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럴지라도[창11:10-30] 본문
10.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셈'
약속의 자녀.
그의 족보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이제 나홀의 대까지 내려오니
29살에도 아기를 낳게 되며
점차로 여명(餘命, 남아있는 수명) 이 짧아지게 됨을 보게 된다 .
아담의 원죄 이후로 120살 까지 살 것을 말씀하신
그것이 그 후에도 한참을 900살 넘게 자녀를 낳고.. .하더니
이제 점차로 짧아져 간다.
26.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30.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그리고는 데라 때에 갑자기 70살에 낳았다.
사래도 마찬가지지만..
아마도 '불임'이란 예외적인 '병'에 속했지만
칠십대 되어 낳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은혜를 보게하신 경우가 아닐까?
무엇을 보이시려 하심일까?
지금 내가 거하는 곳이 평야가 아니고
내 현재의 상황이 축복의 상태라 아니 느껴진다해도
주님의 축복은 여전히 유효함이다.
아직 우리가 주님을 내 구주로 모시고 삶이
내 삶속에서 유지되고 있다면
이미 받은 복은
우리가 인식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시간에 드러날 것이다.
축복의 자녀인 셈의 계보는
여전히 그리 대단한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안다 .
그 분의 족보에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것을...
그렇다 .
그 복,
그 축복은
비단, 겨우 이 땅에 발딛고 80여년,
오래 살아 보았자 주의 말씀대로 120년을 살지 못할
우리네 눈에
그 '복'이 보이질 않더라도
그 복이 없음이 아니요,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주님은 주님의 뜻에 따라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복을 준비하고 계심이시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이있다
내 원함, 내 욕망에 따라 '복'의 테두리를 정하고
내 안절 부절함의 눈으로
주님의 시간을 재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음이다.
내게 느껴지던 안 느껴지던 (이제는 알 듯하다.. 주님의 복이 늘 함께하심을 .. )
현상황이 영적 불임처럼 느껴지던 아니던
그것 모두 주님의 원리 가운데
잘 될 것이다.
어려움과 힘듦, 광야가 아닌 산지의 그러함,
이해할 수 없는 불임같은 고난.. .
그 어떠함에도
난.. 우리는
'이미 복 받은 선택받은 자'이다.
가만히
주님 앞에서
잠잠히 참아 기다리다 보면
주의 허락하신 때가
내게 소롯이 다가 오리라.
그리고
우리의 결국은
또 .. '복'된 삶이었음을
고백하고 소천하게 되리라.
하루 하루 의 삶이
'행복'하리라.
할렐루야.
주님..
어찌 이해가 되리까?
어찌 믿어지리이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성령의 충만한 상태가 아니고는
어찌
이 복된 자의 삶이 어떠한지
이해가 되리까?
이 육신의 껍질을 입고
이 사단이 득세하여 횡행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잠시라도 틈만 되면
이 작은 인지능력을 흔들어대고
이 좁은 마음을 온통 사단의 소리로 채워대려 하니
어찌..
온전하시고 크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제 안에 머물겠나이까?
어찌..
이미 받은 복과
난 , 우린 벌써 복된 자,
구원 받은 자로서의 그러함이
믿어지고 이해가 되겠나이까?
삶은
거센 파도처럼 덮쳐오려 하고
불임같은 터질 것 같은 인생의 문제들이 우리를 삼키려 하니
주여..
이 부족한 자들은
매사에 넘어지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으시고
그 말씀을 흐르는 성령의 임하심이 계시면
제 안은 온통 '복'의 기운으로 가득참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순간순간 사모하게 됩니다.
아..
진리와 허상,
주님이 이 땅에 허락하여 놓으신,
아담이후의 인생의 과정에 허락하여 놓으신
그 영적 싸움에서
오늘도
다른 깨달음을 이유로
한번 더 승리하는 계기를 허락하심을 믿습니다.
주여.
오늘의 하루에서도
주님 주신 말씀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내 주여.
복된 자로서
또 승리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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