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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호와란다 (레19:19-3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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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호와란다 (레19:19-37 )

주하인 2010. 11. 18. 11:28

 제 19 장 ( Chapter 19, Leviticus )

 

제가 그랬습니다

 

잠시 주님 만남을

게을리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 향한

불타는 제 마음을

주님은 아시지요

 

그 마음

잊지 않게 하소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 보혈로

절 씻으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 센 머리 앞에 일어나라. '

백발의 노인 .

그 들이 오시면 일어나라 하신다.

그래서 아침 진찰 중에 몇 번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그랬다.

그 분들이 좋아하신다.

아들 뻘 되는 의사가 차트를 들고 따라나오니 얼굴이 화사해지신다.

내 마음도 화사하다.

 

'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참으로 나이드는 것이 수치스러워 지는 세태다. 

너무 빨리 변하고 정보가 넘치니 자연스레이 노인들의 경험이나 그들의 고집스러움은

사회에서 따돌림 받기가 쉽상이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은 감정의 공통 분모가 있지만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변해가니 어느새 그런 부분이 줄어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곧 나도 그 세대의 그 얼굴이 되어 갈 것이 뻔하면서도

노인들의 얼굴이 아름다와 보이지 않았었다.

그 분들의 살아오신 그 경륜을

하나님의 명령이 있으시니 다시 한번 이쁜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을 공경해야 할 것이다.

 

'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 경외.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는 시간이 더 많지 않을까?

어떻게 경외하는가?

그 분의 사랑을 기뻐하고

십자가를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순종하려 하듯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려는 노력이 경외함이다.

낮아짐도 곤경도 약해짐도 .. 주님 말씀 있으시기에 기뻐하는 것.

그게 경외하는 일이다.

 

' 나는 여호와다'

여호와 하나님.

홀로 스스로 있으신 하나님.

계속 몇번 씩

내용과 맞지 않는 명령 끝에 '나는 여호와다' 라고 되풀이 하신다.

보라 ..

37절에도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시지 않는가?

무슨 이유신가?

 

' 나는 여호와다.'

하나님이 여호와시고

홀로 스스로 계신 분, 여호와이신 줄 최소한 나는 뼈 속 깊이 안다.

고백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저러시는 가?

무엇을 이유로 저러시는가?

그러고 보니 오늘 말씀 역시 어제까지의 '근친상간,.......' 등의 너무나도 당연한 죄에 대한 이야기처럼

또 오늘도 당연한 '도덕적' 규율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나는 여호와'라는 당연한 말씀을 되풀이 하시는 것은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내 모습에 대하여 돌아보길 원하심이실 수 있다.

 

나.

무엇이 문제인가?

혹시 하나님과의 그 당연한 동행이 게을러져 있던 것은 아니던가?

습관처럼 환우들을 대하고 어르신들을 - 어르신 들이 난 좋다... 사랑 받는 편이다.  그 분들께.. - 혹시

함부로 대하여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공경'과 ' 경건'이란 점에서 무색해진 것은 아니던가 싶다.

즉,' 공경과 경건함과 게으름'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신 듯 하다.

 

 엊 저녁.

퇴근하고 얼른 일주일 만에 수영을 가기 위해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 가방을 들고

추운 바람이 그 옷을 두드리는 소리를 즐기며 길을 나섰다.

새로 이사간 집 주위에는 작은 교회들이 많다.

어제는 수요일이다.

 수요예배를 빼먹기 시작한 지 오래...ㅜ.ㅜ;;

어느샌가 당연히 여기게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내가 마음이 동해야만 하는...

남들 다 주일 예배만 드리는 데 그게 무슨 죄일까.. 라는 마음이 있었다.

걸어가는 주위에 일층에 유리창으로 예배를 드리는 적은 교회의 본당이 들여다 보인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 신도와 세 분여의 성도가

목사님 딸이라 생각되는 젊은 여성 반주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린다.

