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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의 그릇[롬9:19-29] 본문

신약 QT

긍휼의 그릇[롬9:19-29]

주하인 2018. 9. 19. 11:14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오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다.

'그릇'

그릇은 무엇을 담기 위한 도구다 .

우리는 '그릇'이다.

무엇을 담으려고 태어난 게 우리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게 아니고...

 그것.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네 인생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하여 이땅에 태어났음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 몸부림쳐도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다 .

'자식농사' '성공' '이름 남김(호랑이 가죽..  ㅎ )',

'이룸을 남겨놓고 감.. 창조 , 예술? 철학 ............???..........

그 어떤것도 의미가 될 수 없다 .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하여지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그릇' .. 그릇으로서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생을 살아내야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이리 생각하면

'아.. 우리가 노예야?'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

그것..

너무 자유롭게 세상에 살다가

'유물적' 세계관.. 서양의 과학적 세계관에 의하여

물들어 버렸기에 그렇다. ㅠ.ㅠ;;

보이는 것만 믿으려하고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며

증명되어지지 않는거  (어찌... 모든 것을 증명할까?.. .. 태양계.. 만으로도 어마어마한데... ㅠ.ㅠ.;;) 는

믿지 못하겠음은

개미가 컴퓨터를 부인하는 것보다 더 미련한 일인데..

어찌되었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주인'이라는

거짓 자의식을 넣어주는 '유물론' 뒤의 '사단의 권세잡은 궤계'에 의하여

세상의 중심이 우리라는

어이없는 논리에서 시작되는 오류에서 비롯한다.


 중 (僧)^^;; 이지만 '탄허스님'의 '님의 침묵'에

'속박'이 더 좋다는 표현이

그 분의 대상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하나님의 영,... 에 체험을 한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의

그 체험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아

이상히도 공부하지 않고 무식했던 (참.. 책도 안읽고 컸다. ..난.. 정말이다.ㅎ) 내게

지금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로서

세상을 바라봄.

그것...

난.. 그 분의 지어진 자로서

그 분이 내 그릇됨에 부어주시는

'긍휼'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 담아진 영을 쏟지 않고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다가

마침내 내가..

그릇이지만

긍휼의 그릇이요..

보배이신 하나님의 영을 담은 그릇으로서

오직 .. 난.. 하나님을 담고 살았던 자로서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 되고

그런 그릇으로서

내가 하루하루를 조심스레이 살아내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것..

결국.. 내가 스스로

'난 긍휼의 그릇이었구나' 함을 진정으로

이 눈뜨고 쳐다보는 이 유한한 시간 (시간이 .. 무슨의미일까? .. 언제가 현재고 .. 언제가 미랠까?)에

그래도 '하나님의 영'이 내게 담겨계시기에

오늘도 행복하구나.. 사랑받고 있고.. 잘 살고 있음을

흐뭇해하다가

담아 주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그 분의 은혜에 절절히 끓어가며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마치 그릇에 포도주 향 담기듯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향기'를 머금은 그릇이 되어가다가

주님 부르실 그 날에

'보배그릇 '이 된 '긍휼의 그릇'으로

기뻐 두손들고 감이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간다.


 이러함..

이러함이

단지 말장난이나  철학적 유희의 결과물이라서

삶과 의식과 따로 분리되어

설화 많이 아는 수염지긋한 할아버지가 아니고

살아가는 도중에 이것이 하나님의 영을 담는 자의 결과물이고

내 그러함이 결국 세상에 영향을 미침을 발견하게 되고

삶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게 되는

신행일치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난.. '긍휼의 그릇'임이

점차로 믿어지고

그 말씀.. 그 로고스 만으로도

행복의 조건을 갖추게 되어가게 될 듯하다 .

감사하다.


 주님.

긍휼의 그릇으로

절 선택하고 만드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채워주시사

제가 그러함을 깨달아 알아가게 되고

점차로 내 속과 내 주변에

내 삶의 반경모두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광이 비쳐지고

반응되어 다시 내 삶이 변하는 그러함을 체험하여지고

목도하게 되고 증거하게 되는 자됨을

경험하게 되니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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