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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길의 빛 발의 등(출10:21-29)

주하인 2015. 2. 12. 09:09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러실 때

순종으로 손 내밀면

 

우리 환경의

어두운 예측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평강이

또 소망이

마음에 밀려온다

 

말씀을 믿고

기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빛으로

다가 오신다


 
22.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  손을 내밀매'

이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괜히 가슴을 울렁인다.

그런 현상은 난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씀이시라 생각해서

조금 눈여겨 본다.

하나님이 모세 개인의 응답이 아니고

민족을 위하여 바로에게 하실 이야기를 말씀하시었는데도 ...^^;

( 나 주하인은 내 문제로만 은혜 받는 데...죄송..ㅎ)

손을 내밀매

그대로 된다.

 

연상이된다.

밝은 대낮에

손을 내밀자 마자

손 끝에서 퍼져

순식간에 먹물처럼 온세상을 덮는

어두움 들...

 

와.

하나님의 멋지신~ ^^* ~ 능력 ㅎ

이런 멋진 그림으로 단번에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계약과 뜻이심을 알지 않았다면

또 한번 머리 속에 지진이 일어났을 지도 모를..ㅎ

 

 

23.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이 있었더라
 그러한데

이스라엘 백성들 거주하는 곳에만

'빛' 이 있었다.

 

몇가지 구절들이 머릴 스친다.

' 빛이 있으라시니 빛으 있으시고...'

' 주님의 말씀은 내 길의 빛이시요 ,  내 발의 ...'

' 믿는 자에게는 그날을 감하리라'

 

그렇다.

온갖 버겁고

나랑 상관없이 괴리된듯한 말씀을 하시는 듯하고

계신 듯 안계신듯 내 작은 믿음의 레이더에 주님은 뚜렷이 보이지 않으시고

상황은 답답하고... 할 때

믿음,

바라는 것들이 벌써 생겼다는 확증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증) 을 가지고

손을 내밀면

그 어둠,

겨우 더듬어야만 만져 알 수 있을 그 절체절명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밝음이 되고 빛이 넘치게 된다 .

 

세상은 종말의 시계를 돌렸다 .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마구 파괴되어

지구 온난화가 급속화 되어 일어나도

그것을 보면서도

우리들의 경계심은 해제되어 '그럴 리가' .. 라는 무감각 속에서

세상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과로

마구 분란되어 이곳 저곳 , 모두 옳다한다 .

이제는 나라와 나라 도

제한의 틀이 없어진 것이다.

인도와 중국이 기존의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약탈 국들에 가세하여

세상을 온통 마구 잽이로 파해치고

그들이 먹어대는 오렌지는 세상의 가격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뱉어대는 오염은 세상을 어지럽히며

그들이빨아대는 지하수는 땅을 푹푹꺼지게 해도

더 이상은 제재할 수단이 없어져 간다.

사람끼리는 스마트 폰등의 비 정상적 도구를 통하여

'옳다' ' 좋다' .. 위안하지만

살을 부대끼고 만나는 기회는 점점 줄어

대다수의 현대인의  영혼들은

그들이 그처럼 주장하는 '자유'와 '인권'에 반하는

깊은 어둠과 장벽이 서로를 막아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단절되어

세대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주님이 십대 재앙을 보여주시고 계심에도

꼼짝하지 않는 바로 같다.

이제 곧 '흑암'이 세상에 밀려올 것 같다.

괜한 종말론 주의 가 아니다.

종말의 시계는 걷잡을 수는 없다 .

이제.. 그 시기는 하나님 만이 아실 것이지만

곧 올 그 흑암과 재앙의 시기에

우리는 그래도

'빛'에 속하게 될 것이고

그게 '희망'이고 소망이다.

그게 '믿는 우리'의 기쁨이다.

 

 나는 올 시대의 운명이

크게 두렵지는 않고

그게 내 인생을 좌지 우지 할 정도로

깊은 실감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어쨋든 현실은 암담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무엇에도 의미를 두기 힘들다는 것...

그것이 '우울'한 일이다.

소망이 없고 예견되는 미래만 보이는 것..

그것에 현실이 누르면

그게 암흑 아닌가?

 

그러나, 우리, 나에겐 '소망'이있다.

실제하는 평강이 있다.

'빛'이 내 안에서 소록소록 밝혀지는 듯하다.

이유없다.

현실적 이유 말이다.

 

오직 하나님을 전제해야만 이해가 되는

'빛'이다.

사실도 그렇다.

하나님은 내 달란트에 맞게

까마귀 밥 같이 살리신다.

적당한 정도의 빛으로 나를 밝히신다.

그러니 더 욕심 부릴 일도

더 좌절할 일도 없다.

그래서 편안하다.

평안하다.

그게 '내 '게는 '빛'으로 느껴진다.

점점 더 욕심이 사라지고

밝음이 커진다.

 

 

 

24.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문제가 있다 .

아직 팔랑귀다.

유혹에 대하여 가끔은 흔들린다.

그 흔들리는 나를 향해 자책하는 소리들이 나를 흔든다.

가끔은 내 잘난 이성 ^^;; 을 가장하여

나를 흔드는 소리들이 있다.

' 이러 이러하면 '그게 좋은게 아닌가?

갑자기 세상이 보이려 한다.

'이렇게 만 하면 훨씬 더 나은게 아닌가?

 이렇게 해야만 잘 될 것이다... '

 

 

25.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그러나 그래도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원리,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는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고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

 

오늘도 아침을 말씀으로 열었다.

다행이도 아침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시작했다.

감사하다.

 

주님은 온통 어두움 뿐일

내 인생의 허무한 기조에

빛으로 다가오시고

내 어두운 인생의 방향을 밝히시고

내 발 헛디디지 않도록

이처럼 말씀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

발의 등불, 길의 빛으로 말이시다.

 

 

 

주여.

온전하신 내 하나님.

이곳.

매일

주님의 이름을 하루 종일 있어도

내가 기억하지 않고는

들어보지도 못할 척박한 이곳 환경에서

주님은 매일 같이 이렇듯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오직 깊고 청결한 마음을 허락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돌아보면 어디하나 암흑같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세상을 눈들어 쳐다보면

'화'만 나려고 합니다.

그 암담함의 어리석음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갈길 몰라 방황하며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만들어 놓은

SNS..........등의 문명이란 이름에 갇혀

허덕이다가 영혼의 힘을 깎아 먹히고 갉아 먹혀가며

지구는 온통 병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

주여.

이 바로 같은 미련한 자들.

이 어리석은 흑암의 백성들에게

그래도 '주님'을 바라보고

빛으로 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소서.

어둠 속에서 '빛'으로 올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만 바라보는 사람들 늘어나게 하소서

믿는 자들에겐

더욱 말씀으로 인도 받아

성령 충만한 삶이 되어

그들의 적당한 타협과 유혹과 

절대 다수의 미련한 강압에 흔들리지 않고

온전한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들 되게 하소서.

그게 .. 제가 되게 하소서.

주여.

저는 믿습니다.

제 발을 인도하시는 매일의 말씀

제 길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빛을

오늘도 바라보고 갑니다.

부디 간구할 것은

제 자식들... 제 식구들..

믿는 모든 형제 자매들.. 주님이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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