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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인정함 (마 21: 23-3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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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인정함 (마 21: 23-32)

주하인 2010. 3. 5. 12:05

제 21 장 ( Chapter 21, Matthew )

 

 

 

주님

내 속의 어두움

우리 주께 맡깁니다

 

성령꼐

내 영혼 의탁합니다

 

주여

흐르소서

 

주여

씻으소서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뛰어난 자격을 가지신 분이 아니시다.

그럼에도 성전에서 들어가서 가르치실 때

많은 자들이 나아와 그 설교를 들었다.

그 많은 자들은  그 분의 어떤 권위를 묻지 않았지만

성전에서 설교를 들었다.

하지만, 몇몇

즉, 대제상들과 장로들은 설교를 들었지만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 후 항의를 한다.

그러시자 예수께서는 다른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느냐 사람에게서 왔느냐?'

그들은 당황한다.

예수님의 질문은 정곡을 찔르신 것이시다.

너희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가치,

너희들을 움직이게 하는 '권위'는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사람의 권위' 즉, 세상의 가치를 따라 움직이는가

' 하늘나라' 즉, 하나님의 뜻 ,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려 하느냐 하는 질문이시다.

이것은 다시 나에게 물어보시는 말씀이다.

'주하인

너는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사느냐?

이땅의 부귀 영달을 위해 사느냐?

하늘 나라를 위해 사느냐?'

난 주저없이 '천국을 위해 이 땅을 살아간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할 게 있다.

매일 매일 매순간 매순간

난 정말 천국을 위해 사는 자로서의 나의 당위성에 대하여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주 잊는다.

하지만, 잊는 빈도가 조금은 줄어드니 다행이긴 한다.

오늘 예수님 설교에

세상적 자격에 의미를 두지 않고

열심히 듣는 많은 민초들.

그들은 그 시간에 왜 그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대하여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던가?

 그들은 체험을 하거나

예수님의 그 카리스마에 대하여 무조건적 반응을 할 수 있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런 그들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

갑자기 돌변하여 십자가에 달도록 소리지르는 자도 나왔을 수도 있다.

 

 이 '귄세'에 대하여

변치 않는 순종이 되려면

아니, 그보다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의 권세에 끌릴 수 있기 위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던가?

 

 일단의 권세의 종류에 대하여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 대 제사장 일행들은

자신들이 목숨 걸고 있는 권위의 대상이 '율법'이고

수천년을 지속해온 관습이고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욕심,

즉 가장 적나라한 '세상의 권위'에 대한 무조건 적 따름일 것이다.

 그들도 영적인 권위자의 위치에 있도록 하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지만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권세에 대한 말씀에 대하여는

전혀 인식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단지 공격과 방어자의 모습,

철저히 '야수'의 본능 같은 모습만 보인다.

본능적인...

 그 이유는 무엇이던가?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그 감동을 깨닫지 못함이다.

 

 권위.

권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앎이 필요하다.

알기 위해서는 감동이 필요하다.

그 권위자에 대하여 순종할 때 오는

강렬한 감동의 체험이 필요하다.

 오늘 성전에서 설교를 듣는 민초들은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카리스마, 

그 분 말씀의 권위 있음에 대하여

마음을 열려 있었기에

세상의 자격은 설교를 들음에 아무 저항이 되지 못했다.

 

 나.

첫 사랑

출애굽시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다.

불면증 없어짐.

아내와의 대화 시간이 대폭늘음

눈물

자동금연

권리금.....

그 후에도

..................

.................

.................

참으로 많은 간증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큐티'를 시작하게 된 경위와

그 후 내 내적변화와 전율의 이어짐

진료 패러다임의 전환

사진.

트럼펫

내 생각의 변화..................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의심 많고 의혹이 많은 내 특성이

믿을 수 밖에 없어진 현상

 '샬롬'

'평강'의 체험.

 

이러한 변화는 나로 하여금

그 분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하고

확신은 '그 분의 권위'에 순종할 수 밖에 없게 하고

순종은 축복과 더불어

깨달음의 지평이 넓어져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원리 가운데서 바라볼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의 원리가

늘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내 선택에 있음을 알고 있다.

 주저없이 하나님의 권위 쪽을 선택할 때

가끔 현실의 손해에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주님의 그 평강과 축복이

나에게 임하여

더욱 큰 이익으로 올 수 있음도 알고 있다.

판단 후 내리는 선택의 기준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말씀은 매일매일 성령의 음성으로

날 지도하고 인도하신다.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주님의 뜻을 선택하면 실수가 줄어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원리 가운데서 선택이 어려울 때

'권위자를 인정하라

 세상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구절을 통하여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실수하면 회개한다.

회개는 영을 새롭게 한다.

새로운 영은 날아갈 듯한 육신적 에너지도 허락하신다.

예수님 믿으면서 정말 감사한 것 중의 하나는

실수조차도 가볍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수십번도 더 짓는 죄.

이전에는 잊어버리려 애를 써도

늘 뒷골을 무겁게 하고 마음이 눌리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이 해결해주심을 회개와 감사로 기다리면

가벼워 진다.

그리고는 점점 죄의 욕구는 줄어든다.

 이 모든 것.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님의 권위를 선택하기를 결심하고

말씀에 서려할 때부터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적용

 

1. 성경 여덟장 읽겠다.

 

2.  선택을 잘하겠다.

  주님의 권위 안에서 순종한다.

  손해가 있을 수 있더라도 주님의 뜻이 맞다면 그를 따르리라.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은 주님의 원리와 세상의원리 가운데

더욱 주님의 원리 가운데 거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현실에 적용시키기야

늘 그리 쉽지 않지만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 되어서

이 어두운 세상을 오늘하루 살아가는 데

또 나를 지키시는 기준이 됨을 압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가 가볍습니다.

고민이 덜어집니다.

이전에 재고 자르고 판단하고 불안해 하던 것들...

주님의 뜻 안에서 가볍게

주님 말씀의 틀 안에서 하면 되니

더 이상 그게 힘이 들지를 않습니다.

나머지 남는 영적 에너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삶의 발전을 위해서 사용하려 합니다.

아니..

그리됨을 체험하고 살고 잇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리 못하는 저들 바리새적인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저는

너무나 기쁘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주님의 지혜가 아니면

넘어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

주님.

어제가 그랬습니다.

괜히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는 옛 판단들이

사람들을 정죄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주님.

이제 습관적으로 세상의 원리로 모든 것을 보던 시선에서

주님의 원리 , 주님의 권위 아래

당신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반사적으로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에게 제가 감당할 수 없었던

그런 죄악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저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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