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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꼽추였지만 나도 꼽추였다

주하인 2007. 7. 6. 09:42

 제 3 장 ( Chapter 3, Proverbs )

 

 

 

 어제 공주 사범대학의 성악과 교수이신 백기현 교수께서 본원 SBS행사 -Sam Bible Semina-에 다녀가셨다.

 '곱추 50년 인생'이란 주제로 간증과 찬양인도였다.

큰 기대를 않고 앉았다.

그 분은 외견 상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상대적으로 크시고

눈이 좀 이상하게 보이시는 그런 분이시었다.

 교수 출신 답게 집중해주기를 연신 강조하고,

아마추어 간증자의 냄새를 풀 풀 풍기면서

문어체(文語體)로 말씀을 하시면서 깍듯이 존경어로 말씀하시는 그 분의 간증의 시작을 들어가며

조금 있다가 키타 들고 조용히 집으로 가서 쉬어야 겠다고 맘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 해야한다는 생각에 차 있는 것 처럼

또박 또박 이야기를 해 나가셨다.

 자신은 4명의 꼽추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어릴 적 부터 머리가 좋은 탓으로

자신이 살 방법은 한의사가 되어 

자신의 불구를 방 속에 감추고 환자와 얼굴 만 맞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발군의 성적을 올렸으나

늘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그것을 친절과 안그런척으로 가리려 했지만

마음 속에는 늘 수치와 분노로 가득해서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을 가지 못하고

등 뒤에서 누가 쳐다 보는 것이 상상되면

모골이 송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음악 선생께서 그 분의 탁월한 음성을 듣고

성악을 권유하고 집중지도하며

어느 땐가 갑자기 손을 잡아 끌어 교회에 데리고 나가서

성가 솔리스트도 시키는 등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으나

늘 마음은 하나님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주였고

기도도 되던 말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고

그 후에 자신의 육체적 컴플렉스를 성공으로 이겨낸다는 다짐으로

가장된 웃음과 친절

성공에 대한 처절한 노력으로

27살에 목원대 교수가 되었고

결혼도 했으며

IMF직전에 '불멸의 이순신'을 오페라로 기획하며

160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

자신의 약점과 열등감을 과도한 보상을 받으려 노력하다가

10억의 빚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 한다.

 그 과정에서 신실한 교수 동료이자 아내의 간곡한 만류와

기도와 맡김에 대한 권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한번 하지 않고

'그게 무슨 소리냐

 남자의 하는 일에 방해하지 말라'는 말로 뿌리치고 시행하다 얻은 실패인지라

그 후의 일상은

이혼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한다.

 그러던 중 주위에서 '부흥회' 참여 권유를 받았고

사람 사이에 가 있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던 분이

자신도 모르게 '나도 한번 가자' - 이것은 본인은 눈치에 의해서

억지로 했다지만 여기 아니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잖아 ..라는 내면의 소리에 의하였고, 이게 성령의 인도였음을 고백함- 는 소리와 함께 가게 되었다 한다.

 난 구구절절이 그 분의 소리가

내 고백하는 소리와 어찌 그리 닮았는가 가슴이 아팠다.

오랜 역기능 가정의 '감정적 쓰레기통' 역할을 하던 자로

지금도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깊은 부끄러움....

 

 그분은 부흥회 가서도  항상 그랬듯  부정적인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목사님의 설교를 속으로 면박하던 중

기도원 목사님의 '아멘,아멘, ... ' 을 일곱 번 위치시면서

자신도 모르는 360도의 팔다리 꺾임과

상체의 뒤로 젖혀짐,

흰 불빛의 환상을 보며

3일간에 걸쳐 자신의 꼽추등이 펴졌고 -수술을 3차례나 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유지되던 그 꼽추 등- 사시였던 눈이 회복이 되고 , 그외에 영적인 체험을 하는 간증에서는 모두 울었다.

그 간증이 신비로와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몸짓이 너무도 순수해서 그랬고

그 목소리에서 나오는 찬양의 은혜가 심장을 울리어서 그랬다.

그분의 회복의 증거가 희망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 분은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찬양을 잘하는 자가 자신이다.'

이유가

자신은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 했고

그 은혜를 너무도 감격하였기에

목이 찢어지는 듯

배가 터질 듯이 찬양을 하기에 그렇다 한다.

 그러시면서

지금 매일 같이 크게 회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예수님을 체험하기 전에

습관적으로

성공을 위해 나갔을 때

자신의 멋으로 부른 찬양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한다.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던 나는

그 분의 스스로에 대한 진한 열등감에 공감하였고

- 난 심리적 꼽추 였다- 그 외로움에 눈물지었고

그 분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에 또한 공감했다.

비록 길은 다르지만

찬양하는 자로서 느끼는 감정의 동질감에 난 기뻣다.

 그러면서 최근의 내 무기려감에 대하여 깨달았다.

난, 내 꼽추 이미지를

내 대단한 목소리로 보상받고 싶어 했다.

그 보상은 사람들의 칭찬이다.

내 목소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난 이렇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고

하나님께 자랑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그것은 내 기분에 의한 찬양이었고

가끔,

칭찬 이상의 대우를 나도 모르게 원하는 지도 몰랐다 .

상대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대우는 날 힘들게 했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만 위하고

그 분을 위한 기쁨으로 창자를 쥐어짜듯이 나와야 할 찬양이

어느새 내 기분에 따라

잠시 눈을 뜨고 쳐다본 사람들의 감동스러워하는 얼굴 빛에 따라

부침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늘 말씀으로 부딪고 말씀으로 살아계신 그 분을 아는 자로서

내 속은 갈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직은 주님에 의한 열정은 있지만

그 갈등이 내 가슴을 치니 난 무기력해질 수 밖에....

 

 그 교수님의 고백은 꼭 나보고 하는 소리였다.

그 분의 찬양의 소리는

준비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한 나에 대한 주님의 온유한 경고 이셨다.

아직도 사랑 하셔서

'내 아들아'라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안타까운 응답이신 것 같았다.

 그러시면서 그분의 고백처럼 자신의 기도가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지만

슬픈 마음 조차 다 읽고 계셔서

그 이상의 것을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다시 한번 간증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리석은 내 마음에 한 줌 위안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간증 내내 많이 울었다.

환자들이 많고 직원들 많은 데 다들 울었다.

그래서 체면 불구하고 눈을 퉁퉁 불렸다.

 

 그분의 체험에 의한 뜨거운 진실의 외침 몇 마디는 가슴에 박혔다.

 

' 하나님 잊지 않기 위해 찬양을 입술에 달고 살아라.'

 

'그 은혜를 받고도 ,

 그 체험을 하고도 기도원 문 나가면서 또 불안해지더라.'

 

' 하나님은 아버지다.

  입으로 만이 아니시고 진실의 아버지다.

  왜 안부르는가?'

 

' 우리는 피조물이다.

  내 부속을 왜 안 가지고 계시겠는가?

  주님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다. '

 

 ' 너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기에 내가 고쳤다.

  네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

 

' 슬플 때 슬퍼하지 마라.

  그때 날 부르고 사랑하고 계신다.'

 

 

 그 분은 의도하지 않으셨지만

난 그 분의 입술을 통하여

나에게 '레마'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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