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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황홀하다[행22:12-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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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황홀하다[행22:12-29]

주하인 2018. 2. 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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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걸어가다 올려다 본 하늘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뚫고 들어오

내 가슴을 흔듦은


그리고 그 하늘에 걸린

구름과 겨울하늘이

그리도 아련히 보임은


이 버겁고 모진세상 살면서

오직 내 의지할 곳은

주님 밖에 없음을

이제

내 전 영혼이 확신함이요


그를 알아

솟아오르는 힘듦을 참아내며

두눈 질끔 감고

우리 주 예수 십자가앞에 다가갈 때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과

눈녹듯 녹아내리는 버거움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그 황홀한 기쁨

내 안에 누려지는 천국의 감동으로

날 맞아주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하심의 기억 탓이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언제나 만나주시는 주님

감사 감사

진정 감사할 뿐이다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기도할 때 '황홀한 중에'... 라는 구절이

눈에 뜨인다.


기도..

황홀한가?


아..

난..

황홀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

왜 난 이 표현을 잘 쓰지 못했지... 라는 후회가 들정도로...


실은 .. 그런데

기도하는 내 이유, 아니.. 많은 분들... 사도 바울 님의 그 시점을 돌아보아도

황홀할 만한 상황이 되어서 기도하는 분은 거의 없다 .

 오히려 황홀할 정도로 성공할 때는

잠시의 감사를 올리고는 오히려 더 기도가 짧아지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

기도하는 상황은

정말 , 진정, 감사할 때 해야 하지만

이 미련한 인간들, 특별히 나는

어려울 때 기도한다 .


그런데 그때 만나주시는

하나님.

성령의 깊은 임재감은

황홀하다는 말이 참 .. .족하다 .

상황이 변할 것임이 예견되는 기쁨,

상황이 변화되어지지 않더라도 찾아오는 든든함,

상황과 상관없이 나를 채우는 충만함.

상황을 넘어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망'의 기대감..


어찌 표현을하더라도

그 자체가 '황홀'함...이 맞다.

비록..

우리의 영적 성장, 우리의 심리적 불안정, 현실을 매개로 한 사단의 더 큰 누름이

눈을 뜨면 잊어 먹게 해도

그 때의 그러함은 '황홀함'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기도하려면 하지못하게 유혹하고 , 막아서는 영적 방해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버겁고 힘들고 하더라도

'기도'를 더 힘쓰게 되는 것이 아닐런가?


비록

황홀한 감동에 대하여

눈을 뜨면 잊고

기도하려면 더 버거운 공격이 와도 말이다.


기도는 황홀하다.

그래.. 기도는 황홀한 것이 맞다.

 그래서 더 기도해야 하고

황홀함이 눈을 뜨고도 유지가 되고

그 황홀한 하나님의 임재감이 그리워 더 기도하도록 하시는 원동력이다 .


하나님은 황홀하신 분이시다 .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기도'다 .

기도해야 한다 .

더 그래야 한다.


하나님.

머리가 아프려 하고

마음이 쪼개기려는 듯하고

불안하려 했습니다 .

그러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괜찮아 졌습니다.

미래가 ,

현실이

날 누르려 해도

난.. 현재의 하나님을 기도로 만나고 있습니다.

미래 마져 바꾸고

현실을 변화시킬 하나님을

기도로 만나고 있습니다.

황홀하신 하나님은

황홀한 기도의 기억을 자꾸 떠오르게 하시어

내 죽어

주님 앞에 가게 될 그때까지

'나를 변화 시키어

점점 더 나은 내가 되도록 하실 것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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