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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모두 주님으로 인하여[마4:12-25]

주하인 2014. 1. 24. 10:26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요한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후'

갈릴리로 물러나셨다.

 

 예수님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신의 능력을 편협한 이유로 휘두르신 분이 아니셨다.

강하지만 물러날 때를 아시는 분이시다.

그 때를 앎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아셨고

또 , 강한 자는 약한 자들( 인간 따위가 어찌...^^;;) 에 대하여

필요없는 힘을 휘두를 이유를 느끼지 못함이다.

 

나.

깨닫는 바가 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하라' 셨다.

내가 할 일은 '회개'다 .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다구?

아니다.

눈을 뜨면서 부터 들어오는

'정죄'의 죄들,  스치는 음란의 생각들, 나태한 마음들, 비교와 질시

적당히 편하고자 하는 '거짓의 마음'들,

내 위치를 이용하여 괜히 교만하여 지는 어두운 생각들 ,

무엇보다 가까운 자들에 대하여 배려보다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 만을 크게 확대하여 키우는 '포학'의 마음들............

그것들이 모조리 내 얼굴과 입술과 눈을 통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난 얼마나 드러내면 드러낼 수록 '악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자인가.....^^;;;

나 뿐인가?

모든 인간이 다 굴레를 썼을 뿐, 탈을 가리고 있으며

가리고 있는 정도만 다를 뿐

그들 속에 마그마처럼 용트림하고 있는 '원죄'에 의한 자범죄의 욕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데 새삼 '회개'?

그렇다.

그러니 말씀을 묵상하는 자들이 좋은 이유이고

그들의 삶이 가벼운 이유다.

덜 스트레스 받는 이유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진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한 '죽음'과 연관된 무의식적 공포는

인간 모두의 필연적 속성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란 이름을 들고 나온 사상들이

'죄' 에 대하여 그토록 몸부림 치지만

진리이고 진실의 종교인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행실로 그들의 그 무의식적, 인류적 고통을 가리려 하지만

육신적 생물학적 , 또한 심리적 사회적으로 한계상황에 다르는

중년 이후가 되면

결국 견디지못하여 다양한 내적인 문제들을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점점 힘들어져 가고 어두워져 간다.

먹고살기 편해질 수록 마음은 더 ~~어두워져 간다.

 

 쉽~게 이야기 하면 '회개'해야 마음도 편하다는 이야기다.

그 쉬운 증거들이 '힐링','용서 ', '화'.. 같은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주님 앞'에서 진정한 '영적'인 회개가 아니면

모두 일시적이고 더욱 허탈해진다는 이야기다.

회개는 그래서 필요하다.

이 땅에서 조차 유익이 있는데

'천국'이 보장되면 그게 '유익' 정도인가?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묵상을 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자들의 인생의 점점 가벼워짐은 이것이다.

이 '매일 회개'할 당연한 이유들이

너무 당연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이유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공기가 그렇듯

중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가거나

회개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게 인간의 속성이다.

 묵상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신다.

상황을 적절히 아시고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라.

그 이렇게 하라가... 오늘은 나에게는 '회개'다.

 

 내 회개할 거리.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할 '회개'거리.

확실히 안다.

알게 하셨다.

그러면서 그게 내 훈련의과정임을 알게 하시었다.

상황은 그렇지만, 회개를 통하여 천국을 주실것임을 말씀하신다.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 따라오라' 하면 '다 버리고 따를' 순전한 마음.

 

아.

따른 다는 것을 난 어찌받을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지도 않으셨고

그럴 것이란 영적 강력한 느낌이나 상황의 인도하심도 없으신데..

 

일상에서의 버릴 것.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

내가 그러는 것.

...

무엇인가?

그렇다면..

 

'강력한 회개'를 통하여 빈 마음으로 섰을 때

내가 내 주위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다.

회개 후 내 변화를 세상에 어떻게 표출할까?

마음은 그렇게 가벼워졌는데

또 변화없는 '행태 行態'를 말씀하시는 거라 생각한다.

 

또 내 위치만 주장하고

내 위치에 걸맞지 않는 대우라 생각할 때 여지없이 비슷한 '성품'을 외부에 표출하거나

적당한 거짓과 타협으로 내 마음의 편함으로 지내다가

또 똑같은 삶의 쳇바퀴를 돌리는..

그러함은 익숙하고 편하기에

버리고 따라야 할 습관들을 버리는 것은 '힘들다. '

버리고 따라야 함은 힘들다.

비록 난, 순교자나 선교사나 수도자의 정체는 아닐지라도

일상의

하나님 만이 아시는 나 만의 '특별한 버림'을 버리는 자 되어야 한다.

그게 내 정체다.

회개는 그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오늘 말씀하시는 '회개'를 위한 깨달음은 그동안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의 산물이라서 한편 휴우~한다.

그러면 주어지는 결과물이 '천국'이다.

천국.

이땅에 살아서 가지는 천국.

소유의 유무나 내  잘나고 못난 것과 상관없는 '천국의 삶'.

그것을 '말씀'이신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신다.

그러기 위하여 말씀을 믿고 결단함이 필요하다.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내 주님.

이 부족한 자에게 '회개'할 거리를 알게하시고

그 지혜로 회개를 다시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내 수도 없는 죄된 생각 중에서도

특별히 할 회개를 붙듭니다.

그 것은 깊은 부분의 것들임을 압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검으로 다가오심을

전 압니다.

말씀에 써 있는것에 근거하여

일상에서 체험되어지는

살아계신 역사임을 감미롭게 느낍니다.

어찌 어려움이 감미일까..

주님은 역설의 진리이심을 다시한번 체험함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자주 체험되니

제 영의 한계는 자꾸만 허물어지고

점차로 '자유로와'짐을 체험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주님이시여.

오늘 '회개'할 거리에 대하여 더욱 집중하려 하오니

제 안의 문제들을

온 우주를 만드신 그 무한한 에너지의 중심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로 인하여 자격을 부여 받은

제 영에 성령으로 그득채우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게 '회개' ,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천국의 결단을

오늘 하게 하소서.

그래서 삶이 변하게 하소서.

제 주위가 변하게 하시고

모든 것 변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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