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러므로 생각하라[엡2:11-22] 본문
주의 화평의 결과
십자가로 담을 허무신 증거^^*
그러므로 생각하라
주님은 십자가로
모든 담을 허무시고
이리 축복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렇다 .
아무 변화 없는 , 늘 똑같은 일상에
그래서 하루 하루, 시간마다 죽여가고 있는 듯한
이 땅의 시간들에서
'생각할 일들'이 남았고
'의미'가 될 것들이 아주 많았고 또 많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
생각하는 하루가 되거라.
그 생각하는 하루는
내 의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행태..
나에게 허락되어진 육체의 능력으로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
그것 ..
다 아시고 계심을
난 안다.
그래서
그러므로 생각하라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부담이 없다 .
기대한다.
또 '생각없이 하루를 죽여갈 것을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답답해질
또 하루, 또 일주일이
기대가 되고
의미가 생겨진다.
그런 느낌으로
말씀 첫구절 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할까?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더 정확히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낄까?
아니.. 더 확실히
무엇을 생각하게 하여주시고
무엇을 느끼게 하실 것이며
무엇의 진실을 깨닫게 해주실 것인가다.
'그때에 너희는'이다.
'그때에 나는'이다.
난... 이랬던 자다.
예수님을 모르고 ,
약속의 외인이요
따라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딱 그게 나다.
불신 시절의 나는
생각하기도 싫다.
그 암담함과 지금도 남아 나를 순간순간 잡으려 하는
그어두움의 무게들이
소름끼치게 싫다.
'그때의 나'는 절망 뿐이었다.
지옥의 삶이고
정말 하루하루가 죽지 못해 살고
죽음만이 유일한 유혹이었었던 그러한 삶이었다.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당연히도
'이제는' 아니다.
그것을 '생각하라' 시는 것이시다.
'이제는'
난
주님과 가까운 자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
아 ...
이표현이 얼마나 날 기쁘게 하고
내 딛고 있는 바닥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느껴져 올 때마다(아....점차로 더 자주.. 점점 더 오래.. ^^*)
얼마나 든든하고 기쁜지 모른다.
깨어서 주님 앞에 서 있을 때
말씀에 근거하여 세상을 바라볼 결심을 할 때
그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내 영혼이 기뻐할 때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내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지 모르다.
정말이다.
그로 인하여
그 기쁨을 놓치기 싫고
그 기쁨, 주님 안에서 주님과 가까이 된
이제의 나.. 를 놓치기 싫어서
이 게으르고 규칙없는 나태한 자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러한 '묵상의 글'을
거의 매일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분은
'화평'이시다.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분은
내 부정적이었던 영으로는
도저히 가능치 않았을
'화평'과 '화목'의 기준이고 기초이셨다.
나와 나의 화목
나와 주변의 화목
나와 하나님과의 화목.
이제 3박자가 잘 이루어져 간다.
내 안에 그 당위성과
그러함을 위한 성령의 은혜로 인한 평강의 에너지가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나온 주님 동행을 통한 영적 전쟁의 결과를 승리로 가져오며
내 안에 굳건히 자리잡은
확고 부동한 방향성,
개념
인생을 살아갈 이유로서의 하나님의 뜻과
그를 위하여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화목'으로서의 결과물과
내안의 충만한 행복감들이
날... 그리로 가게 하신다.
이제는...
난..
그러므로 생각하여야한다.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이 생각해야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은혜의 목표와
당위성과
허락되어진 결과물과
또 힘내어 살아도 될 기쁨..........을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곧 시작될 태풍 힌남노의 아침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태풍전야라는 말이 어울리는 듯
비가내리지만 아직 바람은 많이 밀어닥치지 않는
폭풍전야의 아침 입니다.
월요일 아침인지라
더욱 마음이 무거운 듯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러므로 생각하라
이제는
그때는 ... 하시며
저를 붙들어 일으키십니다.
그 생각하라심이
다른 어이없는 생각들을 일거에 자르시기도 하지만
생각할 힘을 줄테니 생각할 결심해보거라
그러면 이전의 그러함과는 차원이 다른
단단한 반석의 하루와 일주일이 또 되리라. ..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제게 힘을 주시고
믿는 자들에게 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점차로 다가오는 '주의 날'을 위하여 깊이 기도하게 하시사
허락되어진 이 마지막 날의 프로그램 하에서
이 막된 길에 서 있는 지구의 모든 인류들에게
어찌 기도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과는 다른
이제는 생각하고
이제는 더 감사하고
그러므로 힘내서
그래도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살아내는 하루되길 소원합니다.
주여.
당신의 이름으로 세상 끝까지 가 있는 선교사님들
이름은 하나하나 다 불러 드리지 못하지만
더욱 더 깊이 붙드소서.
가쟤 힘든 그 상황에 이 마지막적 상화들이
얼마나 더 힘듦을 가중시키게 될 지요.
주여.
암담하여 주저앉지 않게 하소서.
생각하게 될 것이 넘치게 될 만큼 많았던
하나님과의 간증들이
그들의 오늘에 더욱 힘차게 넘치게 하소서.
내 주여.
우리 가정 지키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보내주신
우리손녀.......그 새생명도 끝까지 붙드소서.
더욱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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