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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가[단9:20-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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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가[단9:20-27]

주하인 2014. 6. 24. 10:41

세상에

무엇위해 태어났던가

 

세상에서

무엇되기 위하여

그리 열심히 살아왔던가

 

아무리 고개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아무리 고개돌려

주위를 찾아 보아도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나고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온전하신 그 사랑

 

지혜와 총명과

모든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만나고야

난 드디어 깨달았다

 

주님 만이

내 모든 것이며

그 분 만이

내 모든 목적이고

내 영혼 에너지의 근원인 것을

 

그래서 난 기도한다

주님을 닮길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길

주님 만이

온전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이 짧은 인생에

적지만 내 가진 모든 것을

한점 꽃으로 피워올려

주 영광

끝없이 노래할 수 있기를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기도하며'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중요한 것이다.

밥 먹고 숨쉬고 .. 하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 같이 느껴져 순위에 생각되지 않는 일이지만

생명유지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 처럼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믿는 모든 자들에게 마땅히 되어야 할 일임에도

어찌 된 일인지 다른 신앙행위에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은 어인일인가?

 

기도하는 당연한 행위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내용도 중요하다 .

당연히도 그 내용은 마치 사람이 성장하며 달라지는 것 같이

내용도 점차로 달라져야 한다.

'주시옵소서'.. 도 중요하고

주위를 위함도 중요하나

언제까지나 '내'것, '내 주변'것만 관심이 되어야 하는가?

성장할 수록 사회에 관심이 늘고

진정한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삶의 의미' , '인생의 목적'이 관심거리가 되어

'자아 실현'을 위한 것들이 관심이 늘어나는 것처럼

기도의 내용도 성장될 수록 달라져야 한다.

'세상을 위하여.. ' '이웃을 위하여... ' 중보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귀한 본질은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다.

 거룩한 산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산,  새 예루살렘 성이 있는 곳.. 등 다양한 표현으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그 궁국의 중심,

온 우주의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그 하나님의 보좌를 '산'으로 자주 표현한다.

그렇다면 오직 목적이

'순전한 하나님'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효는 아버지 , 어머니에 대한 감사 그자체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만 생각하는 것 만으로 온 영혼이 전율로 그득차고

하나님 만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를 지내는 것도 모자르게 되는 것..

그것이 기도의 순전한 제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련한 인간의 유치한 사랑에 목매다가

인생의 나머지 일들을 잃어버리는 그런 미련한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머지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더 풍성히 하실 것'임을 말씀하시엇다.

그리 표현하지 않으시더라도

당연히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러하실 것임은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하지 않겠던가?

 

그렇다 .

그러나 그러함에도 그리하지 못함은 웬일인가?

성장하지 못한 내 '부족한 그릇' 탓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

' 내 게으름 등의 결점'과 ' 타협과 무지로 인한 방치의 죄' 탓이던가?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온전한 하나님의 산을 위한 갈구'를 위한

다른 끊임없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난 .. 그것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함'이라 생각한다.

온전한 '내 하나님' ,

온전한 '인격의 하나님을 만남'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님의 은혜의 덕이기도 하지만

나의 갈구와

기도에 대한 노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감사와 기쁨을 알고

그 없음의 어이없는 허전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 앞으로 오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시다.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하니라
 그것을 '지혜와 총명'이라 표현하신다 .

다니엘은 가장 귀한 '지혜와 총명'을 얻었다 .

비록 그는 그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이나

놀라운 전율의 느낌을 받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말세의 날에 대한 '예언적 지혜'이지만

그..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힌

기도의 사람인 다니엘에게는

그렇거나 아니거나

진리 안에 서 있는 자 임을 스스로 알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사로잡혀 잇는 것이다.

 

 

내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온전한 기도의 바램... 이시다.

어제..

다른 때 같으면 크게 감동이 아니었을

메대 제국의 원년에 깨달음..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하시리라.. 는 것을

레마로 삼고

퇴근후 내 혼자의 공원 벤치에 앉아

묵상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놀라운 감동으로 내 속을 뒤집으셨고

난 내 스마트폰의 S노트를 열어

얼른 떠오르는 감동을 끼적이었다.

그리곤 하늘을 보았다.

어두운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

바람은 분다.

공원을 오르느라 힘껏 페달을 밟은 터라 땀이 있던 몸을

감아 도는 공기의 흐름이

마치 하나님의 쓰다듬으심 같았다.

 

그 감동을 누가 알랴.. .?

 

아..

난 조금 더 있으면

어쩌면 다니엘의 '총명과 지혜'에 근접하게 되지 않을까?ㅎㅎ

이전 같으면 나를 '위로'하고 '축복'의 직접적인 멘트가 없으면

어쩌면 .. 머리가 텅비어 아무 공감이 없었을 것을..

어느덧 하나님 자체..

그 분의 말씀으로 내게 임하심 만 가지고도

아무 것도 조건이 되지 않을 상황에서

하나님으로 감동하는 것이 그렇다.

 

 

주님.

오직 주님은 기쁨이시고

오직 주님은 내 존재의 이유이시며

오직 주님은 내 마지막 나아갈 길의 빛이십니다.

아직도 가끔가끔,

내 의식의 한구석을 치여 받치며

불안이나 연민의 감정들이 밀고 오려 하지만

이제 '기도'하는 자가 되길 원하나이다.

오직 하나님.

당신 만이 제게 계시고

제가 기도로 우리 주님을 갈구하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도

그걸 기억하여 떠올리는 순간

기뻐지고 감동이 몰려 나오려는

그런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

주여.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게 깨닫게 하신 말씀이

그러하심임을 믿습니다.

내주..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직 주님만이 목적인 자의 삶이 어떤 행복인지를

총명과 지혜로

늘 끊임없이 받아드리길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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