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느 13:15-31 ) 본문
제 13 장 ( Chapter 13, Nehemiah )
창틀에 놓인
자그마한 물건 들
오래되어
깨끗지 않은데
커튼을 치고 보니
그럼에도
볼만하다
창문의 얼룩짐도
그대로
그림자 비친다
그러니
그럼에도
볼만하다
주의 빛을 받으니
그들이
그럼에도
볼만하다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든 이유가 반드시 죄만은 아닌 것을 알지만
죄가 있어서 힘이 드는 이유가 상당하다.
죄가 씻어지고 정결화되어 오길 원하시는 연단은
역시 고통이지만 희망의 고통이다.
죄가 씻어지지 않아 되풀이 되는 고범죄는 '체벌'성 고통이다.
희망이 없는 고통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죄가 고범죄가 되기 전에 '회개'를 해야 한다.
오늘 나에게 되풀이 되는 고통은 무엇이던가?
그 고통이 나의 죄에 의한 것이던가?
아니면 어쩔 수 없었던 상처에 의한 것이던가?
선천성으로 내려오는 결과물이던가?
먼저 '죄'에 의한 것이 아니던가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더 이상 되풀이 되는 고범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고통을 자초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죄로 인한 어이없는 결과물이다.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29.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내 하나님이여'
이 고백은 느헤미야님이 내내 되풀이 하는 감동의 언어다.
내 하나님.
내 아버지
내 사랑....
이 '내'가 주는 친밀함의 의미는 얼마나 따사한지...
내 진료실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아침 햇빛이 내 등을 어루 만지고
묵상글을 올리는 내 '모니터에도
살포시 기쁜 느낌으로 내리 앉는다.
내 하나님.
그 내 하나님께서
이 느헤미야님의
이 '내 하나님이여'라는고백을 공감하게 만든다.
찬양이 부드럽게 컴에서 흘러나온다.
참 기쁘다.
아 .. 나도 고백하고 싶다.
'내 하나님이여'..
느헤미야님의 그러한 친밀한
그러면서 그 삶을 전적으로 인도하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처럼 당연하게도 소리높여 간구하고 고백할
그러한 깊은 믿음은
그의 삶의 행태에서 나온다.
늘 주님 앞에 서있음.
그 분이라고 왜 죄가 없겠는가?
왜 죄의식이 없겠는가?
오늘 보이는 강력한 포스 ㅜ.ㅜ; 도
어찌 보면 이웃에게 함부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주시는
명쾌한 생명력 때문에
그는 자신을 깨끗게 유지하고
그 깨끗한 영혼은
그로 하여금 깊은 고백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 하나님이여 ~! '
아...
내 고백이길 원한다.
'아.. 내 하나님이시여'
' 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여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 구원이자 생명이신 내 하나님이시여....'
그리고는 느헤미야님은 계속 고백하신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그의 주님 앞에 주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인지한
무의속 속의 그 영혼은
이처럼 얼굴 두껍게 ^^; 기도한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세요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옵소서.'
정말 나에게 부족한 것.
저런 것들.
친밀감.
그 친밀감의 부족.
내 하나님이
' 날 위해
나를 기억하시고
주님의 크신 은혜대로 ( 주님 주시고 싶은대로 가능하면 크게 ^^;;)
나를 아껴주세요' 라고 저분 처럼 쉽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부러운 하나님과의 관계인가?
저런 친밀함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대로 사는 ..
그래서 격의 없는 상태의 관계처럼 보인다.
부럽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범죄 - 오래된 되풀이 되는 범죄-를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죄를 지었기에 주님에게 혼나고 있던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혼났음에도 또 짓는 죄는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 시작하는 묵상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혼나는 것,
내 미련한 죄로 인하여 혼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내 어리석은 죄로 인하여 주님이 먼 것 같은
메마른 갈등은 고만하고 싶다.
계속 며칠 째 멍하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마음이
어제의 묵상이후 조금은 나아졌다.
내 영혼의 '도비야의 방'을 깨달은 후
주님이 기뻐하시는 지 오늘은 조금 낫다.
마음은 나은데
배가 영 말이 아니다.
탈이 났는 지 연신 ... ㅜ.ㅜ;
어제.
아내의 기도 탓인지 허리가 또 나았다. ^^*
수영장 갔다.... 서둘러 교회갔다 오니 10시경
배 안고 팠는데 늦은 저녁을 차려 달래 열심히...먹었다.
