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난 언제나 어쩌면 이렇게[요19:28-30] 본문

신약 QT

난 언제나 어쩌면 이렇게[요19:28-30]

주하인 2017. 4. 14. 08:30


 언제나

이전 같으면

이렇듯 쭈글거려져가는 내 사진을

과감히 올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누구도 그렇지만

잘난 것만 받아 들이고

내 못난 거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

그래서 아마도

내 주변이 힘들지도 몰랐겠지만

돌아보니 내 잘난 것은

내가 스스로 가장 힘들었었다


숨기고 가리고

잘난 체하고 으쓱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갖은 감정의 폭에 흔들려 왔음은

내가

내 자아가

번연히 살아 있음 탓이었다


주님의 목마르심

내 목마름

어찌 비교할 바겠냐마는

내 이 자아의

죽지못해 생기는 갈증을

십자가에 어서어서

주님 예수님 처럼

그리 못박길 원한다


그래서 나도

주님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깊은 한숨과 더불어

이제 다 이루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성화의 영혼이 되길 원한다


주여

이제

이 늘어져 감도

덜 미웁게 느껴짐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어제도 고백했지만

모든 아픔을 다 가지고 병원에 오시는 분들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어쩔 수 없는...ㅠ.ㅠ;;)

그들의 날카로운 하소연을 마주하다 보면

입이 바짝 바짝 마른다. 

특별히 .. 내 문제도 없지 않을 듯.. 내 뻣뻣한 태도를 ㅠ.ㅠ;; 싫어하는 요즈음 사람들 앞에 서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이 바짝 바짝 마른다.

어제 그제가 그랬다.

나름 이전보다는 잘 참고 약해짐을 감내하고 견뎌냈지만

집에 가도 마음이 뒤숭숭 하고 안절 부절 못했다.

 그 앞에서 얼마나 입이 마르던지... 물을 연이어 들이키고...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심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미련한 인간...

경험해봐야 남의... 그것도 이리 위대하시고 엄청나신 예수님의 고난 앞에

한번도 제대로 공감해보지 못했었다.

겨우..내 문제로 이정도 목이 말라봐야

예수님의 '목마르다' 심이 겨우 눈에 온다 .


 아..

생리학적으로 육신의 수분이 다 고갈되어 버리시니

그 이전에 훨씬 더 목이 마르셨을 이유가 분명하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말씀하신다.

 난.. 겨우 심리적 부담, 어쩌면 약간의 실제적 부담.. 에 그리 목이 말랐는데

예수께서는 심리적 영적 육체적의 전분야에

도저히 인생으로 감내하여 낼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서도

이제야

겨우


'내가

목이 마르다' 신다.

..........


도저히 그 인내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그리고 나.. 이 안절부절못하는 늙어가는 철부지 ㅜ.ㅜ;; 의 남들에게 알아주길 바라며

'아... 힘이 들다.. 아 목이 마르다... 아.. 나는....' 하고 외치어 대며

공감해주지 않는 다수를 향하여 속상해 하거나 스스로 연민하는

이 미련한 자의 '천박한' .. (죄송.. 그 마져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함부로 날.. 자책해서.. ) 소리지름과는

전혀 다르시게 이제야 목이 마르시단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 제일 마지막 구절에 돌아가시는 장면이지 않나.. )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신 포도주' .. 아.. 실제적으로 어떠한 이유로 신포도주를 먹이는지 알수 없지만

그들의 이 비 인격적인 대우에

예수께서는 아무런 저항없이 마시신듯 하다.


아.

저 절대의 갈증, 고통,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 같으면 알아달라고.. 인격을 무시하는 이 대우가 뭐냐고 소리치고 싶지만

주께서는

극한의 갈증을

저들의 저 신포도주 대우를 묵묵히 받으시고는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돌아가셨다. ㅠ.ㅠ;;;;;;


'다 이루었다' 하시고 떠나가심은

신포도주를 마시심도

목마르다 소리치심도

무의식적이고 육체적 한계에서 생각없이 끌려서 그러신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다.


