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선한 의인으로 살자[롬9:30-10:4] 본문
10장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의'로움은
'율법'과 상치되지 않는다.
세상의 법... 관습.. 양식.. 일반적 행태.. 등을 포함한 '율법'이
우선시 되는 것은 '의'를 이루지 못하지만
'의'롭다고 하면서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행태는
결코 의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의롭다'
의로움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
그러함은 결코 행위로서 '율법'적 준수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지만
의로운 자가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행동을 '현상'으로 보여지지 않고는
'의'라는 것은 '환상'이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의'를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오늘 말씀 구절은
'의로운 자는 그 행위의 올바름'까지 동반되어짐을 말씀해주고 계신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지만
의와 율법을 동시에 이룸이 가능치 않은 이야기다.
의로울 행동을 좇아 의로운 자가 되기 원하는 자는
그 의로운 듯한 스스로의 판단 기준 자체가
새로운 '깊은 교만'이 되어
가장 의로운 자가 가장 교만하다는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한 많은 예로서
거룩한 숫탉이라는 교회 내부의 자책성 비아냥도 있고
사이코 패스 같은 '교인'들이 개독교라는 소리로 세상의 놀림을 받는 현상들이
그 증거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로운 자는 행동이나 성향에 올바라야 되는
그 의와 율법의 동시에 이룸이 불가능한가?
아니다.
예수님.. 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로 들어갈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지속적으로 말씀하신다.
우리.
원죄적 존재들.
그러한 숙명적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순간
'의인'의 자격을 부여 하셨다 .
그리고는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심으로
매일 매시 매초 다시 올라오는 '자범죄'들을
십자가에 가져다 내려 놓고
깨닫고 사함 받아
결국 온전한 하나님, 그 분의 '의'를 향하여 갈 특별하고 온전한
'삼위일체 ' 하나님의 배려를 하셨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우리.. 이 미련한 자들은
'이 땅'의 썩은 것들의 유혹에
또 넘어지고 넘어져
결국 '의'로운 것이 무엇인가 .. 왜 의로워야 하는가?
의로울 당위성..
그마져 잊어 버리고 살게 되는 것이다 .
허덕이며 이땅에 머리를 박고 살다가
'하나님'은 그 썩은 것들을 얻는
도구나 마치 주문 같은 수준으로 타락 시켜 버려
그들에게 '의'로울 이유는
하등 의미가 없는 '전설'의 헛소리들로 느껴지게 된다.
이 ..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는
그래서 .. 하나님의 유일의 존재하심'에 대하여 저항하게 하고
그분의 그토록 우리에게 바라시는
'의'로움에 대하신 명령은
헛소리로 들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
다행이도
나.. 주하인
우리.. 선택받은 소수들은
그래도 '의로울 당위성'에 대하여 알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어서
이 땅위에
생존자로 살지만
그 삶이 그리도 만족스럽지 못한 공허함을 깨달아
그래도 '의로워야 함'을 알고 추구하고 있다.
오늘.
말씀으로 또..
하루를 붙들고 살아야할 레마를 주셨다 .
'의'로운 행동을
말씀이 있으시니
기쁨으로 행하고
그 행함에 저항하는 '죄'들을
죄의 법칙이 하나님을 따르려는 내 영혼에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니
이제 '생명의 성령의 법'칙으로 인하여
죄된 욕구들을 내려 놓음으로
그러한 결단과 노력 만으로도
하나님이 내게 '옳은 하루'를 살고 있구나 위로하시고 기특해 하실 것을
느끼며 사는 하루가 되리라.
그게.. 감사하다.
주여.
의로운 자로서
옳은 행동을 하고 선택을 하렵니다.
환우 가운데 .. 어려움에 부딪쳐 고민하는 자에게
주님의 옳으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의로우심'을 의지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그에게 위로하듯 말하니
기뻐함을 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이땅에서
오늘 또
이렇게 의롭게 행동하려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주여. .
저를 더 붙드셔서
흔들리지 못하는
선한 의인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시니 [롬10:14-21] (0) | 2018.09.22 |
---|---|
오늘 붙들 말씀[롬10:5-13] (0) | 2018.09.21 |
긍휼의 그릇[롬9:19-29] (0) | 2018.09.19 |
그분의 긍휼 그 분의 불쌍히 여기심[롬9:1-18] (0) | 2018.09.18 |
그래서 난 또 다시 산다[롬8:18-30] (0) | 2018.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