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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될지라도[단3: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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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될지라도[단3:1-18]

주하인 2014. 6. 11. 10:50

일견 밝아 보이지만

분명코

곧 비가 올듯한 흐림입니다

 

아직 햇빛 보이지만

틀림없이

세상은 곧 어두워질 것입니다

 

이때 내게 필요한 것은

흐림을 아는 지혜와

올 비를 대비하는 준비입니다

 

그보다 더욱

제게 필요한 것은

그래도 우주의 흐름은

십자가의 떠받침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온전한 깨달음입니다

 

주여

그러고 보니 감사합니다

흐림과 구름의 하늘이

십자가로 인하여

다른 아름다움임을

알게 되어서요

 

 

 
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세상이 '바벨탑'을 또 다시 쌓고 있다 .

과학 발전이 눈부시게 이루어지며

유전자, 로봇, IT, 우주항공학, 의학...

정말 거침이 없다.

마치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생명' 마져 과학 안에 잡아 넣을 것 같다 .

도덕, 윤리.. 는 이제 의미없는 헛소리가 되어가며

자연의 이치조차 '인권'으로 무시되어 가고 있고

'신'은 우스운 헛소리로 무시되어진다.

 

 

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모두 '자기 ' 가 중심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가 중심이라고 , 자신이 '금우상'이라고 속삭이며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들은 다 풀무불에 넣어버리면 된다고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무서운 소리들이 있고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그 '사조'에 동의하지 않는

'절대진리'를 사수하는 자들은

모두 '이방인'이라 하며 몰아부치고 조롱하는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의 무서움과

어찌 이리 닮았는가?

 나.

잠시 묵상을 하며 저들의 상황을 생각하려니

다니엘이 '금우상' 만드는 것을 보며

어떤 반응을 했을까 가 불현듯 생각되어진다.

 

그것.

분명히 유일신 하나님의 뜻과는 정면 반대이지만

자신은 그 상황 안에 있고

세상은 분명코 느부갓네살의 손에서

이방인의 나라의 풍습에서 살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데...

저것들을 바꾸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저히 바꾸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냥 포기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 , 그 분의 살아계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던가?

큰.. 것은

도저히 판단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기도하지 말고

될 것 같은 것만 기도하는가?
어디까지 기도할 것인가?.. 가 드는 생각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은 그러하게 기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을 짐작케 하는 게 17절이다.

그는 대신 기도하길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니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구해낼 것이다.. 라 했다 .

그것.

시대 사조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란 생각이고,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세상의 큰 흐름은 하나님의 프로그램 , 하나님의 계획 중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아시고 허락되어진 것

즉,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 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기도하고 바꾸면 된 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불합리,

지금 세상의 그 어리석음은 언젠가 예수 재림시에 조정하실 것이시며

이 불합리의 용광로 속에서 허락되어진 것은

우리의 '연단' 즉, 제련을 위함이시니

그 안에서 '내'가 변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시란 것이다 .

 

하나님은 권면은 하시되 세상을 흐름대로 두신다.

그 분의 인내의 시간이 되어 그 분이 오실 때가 되면

그 분은 세상을 고치신다.

우리는 그를 기도는 하되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둔다.

대신 하나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깨어 있어서 알 수있는 지혜와

그 안에서 나를 바꿀 능력을 기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과정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셔서'기적'을 베푸시어

모세에게 반석에서 물내신 것과 만나를 먹이시던 것 같이

나를 잠시 환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붙들어 주신다면 너무 다행이시지만

아니시면 나를 바꾸어 그것을 견디게 될 능력을 주시고

나에게 허락되어진 더 큰 영적 수확을 허락하시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영적으로 큰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

 

기적은 잠시의 피할 안위와 은혜의 감동을 허락하시는 것이지만

연단의 성공으로 인한 내 영혼의 성화는

그렇지 않으셔도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늘 받아 들일 수 있는

자격을 이룸이니 더 기쁜 축복 아닐런가?

 

오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이 가슴에 꽂힌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아옵게 되길'이라는 구절이 참 부럽다.

나도 그리되길 간절히 바라곤 있다.

그러나, 저런 직접적인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그리 흔들릴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

그러기에 그러함을 더 바란다 .

 

다시 오늘날의 세상으로 눈을 돌려본다.

가끔 불안하다.

어제도 고백했지만 세상이 마구 변하는 중에

논리적으로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우스운' 지경으로 빠질 개연성이

너무 많아지고 서구의 정신적 혼란으로

모조리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가는 점이 두렵다.

 

그렇지만 강아지가 어찌 사람을 알며

개미가 인간의 세상을 어찌 이해할까?

그 전제로도

지속되어지는 영적 혼란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의 장기화는

하나님을 알기가 너무 어려운 조건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

 

이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 그리 될 지라도

하나님을 더 깊이 믿고

모든 것 받아 들여 녹여낼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길

믿는 자들 될 수 있길

간절히도 기도해본다 .

 

 

주님.

놀라우신 내 하나님

정말 편한 시대입니다.

그 안에 앉아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는 자의

어쩌면 교만일 지 모르는

주하인이

이시대 금 우상이 너무도 커다랗게 만들어져 가고 잇는 시대에서

겨우겨우 숨만 쉬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주여.

 

부디 간절히 비올 것은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 다니엘의 믿음을 주시고

금 우상 시대를 바라보며

옳게 기도하는,

무엇에 대해 기도하고

무엇이 아님을 잘 알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지혜를 주소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확실히 잊지 않게 하시어

눈뜨고 살동안 주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눈 감을 때까지 주님 영광위해 살게 하소서.

혹여 다가드는 위협과

혼란으로 인하여 고민하지 않게 하소서.

온전히 주님을 믿게 하시고

내 상황마져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

모두 알지 못하시는 것 하나도 없어 허락되어지 것임을 확신 가운데 믿게 하소서.

내주여.

힘을 주시고

특별히 가장 어려운 포스트모더니즘의 금 우상들의 교란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들 되시도록

이곳에 오시는 '선택받은 소수'들을 깨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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