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구하지도 말라(눅12:22-34) 본문
(눅12:22-34).
26.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염려.
두려움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예기 불안.
가진 것을 빼앗길 지 모를 것에 대한 기득권의 불편감.
비교의식에 의한 자극을 불편해 함.
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먹을 것과 입을 것 자체에 대한 근심은
지금 우리에게는 '비교적 흔치 않은' 걱정 거리.
실은 '더 좋은 ' 먹을 거리와 더 나은 입을 것에 대한
상대적 빈곤감.
그에 대한 비교 근심.
'구하지말라'신다.
오늘은 특별히도 이것에 눈이간다.
어찌 구하지 아니할까?
기도 제목이 뚜렷해야 함을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것은
근심할 위의 일들에 대한 것이다.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에 대한 것은 당연히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비교 근심이나 염려에 의한 구함은 내려 놓아도 된다.
또,
대다수의 신앙인들을 넘어서는
선택 받은 소수,
제자의 삶을 지향하고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
더욱 나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그게 이것이다.
'구하지 말라.'
풍랑이는 바다에서
배 속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풍랑을 멈추이길 간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다.
하지만, 구함은 들어 주셨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함께 계심 만 인식하고 믿으면
풍랑 따위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을 알고 인정하는
그런 '믿음'을 원하신 것이다.
31.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세상에 우릴 만들어 내 보내신 이유는
세상의 것에 휘둘리고
그것 만이 모든 인생의 목적인양
울고 웃고 부딪치길 원하지 않으신다.
그 분이 우릴 지으신 목적에서
이 땅과 이땅의 것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위한
'연단의 장소와 도구'일 뿐인 것이시다.
즉, 우리는 땅을 살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이런 '치졸한'.......^^;; .. 땅의 것들은
자연스레이 채워질 것인데.........
先 後가 바뀐 것이다.
썩을 것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야 말로
정말 '경멸해야 할 ' 천박한 신앙이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경박한 세상 것에 의하여 과연 흔들리지 않는가?
저들처럼 염려 하지 않는가?
근무를 한참 하고 있는데 친구가 메시지 왔다.
'雙友會'라는 쌍쌍의 친구 모임 - 고등학교 이후의 불알친구들 부부모임 - 의 친우 부친이 소천하셨다 한다.
안타깝게도 불교......
어찌되었든 근무를 마치고 느즈막히 ' 안성'을 향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은 '참 ~~~~~~~~~' 좋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도박이나 돈으로 이어지는 놀이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 친구 모임이기에
세상의 열렬히 모이는 끈끈함 만큼은 적지만
그래도 만나면 서로 기뻐하는
정말 좋은 친구들.
한참을 대화하며 새벽 세시가 넘어도 헤어질 생각들은 않는다.
남자들이 왜이리 얘기거리가 많은지..........
가만히 돌아와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아내에게 허락 맞고 진료실로 들어와 침낭을 폈다.
'산부인과'의사라서 이런 잠은 익숙하다.
자려니, 마음이 한구석이 붕뜬듯하다.
가만히 날 들여다 보려 애썼다.
비교적 '성공한 친구'들이다.
global company를 운영하면서 대박친 친구,
의료 인테리어 계통의 선두주자인 친구.
건물 가진...
..... 참..자리들 잘잡았다.
마침 , 자녀들도 정확히 남녀의 비율이 1:1이라서
공통점이 많다.
자연히도 대화의 흐름은 '자녀'들로 옮겨 갈 수 밖에 없고
나와 몇 친구는 조용하고
잘 가르치고
귀히 가정을 이끌어가는 그들은
내내 '자랑'.ㅎ..이다.
드러누워 자려는 내 머리를 누르는 생각은
'아주 적어진...ㅎ' 열등감이고
속상함이고
장래에 대한 염려고
잘못 가르친 내 교육에 대한 미안함......이다.
상대적으로 염려와 근심이 날 누르려 하는 기운을 느꼈다.
말씀을 들여다 보니,
'구하지도 말라' 고 하신다.
'아니.......구하지 말라시니.......
'아.... 그런 것 같다'
주님은 내 마음을 다 아신다.
내가 구해야 할 것은 다 알지 않는가?
아들.. 더..
재산.. 더..
...........
그런데 그런 구함이 불필요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더 도움 될 것은 같지 않다.
설령 내 친구 그룹 중에 가장 성공한 외형을 이루었어도
조금 있으면 더 비교가 되고 말
허무한 신기루들.
그것은 결국, 또 다시 근심과 염려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괴롭게 만 해들릴 것.
그렇다면 난 언제, 어떻게 하여
그 분께 그 보혈의 값을 조금이라도 갚아 드릴 수 있던가?
언제가 되어야 , 이제 내 인생 얼마 기회가 남지 않았는데..
갈길은 먼데 ..
그 분께 영광을 조금이라도 더 드릴 수 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에 나온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지금 이순간에 어떻게...
말씀대로 날 받아 들이는 것이다.
'약함을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내 약함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영혼의 강함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평강을 더 크고 풍성하게 누려야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이땅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풀려가고 해결받아가며
내가 원하던 것 보다 더욱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원리를 체험해야 한다.
그것이 그 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
잠시 기도했다.
' 저 분들은 나보다 나은 분입니다.
저.....
그 사실을 받아 들이고
내 약함을 인정하고 기뻐할 수 있길 원합니다.
..........'
잠이 온다.
눈을 뜨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간호사 .. 진료실 문 따고 들어오다 깜짝 놀란다.
또 하루.....개운하게 시작한다.
기도
주님.
내 하나님.
참으로 하나님이 절 구원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질투의 화신,
이 교만함의 극치인 제가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소름이 끼치려 합니다.
작은 비교에도 '속' 이 상하려 합니다.
그들의 잘나감에
새삼 '잘 준비하지 못하는 ' 노후가 걱정이 되려 합니다.
내 자식들에 대하여 미안해 지려 합니다.
그들을 잘 가르치지도
귀히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을 배려하지도 못한 내가
참 작아 지려던 순간 이었습니다.
조금 더 목소리 높여
주님께 '내가 갖지 못한' 여러 결점들을 간구하고
근심에 대하여 토로하고 싶은 욕구도 느꼈지만
주님께서 '구하지 말라'하시네요.
근심하지 말라 하시네요.
그래서......... 입을 막아서는 당황함보단
절, 조금은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시는
'크고 있는 '아들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대우로 느껴져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절묘히도 말씀 주시는
내 아버지가 계심이 감사합니다.
또 한번 말씀으로
제 혈압 올러 갈 것을 막아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이제 간구할 것은
내 육신의 배 안에 같이 누우신
내 예수님의 영을 깊이 깊이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보다
더욱 내 원함을 잘 아시고
내 필요보다 더욱 크게
날 응답으로 채우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이제 다짐하옵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의,
내 영적인 성장에 대한 관심을 그치지 않기로 합니다.
아침에 환우 한분이 끌려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에 대하여
조근조근 늘어 놓으니
그 분의 눈이 커지면서 ''교회에 나가야 겠다'는 고백을 하게하였습니다.
그리곤 그 분이 놀래면서
제 아내를 떠올리면서 같이 컴퓨터 배우면서
전도를 받았던 경험에 대하여
감동하며 이야기 하였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오늘의 나의 빗나가려는 '이지'를 막아서
내 정말 필요한 것을 인도하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분도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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