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게 사실이다[수5:1-12] 본문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사실은
난 요단강을 '건넜다'.
그게 중요하다.
또 , 사실은
아모리사람, 모든 왕으로 대변되는
내가 두려워 하는 자들이
그런 날 보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더 두려워 한다.
그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의 진실이
'하나님이 건너게 하신 탓'이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들을 보고' 저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다.
아직도 변화 없어 보이는가?
실은 '난' 벌써 '요단'을 넘었다 .
그게 중요하다.
요단으로 상징되는 어떤 영적 단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간증'을 묵상하는 요 며칠의 말씀을 계기로
날 돌아보는 시간이 잠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전에 하지 않던, 아니 누리지 못하던
많은 자연스러운 것을 누리고 있었다.
덜 흔들리고 덜 고민한다.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이 하신 것들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러워져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된 '연단'에 들어가면
또 가라앉고 아무 것도 안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려 한다.
요단 강물이, 아모리 백성들이.. 무서워 지려 한다.
그것.
아니다.
난.. 요단을 넘었다.
내가 아모리를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나를,
아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훨씬 더 두려워 한다는 사실이다.
요단강을 넘은 것도
내 힘이 아니다.
하나님이 "건너게" 하셨다.
'피동적인 은혜'의 자유.
그게 난 행복하고 좋다.
앞으로도 있을 지 모를 가나안 족속들의 '두려움'
즉 인생 광야의 어려움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결국 '건네질 ' 어려움들일 것이란게
결국 승리할 것임을
이토록 말씀으로 확신받고 깨달아지고
마음이 고요해지고
돌아보아도 확실해지는게 감사하다.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요단강 넘어서서
할례를 행하라 하신다.
할례.
선민 백성의 증거.
그런데 그것을 행하면 아프다.
아프지만 반드시 해야할 일.
또, 그 아픔을 행하여야 할 것이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아모리 족속''의 땅.,
낫기를 기다릴 때까지 그들이 공격해오면... 이란 '두려움'이 없었을까?
남자들은 다..아픈데.. ㅜ.ㅜ;;
어쩌면
내가 지금 잠시 흔들리는 것,
요단강 너머서 '할례' 받는 시간,
하나님께서 영적 성장 단계의 한 과정을 마치고
이제 진정한 '할례 받을 만한 '자격증을 주시는 과정 중의
잠시 '평화'의 시간 , 정말 귀한 시간 임에도
어쩌면 내 습관적 '두려움' 탓으로
괜히 아모리를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닐런가?
그들은 '커버린 '나를 뼈가 녹도록 두려워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듯하다.
'주하인아.
너 정말 수고 했구나
비록 지금 아프겠지만
그것은 네게 주는 도장이고 인증샷이다.
아픔을 기뻐하라.
두려워 하지말라
아모리는 오히려 더 무서워 떨고 있다.
그들의 공격은 없을 것이다. ^^*'
10.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그렇다.
할례의 아픔이나 아모리의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기뻐하여야 될 일이다.
더욱 '하나님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더 깊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외부적 '행사에 적극참여 해야 한다.
12.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의 행태가 이루어질 것이다.
'만나' 대신 '가나안 땅의 소출' 말이다.
그게 사실이다.
만나는 '하나님이 무조건 내려주시는 ' 식물이다.
가나안 땅의 소출은 '우리의 노력'으로 인하여 거두는 것이다.
만나는 광야의 메마른 시절, 고통의 시절에 허락된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가나안 땅의 것은 훨씬 좋은 풍경에서 '나의 노동'을 전제로 하고 하나님의 이른비 늦은비와 태양의 조합이 필요하다.
만나는 달기만 하지만
가나안 땅의 것은 달기도 풍성하기도 다양하기도 하다.
그렇다.
만나와 가나안 땅의 소출이 의미하는 상징성은 다르다.
요단을 넘어서는 순간
하나님은 '성인 대접'을 하시는 것이시다.
그게 사실이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는 순간 '자유'가 주어지는 것처럼..
성인 대접 받는 것 처럼..
오늘은 나에게 주시는 레마의 촛점은 그것이다.
이제.. 다르다.
어쩌면 그 다른 것을 내 왜곡된 감성은
'흔들리는 두려움'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으로 받으려 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축복이란 이야기다.
두려울 상황조차 하나님이 '컨트롤' 할 것이니
세상과 조금 더 직접 대면하고 '소출'을 내보라는 이야기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출'의 풍성함을 기뻐하며 받아 보라는 이야기시다.
다시한번 돌아본다.
난.. 성장을 했다.
그래서 영적 요단 강을 넘어섰다.
이제 할례자의 자격 뿐 아니라 실제 할례를 받아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것이다.
아프지만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더욱 어른으로서 차분히 하나님께 '예'를 더 잘해야 한다.
감사하다.
오늘... 말씀 대로 더 열심히 준행하자.
주님.
제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잠시 아침에 허탈한 마음이 날 엄습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말씀 구절을 기억해냈습니다.
고린도 후서 6장 9절 부터..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예.
주님 말씀을 믿기로 하니
내 허탈한 속을 누비던 '사단의 생각'들이 잠잠해집니다.
마음은 고요로 다시 차오려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엔 도저히 레마가 없을 듯하더만
저렇게도 제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제게 주시는 '의미'를 알겟습니다.
지금 잠시.. 현실을 빌미로 물고 들어오는 흔들림의 생각들은
아모리 땅에 넘어와있기에 당연히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생길 수 밖에 없는 두려움 들이지만
하나님의 역사 속에
담겨져 있는 제 입장을 추론하면
요단 강 넘은 이스라엘 백성 같은 형편임을 요.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날 맞추어 봅니다.
간증거리 주셨던 시간들의 나와
지금의 나...
살아게셔서 꿈틀대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 만나와 반석의 물을 먹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전 요단강을 넘어선 느낌이 듭니다.
완전한 성화까지는 단계가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한단계 넘어선 자의
누려도 될 안전감..
행복함과 더불어
더 열심을 보여야 할 의무 준행..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희망과 더불어 방향을 다시금 잡아주시니 말입니다.
제 모든 것.. 주님께 의지합니다.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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