그러고 나니 아침이 괴롭다.
이 어리석은 식탐.
자꾸만 '야식'이 당기고 그걸 자제하기 힘들다.
아침이되면 영락없이 더부룩한데...
그래서
늘 오늘 저녁은 야식을 참아야 하는데...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만 되면 '난 살 잘 안찌는 체질이고...' 변명이 올라오며
그 순간을 못참아 덥썩 먹어 져친다.
배가 부르면 영이 둔하다.
육신과 영의 소욕은 같이 누릴 수없다는 원리를 알면서..
실제로 속이 좀 비어야 머리도 제대로 돌고
영혼이 좀 맑아짐을 누구든 느끼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알면서도 어제는 과식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아프다.
잘 탈이 나지 않음을 자부하던 이 어리석음은
아니나 다를까...
묵상에서 주님이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하신다.
그러면서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어리석은 영혼을 질타하듯이
'내 하나님' 하신다.
'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날 아끼옵소서'하신다.
그래
이 적은 유혹도 못이기면서
어찌 죄를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오늘 송년회인데...
이구..
영적인 것에 대하여 더욱 그렇지 않는가?
죄가 아닌 듯,
이 정도면 된 듯한 그 익숙한
고범죄를 밝혀 내야 한다.
그리고 배탈이 나기 전에
느헤미야님이 그러셨듯 과감히 쳐 내야 한다.
아픔이 있을 것이 당연한 그 고범죄의 익숙함을
주님은 쳐 내라 하신다.
이방여인이 부인이 되어 얼마나 살갑게 할 것인가?
그 살가운 죄를 더 이상 끌고 다니면 안된다.
그것 만이 주님과 친밀한 그 느헤미야님의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육적인 재미보다 훨씬 큰 영적 기쁨,
진리의 하나님의 기억하심과 아끼심을 사모해야 한다.
그 놀라운 친밀함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
겨우 이방여인과 아들의 속닥거리는 육적재미에
또 죄를 짓고
그 죄로 인하여 부정적인 두려움과 불안에 살기는 싫다.
달콤한 야식의 유혹으로
더이상 아랫배 아프고 힘든 날은 싫다.
적용
1. 내 벗어버릴 고범죄는 무엇인가?
. 야식을 안먹겠다 ^^*
.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강팍함.
. 게으름.............................
. TV에 잡히는 육적 게으름을 벗자.
당직이다.
TV 안 킨다.
공부하겠다.
2.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외우자.
.
3. 내 하나님.
내 하나님.
......... 묵상하자.
주님과의 친밀함을 묵상하자.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5. 회개하겠다 .
당직 중 기도로...
주님의 친밀하심을 사모하자.
기도
주님
제가 이유를 잘압니다.
나의 죄된 속성이 남아 있음.
그리고 아직도 장님 지팡이 같이 들고 있는 상처에 적절히 뒤범벅함.
주님의 사랑 많으심을 교묘히 의지해 눌러 앉아 버리는
이 게으른 영적 심성.
의심 많은 심성.................................................
주여.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시고
주여...간절히 부탁할 것은
저에게 믿음을 더해주사
말씀대로 느껴지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이 되풀이 되는 고범죄를 용서하시고
이 죄로 인하여
더 이상 흔들리고 휘둘리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특별히 느헤미야님의 친밀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고
생각할 것이 많았습니다.
내 하나님.
내 하나님
나를 위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 뻔뻔한 친밀함이 부럽습니다.
그 분의 그러할 자신감과
주님과의 동행한 강도와 시간이 부럽습니다.
그 분의 그것을 영혼 깊숙이 이해하는 그 친밀함이 부럽습니다 .
주님의 크신 은혜를 인하여
자신을 아껴달라고 합니다.
그 분의 그 절절한 영적 단순함과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을 보고 잇습니다.
귀한 믿음을 저에게도 허락하소서.
그러기 위해서
그래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가
제 영혼에서 들리지 않도록
죄에서 멀게 하여 주소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적에 옛적부터 (시78:12-29 ) (0) | 2009.12.19 |
---|---|
( 시78:1-11 ) (0) | 2009.12.18 |
절 붙드소서(느13:1-14 ) (0) | 2009.12.16 |
감사하며 노래하며 ( 느12:27-47 ) (0) | 2009.12.15 |
거룩한 성에 머물기( 느11:1-12:26 ) (0) | 2009.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