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해 안감도 이해 감(출9:1-12) 본문
10.그들이 화덕의 재를 가지고 바로 앞에 서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악성 종기가 생기고
'화덕의 재'
하나님은 왜 '화덕의 재'를 이용하셧을까?
다른 유연한 방법도 많은데...
멋지고 힘들지 않은...
굳이 화덕의 재는 또 어디에서 구했을까?
왕궁 식당에 들어가서 일까?
아니면 애굽에 화로가 왕의 시무하는 공간에 있었을까?
그렇다면 꺼진 불이었을까?
다른 곳에서 집어 들었다면
' 바로 앞에 서'
바로 앞에 가지고 오는 내내
흘렸을 텐데..그러지 않기 위해 비닐도 없는 그 시대에
어디에 담아 왔을까?
또한 , 이들. ..
바로 입장에서 보기엔 그리 달갑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매사 매사
바로 앞에 설 수 있었을까?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인정해서 만나 준 것일까?
그렇게 정치적 부담이 있었다면
무리한 짚으로 벽돌 만드는 요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분명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의 입장인데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렇게 대우할 이유도 없엇을 것을...
바로 앞에
매사에 서게 된 다는 것 도
'기적' 중의 하나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
누구도 생각하지 않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운 현상.
그 현상이 당연하게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 일진데
그런 내 일상에서의 일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불면증'이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
담배가 20년 2갑씩 피던 것이 하루 아침에 끊긴 것?
기도하자 마자 이루어진 8천만원의 응답?
........
그런데 그 모든 기적이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 처럼
마치 '그럴 수 있어던 ' 자연스러운 것 처럼
생각되어지는 일...
그러한 것이
' 재'를 가져다 뿌리고
' 바로 앞에 ' 항상 설 수 잇는 것.. 아닌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버거움을 무릎쓰고
바로 들에게 직접 가르치시려 했을까?
10번씩이나 애굽의 백성들,
모세들에게 고충을 허락하시면서 까지
바로를 마음을 고쳐 먹게 하시고
또 그러셔야 했을까?
멋지게
광장에서
사람들 불러 놓고
굉장한 퍼포먼스를 하고
하나님, 당신의 그 엄청난 능력으로
될 자들은 되어라....하시며
다른 스토리로 이끌어 가시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수천년의 세월을 내려오면서
주하인,
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려 하는 자들에게
깨달음을 주려
이러하셨더라도
더 멋지게
더 완벽하게
스토리를 이어가실 수는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이 아침에
묵상을 하면서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공통된 현상이 있다.
'재'
'바로 앞' .. 등은
일상에 관계가 있다.
바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
왕이라는 삶과는 떨어진 존재로서만 생각하여
설화처럼 , 소설처럼 인식되어질 수 있지만
이들도
인간 바로이고
그 인간이 고뇌하는
심성의 변화,
그 무지한 고집,
변화하지 않는 자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고
그러면서
갈등은 얼마나 할까..하는 부분이 인식되어지며
살아있는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의 삶을 넘어서
당신이 약조하신 것을 흐트려 버리는
그러한 세상에서의 참견은 안하신다는 것이시다.
비록 출애굽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크게 역사하신
얼마 안되는 '표징' 들이시지만
그 마져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깊은 속내,
그들의 삶 속에서의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는
가능하면 역사하지 않으시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무엇을 보길 원하시는 것일까?
내게 바로의 입장에 서 보길 원하신다면
' 두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이스라엘 노예 대표들이 들어오더니
뭐라 얘기 하기도 전에 '화덕'쪽에 가서는
테라스 쪽으로 가더니
하늘을 향히 집어든 재를 뿌린다.
그 재는 마침 강하게 불어온 바람을 타고
온 애굽으로 퍼져나가더니
몸이 군실 거리며 악성 종기가 돋아 나는게 아닌가?
아.. 저들.. 저들의 뒷모습.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왜 나는 저러한 자들을 막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절대 권력을 가진 내가
수많은 힘을 가지고도
저들을 암살하거나 없애버릴 생각 조차 못하고 있단 말인가?'
..........
라는 생각들이 가능할 생각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뒷모습,
악창에 고생하는 우리
재....
나 주하인의 오늘 삶속에
어떻게 연관지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바로의 입장에서 관조한
오늘 묵상의 관점에서 무엇을 바라시는 것이실까?
무엇을 알리려 하시는가?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레마로 주시는 장면이실 수 있을까?
그 잠시 연상하는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이시려하심일까?
단지,바로처럼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말고.. 하는
'계몽적' , 교훈적 차원 말고..말이다.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느 하나
우리의 좁은 상견으로는 이해가 되는 바가 없다.
모세 등도 순종은 해서 하지만
재와 악성종기,
악성 종기와 이스라엘 백성의 이익
출애굽의 방법과 재의 상관관계
재뿌리는 자신들이 살해 당할 위험은 없는지...등
수없이 많은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결국 ... 출애굽과 10대 재앙이 연결되지 않던가?
그 의혹을 넘어
결국 수천년 후에
주하인은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
묵상을 하며 환자를 기다리지 않던가?
하나님의 역사는
알기 힘들지만
반드시 '선'이시다.
내 수십년 후의 모습은 또 어떻게 '선하게 ' 유지 되어져 갈까?
주여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깨달아 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져 가고
기기 하고 묘묘한 하나님의
이 일상에 하시는 일은
눈에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듣지 아니하려 해도 듣게 되기도 하며
생각지않아도 하시고 계시며
그것을 인식하는 제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비록 아둔하여
오늘 말씀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이해하지 못함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내가 계획하지 못하고 상상조차 못하던 일도
모 두 주님의 선 가운데 있음을 믿게 하소서.
그 선이
비단 나 뿐 아니라
온 우주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도
받아 들이게 하소서.
부디 간구할 것은
그 재와
재뿌리는 마뜩지 않은 바로의 모세와 아론 모습이고
악성종기 여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게 하소서.
특별히 인간의 화합을 내세우고
인간이 우주의중심인 것 처럼 생각케 하는
현 상황에서
하나님의 중심적 생각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도전의 기간입니다.
주여.
이 어려운 시대를
주님을 더욱 깊이 믿으며 신뢰하고
그러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우선이 되는 삶을
더욱 깊고 강하게 붙들게 하소서.
내 주여.
우리 가족들 그리하게 하시고
인생에서 성공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삶을 공유하는 자의 목표 속에서
괴리를
재 뿌리는 자의 버거움으로만 인식되지 않게 하시사
그 차이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이글거림
온 우주의 섭리자 예수
천국의 과정..................으로
깊이 이해가 되어
삶이 힘이 있어지는
우리 가족 되게 하소서.
벌써 3주째
이전과는 다른 삶의 행태,
떨어져서 사는 삶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 안에서도
주님의 영광 드러내게 하소서.
앞으로 몇번 다가올 도전을
기쁘게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의 빛 발의 등(출10:21-29) (0) | 2015.02.12 |
---|---|
우주와 영원의 원리[출10:1-20] (0) | 2015.02.11 |
문명과 믿음(출7:8-25) (0) | 2015.02.06 |
난 그래도(출6:14-7:7) (0) | 2015.02.05 |
혼돈 속에서도(출5:22-6:13) (0) | 2015.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