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내게 부활의 의미는[고전15:12-19] 본문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부활'
부활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다시 살아나신 일.
부활.............
계속 이리 나온다.
말씀에.. .
내가 그리 들어서 그런지
설교하시는 젊은 목사님의 목소리가
'부활'을 열심히 주장하시는데
공허하게 들린다. ㅠ.ㅠ;
잘 모르는 것,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으로 치부하여
아는 것처럼
아니라하면 안되는 것처럼
강제로 '주입'하는 거 같이
'부활'이란 단어를 그리 그리 강조하신다.
아............
식은 땀..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어찌 다 말하랴.
이 즈음에 들어서면서
세상의 일들이 버거이 밀어닥치며
가끔은 바닥을 향해 날 잡아 끌려 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ㅠ.ㅠ;
몇년 전
병원 지하의 GS 사장님 딸을 수술해주면서
같은 믿음의 자매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갈 때마다 그리도 반기시는 분이 신데
아프신지 쭈구려 앉아 계시더니
내가 가니 얼른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시더니
'아프냐'시니 '그렇단다'
'허리가.. '
그러면서
내게 그러신다 .
'잘 지내시냐?'고.......
다행이도 아침에 기도하고 나온 탓인지
가슴이 헝클어짐은 가라앉고
복작거리던 머리는 차분해졌다.
'부활인가.. 이게?' .......할 정도로
이 전이라면
내 가 당면하고 있는 버거움에 지축이 무너질 정도로 흔들렸을 것을
그냥......'잘 지낸다'고 하면서
'우리 나이 사람들이 겪을 그 당연한 혼돈만 빼고요......' 했더니
박수를 치시며 공감해주신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면서 또 바리바리 빵이랑 달걀이랑 ......싸주신다.
'언젠가는 은혜를 갚으리라' .. 빈말하듯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내려 놓고
얼른 도망치듯 필요한 '커피'.....등을 사가지고는 진찰실로 올라왔다.
'우리가 바라는 것'
그랬다.
난..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그러함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계획하고 세우면 흔들리면 안되는
그래서 굳건히 밀고 나가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러지 못할 정황 등에
많이 흔들리는 면이 없지 않아 많았다. ^^;;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이
겨우
'이 세상의 삶' '뿐'이 아님은 맞는 듯하다.
그 시작점은
당연히도 '예수님'이고
기도며
다시 부활함이다.
그렇다.
아침까지.. 고민거리로 고민하며
그 고민의 실체가 실제보다 훨씬 크고 강해
고민의 원인이
고민 자체는 아닌지...........
고민은 '세상에 관심이 박힌 '
내 잘못된 방향 설정 탓은 아닌지.......
많이도 꼬이고 힘들었다.
'부활'이라시는
당연하고 귀한 진리..
특별히
말씀 묵상과
성령의 은혜로써
그때마다 허락되어지는 ' 매일 새로운 내 마음'의 경험을 하면서
부활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오늘 말씀은
내 고민을 전혀 읽어주지 못하는
'부활'에 대한 뜬구름 (죄송합니다.. 그 마져 사단의 소리일지 압니다. . ㅠ.ㅠ;) 잡는 것 같은
상황에 마주하면서
내 흐트러지는 마음 속에서는
'과연 부활이 무슨의미인가... 내게?' 라는 외침이 올라왔었다.
그러나,
알기에
그냥 입에서 나오지 않는 기도를 붙들었다.
옆에서 틀어놓은 '찬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상기하며 집중했다.
출근시간이 다가오자
차분~해졌다.
그랬다.
분명코 누구를 찾아 헤매며
나를 위로 해줄 대상을 의지하거나
그가 없는 이 나이의 공허함과
곧 더 마주할 '홀로 있을 ' 나이의 두려움에
더 버거워야 할 것을
오직 하나님으로만으로도
채워질 수 있음을 깨달아지고
그것 연습시키기위하여 허락되어진 '혼돈'이구나.....생각이 불현듯 들어왔다.
마취가 아니다 .
차분해진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 나를 아시며 붙들어 주신 것이 맞다.
괜한 고민으로 내 영혼이 사로잡혀
영적 에너지가 빠져 나갈것을 아시고
부활의 주께서
상황에 맞지 않은 듯한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허락하시고
내 영혼이 부활할 기회를 얻게 하심이다 .
거기엔.......
이전의 덜 성장했던 시절의 하염없이 흔들리던 마음을 붙들고
억지로라도 주님 말씀에 집중함을
귀히 보신 내 주님께서 그러하심이 맞는 듯하다.
아침의 배려하여주신 그 분과
동료 여샘과의 상의
아주 오랫만에 염치 불구하고 '문제에 도움을 주실 선배님'과의 통화를 통해
나름 길을 열게 해주심도
그러한
내 버거운 싸움에서 승리하고
'부활'의 단초를 다시금 깨닫게 하신
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를 느끼게 하심이다.
앞으로........
내 그리도 두려워하는 '낮아짐'에 대한 버거워함,
현실에 대한 그럴듯한 예상을 통해 미리 힘들어함 ......등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 놓아 보아야겠다.
앞서지 말고
기다리면서 싸인을 보리라.
지금껏 인도하신
부활의 내 주님께서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어 보자.
주님
왜 그리
유달리
버거운 일들에 자주 마주 함을 허락하시는 지요.. ?
얼마나 더 가야
이 세상의 힘든 관심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지요?
얼마나 가야
내 안의 버걱거림을 순화키 위해 허락하시는
이러한 고통으로 부터
좀 편안하여 질지요.
부활이란 아침의 말씀에서의 되풀이를 보면서
그 화려하고 대단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함을 통해
또 홀로 짊어져야할 버거움에 힘들 뻔 했습니다.
주여.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내게
오늘
'부활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나도 모르게 외치다가
부활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부활의 자격을 또 얻었고
주님의 철저한 은혜로
또 그리 되어감을 느낍니다.
이전에도 그러하셨듯
그런 고난을 통해 한단계 ....더 제 인생의 술기들이 늘고
마음이 넓어짐을 체험하게 하실 듯함을
눈치채어가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힘을 주시고
내 편이신 하나님이
날 부활시켜주심을 믿으니
그러합니다.
내 관심이 세상의 것 뿐에서
점점 더 주님만으로 .......바뀌게 하여 주심이 그렇습니다 .
내 주여.
잘 잡아 주신 은혜.......의 평강으로
더 큰 부활의 경험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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