 퇴근하고
여지없이 충주호 뒷길, 10키로를 라이딩 했습니다.
녹색으로 온 시야를 채우시고
적당히 난 땀을 식혀주는
너무나도 시원한 바람을 허락하시어
늘 가다오다 들러
가벼운 몸푸는 운동을 하는
온전경이 다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귀 속에서는 비록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찬송이 아닌 음악이
이어폰을 타고 흘러 나왔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통해서도 하실 수 있음을 믿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리했습니다.
주여.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어찌 이토록 거친 부분이 많기만 하고
아직도 둘쑥날쑥, 정제되지 않은 인격을 가진 저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이곳 CJ에 올 때 가졌던 나름의 속상함,
시골로 좌천 되어 비 미션병원에 오는 것 같은 답답함들을 물리시고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손길을 마주하게 하시는 지요.
주여.
이제는 확실히 압니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모든 자들,
주님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주님의 방법으로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이끄심을 요.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주님.
비록 이곳이 이전보다 여러가지로 열악하나
이 안에서도 더 큰 자유와 깨달음을 주시었습니다.
요즈음 기도하는 제목들이
내 내면의 핵심에 더 가까이 가는 데
그 정체를 주님께서는
'소'로 정의하셔 주시고 계십니다.
주여..
어찌 이리 정확하고 적절하신지요...
살아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매사 매순간
단한번도 주님께서 절 혼자 방치하지 않으셨음을
또 다시 깨달아 압니다.
힘이 됩니다.
주여.
이제 의지와 지혜를 허락하시어
이 거친 '소'를 달래길 원합니다.
가끔은 그 본성대로 불쑥거릴 수 있음도 알게 하시고
그래도 당황하지 않게 하시는 지혜를 주시고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시옵소서.
간절히 비올 것은
그 소리들, 그 움직임들. 그 부대낌들..
주인으로서 컨트롤 할 수 있도록 하소서.
너무 편하여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하시되
절대로 그 부딪낌이
제 육신을 통하여
제 심령의 흔들림을 통하여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제 영혼의 틀을 더 단단히 강화 시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철갑을 입게 하시고
성령의흉배로 절 그리하소서.
하나님의 지혜로 제 머리를 맑게 하소서.
내 주여.
주님 뵈올
그 소천의 날까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절 보아 인도하여 주소서.
제 자식들, 제 아내, 식구들
모든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리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내 안의 소
내 자존심이란 이름의 소
내 살기위해 붙들 수 밖에 없던 내 생존의 소
그것
옳은 방향은 아니었지만
그게 달리는 대로
난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먼지 날리고
소리 내고
아파하고 아프게 하고
그러면서도
그 모든 소리의 이유는
내 주인 알아주소
내 주인 알아주소
이제 나이들어
더 알아줄 이유 없어도
그 소는
내 의지와 다르게
자신의 움직임을 움직 거리고 있다
주님은
그 소를 보라신다
아직도 소가 움직거려야 할
어떤 이유가 남아 있는 지
먼저
살펴보라신다
없다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그 소에게
그렇지 않아도
내가 견딜만 함을
알려주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가벼운 채찍에도
몸부림 치기 위해 씩씩대는
그런 이유가
네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 모든 것 아시고
난 그 분의 말씀으로
벌써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내 안의 소를 바라본다
더 이상 지고 가지 않아도 될 짐
지고 아파하며 힘들어하지 말기를
난 진정으로 바라면서
그 소
내 안의 소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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