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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기[마24:1-14] 본문

신약 QT

끝까지 견디기[마24:1-14]

주하인 2014. 3. 31. 08:31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성전에서 나가시면서

갑자기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돌 하나도 돌 위에... "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서 가만히 앉으셨을 때

그때까지 긴장하고 고민하던

( 분위기상 그렇지 않을까? , 건물들을 감탄하려던 제자들에게 갑작스레이 뜨악하신 무서운 말씀.... )

제자들이 조용히 다가와 조심스레이

그 종말에 대하여 여쭈어 보자

대답하신다.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그 중

많은 사람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다'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지금의 세대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서로 이해하고 어떤일도 간섭하지 않지만

결국 서로 이해가 상충되어 부딪치는...

그게 지옥도 아닌가?

이해하는 듯하지만 자신들의 이해에만 충실하여

결국 부딪치고 마는..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불법이 불법이 아닌 것으로 되고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마구..

심지어는 종교지도자들 조차

자신이 '종교' 지도자라는 사실보다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회단체 지도자가 더 우선하는 지 착각하고

그 사회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에게 까지

초등생보다 못한 언어 '똥'.... 어쩌구 저쩌구 해도

당당한 세상이다.

그것.

불법인지도 생각지도 않는..

비단 그게 그 사람 한분만이면 정신적으로 이상으로 치부해버리면 되겟지만

사회 거의 대부분에서 그런 악함들이 들쑥 날쑥하며

이야기 거리가 되지도 않아야할 이야기들로

온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져 간다.

사랑한다.

이해한다.

받아 들이다.

소통이다.

관계다.........마구 떠들며 SNS ..번개.. 로 on , off 를 망라하며

인맥에 광풍처럼 몰두하지만

막상 그들 사이의 교류는 ......

없다 !

가장 발달한 교류의 시대에 가장 단절한 인성들은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고

그것은 가장 '자살'과 '우울'이 늘어나고

고독사하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하여 너무도 많은

사회현상으로

정말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고있다.

 

그래.

그것이 지옥이다.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단절되게 만들어 가는것.

가장 소통 잘되게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가장 번지르르한 문명의 시대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은게 없이

모조리 분열되어 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한다 는 말은 공중에

온 지구를 덮고도 넘칠 만큼 많은 말들이 만연하고 있지만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벽이 쳐져 버린 것.

그게..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사단의 궤계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땅.

이 삶속에서

우리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사모하는

'오직 하나'의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가 저들에게는 '별종'으로 보이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세상의 그러한 너무도 강력한 불법의 광풍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제대로 살려하는 온전한 기독교인들에게는

'갈등'이게 만들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신이 되는 시대에

단 하나의 신이라니?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에 '사랑'이라니..?

십자가에 몸바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오직 한분이 계시다니..?

그들은 머리가 깨질 것이고

그들은 갖은 이유로 우리에게 핍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러한 삶에서

우리 믿는 자가 마땅히 당할 운명은

'인내'다.

견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성경에 나오듯,

그날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지 않으시던가?

 그러나 다행이도

사모하고 인내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시다.

그날을 감해주신다 하셨다.

불같은 '광야'에서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간간히 물을 내셔

이 메마른 인생 사막에서 갈증을 해소하게 하시고

만나를 주셔서

배고픈 인생을 해결 해주시지 않던가?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틀림없이 그러셨다.

그러한 인생에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인내함의 결국은

'겸손'이고

겸손은 곧 주실 복이 있으심을 의미한다.

 

그렇다.

오늘 인내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으리라신다.

그것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통한 일차적 구원을 넘어서는

실족하지 않고 그 후의 상급구원까지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레마는 무엇인가?

 

'힘듦'의 당연함이다.

어쩌면 오랜 연단 기간을 통하여 수년간의 영화..

나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왔다가

최근 상황의 많은 변화를 보고 있다.

그러면서 불같은 연단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 마지막 때'에 대비하는 훈련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어차피 당연한 변화들.

지구적 변화.

인성들의 너무나 급격한 변화.

거기에 따라 나만 온실에 있을 수 없는

당연한 어려움들을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암시.

그것을 인내함이 옳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월요일임에도 한가하다.

한가함이 더 힘들다.

생각되어지는 불안한 일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인내'를 말씀하시고

결국 승리를 말씀하신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인내다.

주위에 자잔한 사랑 받음과 칭송받음을 기대하지 말자.

이 시대는 어차피 자기만 사랑하는 시대다.

 

 또한, 말씀이 있으시니 내 선한 결과를 '믿음'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이다.

그리고 오히려 더 기대함이다.

 

 

주여.

오늘 하루 또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찌 돌아갈지 사뭇 예상을 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마치 물이 들어오면 쌓아놓은 모래탑이 무너져

흔적도 없이 흔들려 버릴 것 같은 현재입니다.

주여.

세상의 모든 문명들이 석유만 고갈나면,

단번에 무너져 버릴 것들을

마치 천년 만년 살것처럼 아직도 현상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사상누각 같은

이 세상에서 불법이 판을 치고

사랑은 단어의 의미조차 퇴색되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럴 때

정말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무엇이 옳은 지 무엇이 틀리지도 모르고

성전 무너질 때

깔려 버리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아야겟습니다.

주님.

주님 말씀을 더붙들고 살아야 겠습니다 .

기도를 더하고

인내해야 겠습니다.

 이제 주여.

어려움이 예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때 몸부림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는 자 되어야 겟습니다.

사랑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진리에 매달려야겠습니다.

믿는 제가 되게 하소서/.

제게 믿고 잊어 버리는 능력을 허락하소서.

내주 예수여.

온전한 구원을 기대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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