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에게도 새벽이 왔다 (행 23:12-30 ) 본문
제 23 장 ( Chapter 23, Acts )
이제보니
저기만 넘으면 되는데
그동안
난
홀로 떨어져 있는 줄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어두움은 물러가고
하늘은 저처럼 맑은데
난
그 생기를 몰랐었습니다
주님
이제 다시 깨닫습니다
나에게도 이제
날이 새매
새벽이 임하고 있음을요
감사합니다
날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
내 주여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날이 새면'
어둠이 지나가고 날이 밝아 오기에 그것은 희망인데
희망과 소망 중에
죽이기로 맹세하는 '살기 등등'한 40인은 나름의 '정의'를 이유로 그런다.
그게.. 그런데 옳은가?
어떤 이유로 '살인을 ' , '어두운데서' 하는 게 옳은가?
거기에 '날이 새는 ' 소망이 있는 때 그러는 게 과연 옳은가?
이들은 '패착'을 하고 있다.
가끔 이리 현실은 우리를 속인다.
때로는 '믿음' 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두움일 수 있다.
늘 우리는 '소망'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
그것이 치우치지 않는 유일한 '잣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둔 인생길을 가는 '내 발의 등불'이시다.
그 등불의 생명의 불이다.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사도 바울은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 같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럴 줄 비록 알지 못했지만
그의 생질이 나타나 정보를 고하고
천부장이 이토록 열심을 보인다.
우습도록 놀라운 일이 보인다.
40인을 방어하기 위하여 보병 200 명 마병 70명 창군 200명이다.
거기에 비밀스럽게 작전 지시하고 편지를 높은데..보낸다.
마치 '대통령 경호'하는 .. .
하나님의 위로가 아닌가?
오늘 묵상은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라 '레마'로 받아 들이기엔 오히려 어렵다.
그러나 전체의 분위기는 그랬다.
'날이 새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 오는 것으로 보아
주님은 나에게 '날이새매 ' 소망있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는 느낌.
그러나 거기에 40인의 믿는 자.. 들이 어둡기는 더욱 어두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아
어쩌면 그들은 날이 새는 것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것으로 대비 되는 것이고
그것은 '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인지 ' 사단으로 인한 어두움'인지
모두 내 결심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하심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님의 그 '담담함'을 느끼게 하신다.
그 분은 예루 살렘에 들어오시기 전 벌써 다 아시고 계시던 상황이다.
아..
이런 곤혹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거기에 그는 '하나님의 임재'가 계심을 확신하고 있었음이 중요하다.
여기가 그와 나의 차이인 것이다.
그는 '암담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고 '평강'을 선택한 자고
그외 제자들이나 나 같이.. 조금은 덜 성장한 자들은
암담한 현실에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울부짖고 좌절'하는 자들의 차이다.
물론, 오늘 40인의 어둔 암살자들은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마음 굳게 다짐하지만
어둠 깊숙한 곳에 머물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명분과 과거의 지식에 의하여 막혀 있어서
날이새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엮으심'으로
아주 우습고도 놀라운 대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천부장과 이름 모를 '생질'의 등장으로
그의 '로마행'이 속속들이 준비되고 있지않은가?
나.
절망적인 상황 비스므레 한 ^^; 상황에서 소망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시면 몇번 흔들려 뒤집혔을 상황이란 이야기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유도 있고
다른 이유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날이새는 것'이 나에게는 여명으로 느껴지고 있고
절망일 것 같음을 자꾸만 잊어 버리는 것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음이 사실이긴 한 것 같다.
그러나, 나 혼자만 살면 좀더 흔들림이 덜하겠지만
주위의 엮임은 자주 자주 날 바위많은 곳에 서있는 대나무가
바람 불면 흔들리는 것 같이
날 흔들려고 많이도 애를 쓴다.
그래.. 불어라 바람아.
불면 내 움직이는 소리에
또다른 '고아한' 풍취를 느끼는 군자도 있긴 있겠지..
비록 내 힘든 줄 모르고.. 하고는 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왜인지
자꾸만 '날 붙들려하는 강한 힘을 느낀다.'
날이 새어 있음을 모르게 하려는 강한 힘.....
환우를 보면서
난 자꾸 싸워야 했다.
더욱 친절하고 더욱 들어주길 결심하려는 '하나님 쪽의 마음'과
그렇지 못하게 하려는...
소망이 넘치고 말씀 가운데 성령 충만하면 싸움 자체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게으르면 여지없이 내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힘이 든다.
그런데 내 속의 40인들의 기운들이 날 붙들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이제 묵상 글을 다시 올린다.
아침에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글로 정리하며
내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움직임을 때로는 성령이 주장하시며 내 손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하신다.
그때 난 다시금 마음이 뜨거워 진다.
그 성령의 뜨거움으로 또 한번 이길 힘을 얻는다.
난.. 새벽이 왔음을 겨우 깨닫는다.
마음이 좋아진다.
적용
1. 흔들리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그리하자.
사도바울님이 모본을 보이신다.
그분은 죽을 지 모를 때까지도 주님을 믿었다.
그러니 천부장이 도왔다.
대통령 특사처럼..
2. 40인을 막는데 수백명의 군인이 동원된 거 같은 기적을 기대하자.
주님이 느낌 주시는데 막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ㅎ
이런 어이없는 축복으로 나와 내 가정을 축복하소서.
3. 나에게도 새벽이 왔다.
주님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새벽은 온다.
날이새고 어둠은 물러간다.
믿고 흔들리지 않는 변치 않음이 그 복을 누리게 한다.
4. 성령 충만을 기대한다.
성령 님 만이 날 바꾸신다.
5. 나의 하나님을 기대한다.
나 만의 하나님.
내 달란트, 내 환경, 내 버퍼.. 에 맞게 임하시는 내 하나님.
그 하나님을 강하게 기대한다.
성령이여 도우소서.
5. 성경 세장 읽겠다.
죽도록 성경 읽자.
기도
내 하나님.
오늘은 말씀이 어려웟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마음이 무거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40인 같은 어리석은 자들의 인식 못함에도 불구하고
새벽은 오고야 말고
죽이려 달려들어 죽임을 당하고야 말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또 천부장 같은 의외의 도움이 있음을 봅니다.
주님의 도우심입니다.
주님은 선이시고 주님은 가장 좋은 것 주시며
모든 것 다 아시는 분이심을 다시한번
소리높여 고백합니다.
주님.
내 주님
내 하나님
나의 구원자 시여
벌써 하루의 반이 지나가고 점심 시간입니다.
주님.
내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만 홀로 조용한 것 같고
이제 꼭 끝일 것 같은 생각의 단침들이
나를 묘하게 찌르고 가려 합니다.
이제 그 소리에 지지 않으려 하나이다.
벌써 새벽이 오고 날이 샘을 난 알고 있는데
어둠이 저리 저럽니다.
주님.
내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여.
오늘 어려운 가운데서도 레마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집니다.
도우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기도 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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