불쑥 들어가 예배를 들이고 갈까 하다가

그런 뜬금없이 받는 눈총을 죽도록 싫어하는 계면쩍어하는 마음이 날 가로막는다.

그래서 난 그냥 갔다.

마음이 찝찝하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25바퀴나 쉬지 않고 자유형하고 , 이어서 접영.. ...

몸이 나른하고 좋다.

 저녁에 자려 하는데 기도를 하려니 '정신없어 졸음이 밀려온다.'

그래서 잠깐 초특급 기도하고 그냥 쓰러졌다.

'왜 이리 피곤할까?'하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을 유지시킬 틈이 없이 잠이 온다.

 

 그렇다.

게으름이다.

어느새인가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들어놓은 삶의 틀 속에서

그냥그냥 안전하게 고민 덜 하면서

적당히 심적 안정감을 유지하는 선에서 '신앙인'의 모습을 유지하는 듯 하다.

마치  이 정도하면 하나님이 뭐라하시지 못할 거라는 그 선을 짐작하는 듯하다.

그래서 주님이 이런 메시지를 허락하시는 모양이다.

'주하인아.

 나는 여호와란다'

주하인의 그 어리석은 게으름,

알면서도 매너리즘 속으로 빠져 들어가려는 그 어리석음을

부드러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게 하시려는 것 같다.

' 나는 여호와다'는 말씀에는

'네가 열렬히 공경하지 않아도 나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이다.

 하지만 널 사랑하기에 널 붙들어 주려하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라.

 ...

 이것 중에 어떤 것이 네 눈을 붙들고 네 마음을 붙드느냐?

 노인이냐?

 백발이냐?

 그래 공경하거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이고 널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

그러시는 듯하다.

 

그래.

더욱 친절히 하려 노력할 것이다.

백발이신 분을 뵐 때일어날 것이다.

그게 이전과는 다른 행태라 부끄러울 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고

주름진 얼굴을 한번 더 들여다 보아주고

한번 더 말씀을 들어드리는 온유로 그 분들을 대하리라.

그리고 저녁에 '기도원' 들렀다 가겠다.

성경의 말씀을 세장 읽으리라.

 

감사하신 하나님.

귀하신 하나님.

당신의 뜻을 깨달아 갑니다.

참으로 어떤 분들에게는 쉬운 일이

저에게는 쉽지 만은 않기도 합니다.

오늘 묵상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착하고  교육 잘받아오신 분들에게는 공경하는 문제나

열심있는 지속적인 신앙의 유지함이 어려움은 아니겠지만

저에게는 이처럼 주님의 잦은 권고와 말씀이 있으셔야만 정신을 차립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렇게 쏟는 에너지의 비율이 없는 분들이 부럽기도 한 반면

이렇게 부족하고 힘든 삶이

매사에 주님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도구이기도 함이

어쩌면 감사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말씀으로 깨닫는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귀하신 주님.

오늘 저녁에 마치고 기도원 들렀다 가겠습니다.

당직이 없는 목요일이니 더욱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하신 하나님.

우리 주님의 뜻 아래서

오늘 진료 시간 중에 몇 분의 어르신 들을 위해 더욱 시간을 배려하고

그 분들의 백발을 보고 일어섰습니다.

그리하니 좋아하시네요.

그 얼굴을 보며 제가 더욱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이 전이 됨도 그렇고

그 얼굴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생각되니 더욱 두배세배 기쁨이 증폭되어서

더욱 내 이런 행운이 감사하였습니다.

귀한 하나님.

제 영혼의 습관은 짜증이나 괴팍함에 조율되어 왔기에

늘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 하기는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 성령의 도우심으로

제 영혼을 재 프로그램하는 이 과정에서

승리로 일관하게 하시어

주님 원하시는 성화된 영혼으로 절 이끄소서.

제 자식들 그리하시고

제 식구들 그리하소서.

믿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 그리하소서.

세상 모든 자..

그게 하나님을 여호와로 모시는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바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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