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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것과 모르는 것(행3:17-3: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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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것과 모르는 것(행3:17-3:26)

주하인 2005. 7. 30. 22:28

1. 묵상

 

 

1)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난 내가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모르는 가를 잘 모른다.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바람이 불면 막 흔들리는 갈대같이 마구 흔들린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가면서 실은 주님을 제대로나 믿고 있는지 혼란 스러울 때도 많다.

 또한 내가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확실히 모르니 무엇을 아는지 확실히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혼란만이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확고 부동한 삶에 대한 철학과 주님을 믿음으로서 천국의 소망이 가슴 깊이 뚜렷이 남아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요동치 않아야 할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주님 예수님의 현란한 기적과 단순하고 정확한 논리, 그리고 그 분이 보여 주시는 카리스마 넘치는 풍모에 끌려 수많은 군중의 무리들에 섞여 따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던 날 표변하여 손가락질하는 자들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또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고 깊이 자신에 침잠해 있다가 예수님의 향기를 들어내는 기적자(奇蹟者)들이 나타나자 또 다시 군중의 무리에 섞여 몰려 들었다.

그들은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아는지 느끼지 조차 못하고 꿀을 쫓아 날아드는 파리처럼 기적과 평안함의 흔적을 쫓아 달려 들었다.


 과연 난,


얼마나 정확히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가?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 인정하고 믿고 있는가?
얼마나 깊숙히 천국에 대해 사모하는가?
얼마나 절실히 주님의 명령에 부담을 갖는가?
얼마나 내 가족, 내 이웃 , 내 주변을 사랑하는가?
얼마나 확실히 주님 안에서의 목표가 뚜렷한가?

혹여 가슴 깊이 들여다 보면 자신이 정해 놓은 올가미 안이 아닌가?
혹여 남에게 보이기 위한 회벽칠한 무덤의 모습은 아닌가?
혹여 성적을 잘따기위한 도구의 역할에 지나지 않던가?
..........


2) 그리스도는 다 아신다.

 

. 주님은 해 받으실 것을 다 아셨다.


. 주님은 베드로와 사도의 변화를 다 아셨다.


. 주님은 고통과 결과의 관계를 다 아셨다.


. 주님은 복음 전파의 모습에 대하여 미리 다 예견하셨다.


. 주님은 성경의 쓰임을 다 아셨다.


 이천년 후 이글을 쓰며 갈등할 나눔터를 다 아시고 계셨다.


. 주님은 인간의 심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아신다.


. 주님은 날 다 아신다.
..........

 

 

3) 우리도 유쾌할 수가 있다.

 

 가. 유쾌한(Refreshing) 이란 어떤 것인가?

 

 초신자 시절엔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는 기도가 잘 안되었고.. 죄를 지은 후 기도하기가 무서웠다.   그러나 전혀 은혜와 내 심리 상태와는 상관이 없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럴 때 기도하러 오는 것만 가지고도 주님은 아주 기뻐하신 것이시다.    아주 통쾌하게 울고(?) 오거나, 뭔가 뚫린 듯한 쾌감을 느끼고 오기 일 수였다.  
 주님은 내 예견은 한 번도 맞춰 주신 적이 없었다.  

 '은혜 받으면 아주 통쾌한 상태'가 된다.

 

 나. 유쾌하기 위한 전제 조건

 

가) 회개
: 십자가를 통해 무조건 깨끗이 해주시고 그후 매일 매일 회개를 통하여 유쾌하게 해주실 성령까지 보장으로 만들어 놓고 주님은 기다리셨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매일 순교........이래서 성장하고 성화되어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주님은 우릴 유쾌하게 해주신단다.
 

나) 돌이켜
; 회개 후의  행동적 변화까지 필요로 하신다.

 

다) 죄없이 하심.
; 십자가와 성령을 통하여 완전 죄사함과 매일 매일 깨끗이 함을 위한 도구는 완벽히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깊은 회개와 반성은 우리의 몫이다.
 죄없도록 철저히 .......

 

 


 2. 적용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나다.   
그럼에도 교만하기가 끝간데 없는 것이 나다.

주님은 십자가의 그 깊은 뜻을 묵상하고 만나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 내 부족함과 연약함,
내 무지함과 교만함, 내 어리석음과 아집을
우리 예수님 당신이 지신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고백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깊은 통찰을 허락하시고
딱딱하게 굳어진 내 심령에
부드럽고 연약한 속살이 들어나도록 하시어

눈물과 깊은 통탄 속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꼭꼭 눌러놓은
어두운 부분과 회개하지 못한 죄를
들쳐 내시고 말리시어서...

 

의식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갈등하는 부분, 불안케 하는 부분
속상해 하는 부분 , 분노케 하는 부분.
우울한 부분, 좌절하는 부분.........

 

모두 말리시고 날려 버리시어.......

 

우리 주님 앞에서 내려오는
그 깊은 평안함과 평강을
부족한 당신의 이 아들에게 허락하시어..

 

평안함과 기쁨을 넘어서는
유쾌하고 통쾌한 날을 주신다 하신다.

 

우리 십자가 예수님
그 분의 그 처절한 고통과 인내와
그분의 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묵상하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려주신
그 귀한 보혈을 가슴깊이 묵상하고


내 영혼 깊숙히 각인 시키어서

감사함으로 내 영혼을 적신 후


내 육신에서 흘러 나오는 눈물로서

우리 귀한 십자가 예수님 , 그분 앞에
아주 적은 제물로서 바치고 싶다.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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