그 정도의 이성으로

저런 극단의 것들응

아무 저항없이 받아 내심이다.

그게 놀랍다.


그런데..

'다 이루었다' 시며 가셨다.


내게 물음을 던지신다.


'주하인아..

너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주께서

살아계셔서

정말

상황에 합당한 말씀을

레마로 주시어 오셨다.

지난 십수년 간...........


 오늘은 내 상황을 아시는 그 분께서

비록 나는 수억만 배 적은 '갈증'이지만 목마른 경험을 하면서

과연

주님처럼 '원망치 않고'

낮아짐과 핍박과 갈등과 고난과 고통을 '저항하지 않으시며'

그것이 단지 죽음까지 다다른 자의 마취된 무감각에서 기인하지 않으신 것 처럼

내 심리적, 아니면 다른 주님의 어린 영혼을 보호해주신 탓으로

아무것도 못느끼는

그런 '상급'없는 무저항이 아닌

내게 느껴지는 고통은 느끼지만

그 고통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을 받아 들여지고

그러한 어이없는 고난에

나 스스로 '비참해지거나 처참하게 ' 느끼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아니하는

진정한 '순종'의 목마름

차분한 감사로 그 고통을 대치시켜

주변에 의하여 손가락질 받거나 질타 받거나 고난을 당해도

마치 어린 양... 예수님 처럼

그냥 그 목마름을 주님 앞에서 승화시키어 갈 수 있는 것...

그래서 외부는 바뀌지 않을 지 몰라도

내 내적 영혼의 성장이 크게 이루어 져

마침내 온전한 '성화'...

인격적 완성을 이루어

하나님이 그토록 내게 바라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

그것이

'다 이루는 ' 상태가 아닐까 싶게 느껴져 온다.


 날 돌아 본다.

하루를 돌아봐도 난.. 아직 모난 부분이 많다.

이게 스스로 힘들다.

주님은 머리 속으로나마 원하시는게 더 .. 이심을 아는데

내 심적, 현실적 상황은 아직도.. 다.


난.. 언제나 되어야

어떻게 해서

주님의 저런 온전한 순종, 온전한 이루심을 이루게 될까..



주님.

아시오매..

지난 밤 많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취되듯' 잊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내가 받아들여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을 계기로 삼을 '저항'을 했습니다.


주님.

과정에서 많은 가슴 속의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을 이 절해의 외로움이

절 깊이 우울로 끌고 가려 햇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묵상하고 십자가를 묵상하며 차분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깬 아침에 잠이 오지 않아 들여다 본

오늘 말씀 구절은

유난히도 짧았지만

유난히도 많은 구절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랬습니다.

앎에도 불구하고

따라오지 않는 내 가슴이 그리 절 깨웠던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르는 듯 했습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스트레스 잊으려 갖은 노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주님 앞에 맡기고 읊조리는 기도를 하기로 했습비다.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시는 장면을 묵상하기로 했습니다.

약해짐을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은혜로 채우실 때 마음이 이해할 수 없이 기쁘고 황홀합니다.

그게 좋아서 그랬더니

주님은 제 작은 소리로 읆조리는 기도를 기뻐하셨던 모양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이 맑았습니다.

태양빛이 더 황홀히 보였습니다.

주님...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주님 닮기로 결심한 것을 기뻐하신 듯

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신 듯합니다.

낮아짐을 그리 겁내지 않기로 기도한 저의 갈증을

주님의 성령은혜로 채우신 듯합니다.

주여...


간절히 더 비올 것은

우리 주의 갈증을 감사하게 여기게 하시고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시는

그 이루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하루 되길 원합니다.


나머지.

현실의 문제.

심리적 문제

.. 모두 주님이 인도하소서.

내 영혼 온전히 주님처럼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