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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로 일컬음 받다(마21:12-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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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로 일컬음 받다(마21:12-22)

주하인 2010. 3. 4. 12:04

  제 21 장 ( Chapter 21, Matthew )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가로막는  장애물이

더라도

그 길이 편치 않더라도

이제는

건너서

조금은 더

순수해질 수 있길  원한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에서

 순수하고 평안한

아가 같은  가치관으로 

완전히 바꾸어 지길

소원한다

 

비록 

아픔이 있을 수 있고

저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그리될 수 있길 

간절히 원한다

 

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성전.

그 귀한 곳을 '이익'으로 더럽히는 일은

과감히 - 주님이 이토록 분을 내시는 것은 여기 단한번 뿐이시다 ! - 없어야 한다.

어쩔수 없는 生活苦(생활고)性으로 잠시

깨닫지 못해서 생기는 무지로는 약간은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고범죄는 혼나야 한다. 

 과감히 떨구어야 한다.

그것은 추악한 것이다.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

그 곳은 '기도하는 집'이다.

나.

성전이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 '일컬음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14.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치는 

최소한 그런 긍휼의 마음을 가진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들이 모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내 직장도 그런 성전같은 직장이 되었으면 한다.

 


 
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아이들의 그 순수함.

그런 순수한 찬미가

성전,

내 영혼에서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순수함.

순수하기 위하여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난 돈 자체는 그리 큰 유혹을 못느낀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것은

죽도록 싫어했었다.

 자꾸만 아기들이 이뻐 보이는 것.

그 이쁨이 살떨리는 감동으로 이뻐보이는 것.

어찌보면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느낌을 알게 해주시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영혼이 아이 들 같이 순수해지길

강하게 바라시는 주님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손해볼 것을 각오해야한다는 것을

그것이 아이같은 순수함을 회복하는

일단계의 장애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근자에

H군 직원들의 수억원 비리 사태

정치인들의...

공무원들.

그것도 모자라

교육계의 비리는

스승의 그 존엄함이 무너진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가르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여지없이 무너 뜨린다.

 의료계는 어떤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하여 다양한 제도를 만들고 있다.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아니 솔직히 경제력이 나아지면서

이전보다는 훨씬 ~ 덜한 양상임에도

투명해질 수록 그 뿌리 깊은 '죄악'의 근거들이

깊고 넓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어쩌면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어

죄가 죄가 아닌 듯이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죄가 아닌듯한 죄 속에서

죄를 뿌리치려면

이것이 어찌 '손해'보는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면서

유혹을 끊기 힘들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그외에 다른 이유도 많다.

의료계의 리베이트 문제.

그 검은 사슬은 당연히도 악이긴 하지만

그러한 구조를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우리나라 의료 수가 체계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는 검은 유혹에 손내밀었다고

범죄자로 모는 양상.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는

이 큐티에서 다루기는 너무 광범위하고

성격이 다른 것이기에 굳이 따질 수도

따지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유로

악이 악이 아니게 되어

심지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하여도

'댓가'를 요구하게 되는 파렴치한 일을 하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떳떳히 교회에 나가 예배 성수하고 한다는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고범죄 -고의적으로 짓는 범죄-는

주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싫어하심은 '은혜'가 떨어지고

성령이 충만치 못함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함은 다시 돌려 말하면

영이 악해질 수 있고

실족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것은 또 다시 확대해서 말하면

오늘 예수님의 진노를 유발할 수 있는

그러한 더러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전이다.

기도하는 집이다.

그것을 잘안다.

누구도..

기독교인이라면..

하지만, 그것이 내 생각 뿐이라면..

남들은 나에게 '일컬어 주지 않는'

나혼자 만의 구원받은 기도하는 자라는 착각이라면..

주님을 뵐 그날에

주님이 '날 '모르신다 하시면..

주님 천국의 문이 굳게 잠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게 된다면..

 내 영혼의 더러움에 너무 분노하셔서

저렇게 혼을 내시게 된다면..

그 영원한 후회를 어찌 감당하게 될까?

 

 수술이 늘어나고

새로운 장비가 많이 사용되면서

장비 업체의 방문이 잦아 진다.

나.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유세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들에게 최대한 성실하게 대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손해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리베이트...'

나에게는 먼 단어처럼 행동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조차 그런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손해보는 것 기뻐하는 마음.

그것을 주님이  원하신다.

남들이 나보고

'주하인은 기도하는 자다. '라고 일컬어 주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내 영혼이 순수해지길 원한다.

아직도 걸려드는 이 손해의 억울함,

비단 그들 뿐아니라

살면서 순간순간 드는 이 억울함을 버리고

주님 앞에 더욱 순수하길 원한다.

그래서 내 삶이

지금껏 인도하여 오신대로

더욱 더 풍성한 영감과

강렬한 감동으로 순간순간 사로잡히는

그런 나날이 커졌으면 한다.

아이의 그 기쁨으로

내 영혼이 소리질러 웃을 수 있길 원한다.

 

 

 

적용

1. 성경 여덟장 읽겠다.

 말씀 만이 고범죄를 깨닫게 하는 기준이다.

 주님 성령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과거의 죄는 더 이상 날 억울치 못하게 하실 수 있다.

 

2. 아기같이 순수하겠다.

 손해를 감수하겠다.

 사람을 믿고 선함을 믿겠다.

 

3. 기도하는 자.

 삶이 기도가 되길 원한다.

 주님 뜻대로 ..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한다.

 내 인간성 자체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 아주 아주 조금씩 난 말씀에 비추어

 날 바꾸어 간다.

 기도하는 게 그것이다.. 라는 생각을 잃지 않겠다.

 

4. 한번씩 돌아본다.

 남들이 나보고 기도하는 자라 일컬어 주겠는가?

 회개하고 반성한다.

 혹시 나로 인하여 실족한 자는 없는지..

 내가 주님을 욕보이지는 않았던지..

 

5.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

  그보다 더 손해 보는 느낌은 배제한다.

 주님의 임재감을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 죄는 멀리한다.

 

 

기도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뜻 가운데서

순수하게 변할 수 있길 원합니다.

아기의 그 의심치 않는

하얀 순수를 닮기를 원합니다.

주님.

쉽지 않습니다.

욕심이 아니면

저에겐 포악이나

안절 부절의 성격적 특질이

절 그리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면 좌절도 절 막습니다.

주님 성령님

주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도우소서.

저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멀리하게하사

주님의 임재를 가까이 하게하소서.

그리하여서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순수를 유지하여

저로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 일컬으시는 기도하는 자가 되게하소서.

제 자식들 그리하소서.

아 나라 그리하게 하소서.

내 주위 모두 그리하게 하소서..

이곳에 들르시는 모든 분들 그리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근자에 부쩍 늘어나는

주님의 이땅에 대한 분노를 늦추시길 원하나이다.

주여.

종말론적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주님 곁으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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