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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실제적 의미[행2:37-4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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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실제적 의미[행2:37-47]

주하인 2024. 5. 5. 09:13

부제)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고 또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성령을 선물로 받아 산다는 뜻

.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선물'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 '성령의 선물'이다. 

당연히.. 

 

 그런데 그러한 사실이 사실로서 인정 받는 것은

'성령의 선물'을 받은 자,

받아 본 자들에게만 선물은 의미가 있다 .

누려본 자가 안다.

 

 성령의 선물은 당연히도 

'하나님의 주권'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자,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세례'를 주시기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성령의 선물'이란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말씀에 은혜가 되고 집중이 되고 이해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이고 축복이다. 

 

 그러한 축복의 선물을 위하여서는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기초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선물은 '사랑의 표현'이시고 

당연히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아.. 당연히 사랑하시는 자들..

 

 그 기초중 기초는 

하나님과의 교통이고 교류다 .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족이어야 한다 .

가족이 '착하거나 착해지길 원하시는 ' 상태에서 주시는 것이 

'선물'이다. 

'회개'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회개는 선물을 위한 기본이고

가족으로서의 당연한 '조건'이자 '의무'가 아닐런가?

 

선물이 목적이 아니다 .

선물이 아니고는

이 땅을 살아갈 어떠한 동기를 유지할 수가 없으니

반드시 받아야할 

이 작은 자들의 

어쩔 수 없는 가련한 숙명이다. 

 

 선물로 인한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또 움직이고 살아갈 '동기'가 되는 거다 .

 

그러기에 '성령의 선물'은 

우리의 자격을 확인하는 것이고

우리가 살아갈 동기가 되는 것이며

우리가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안전판이기도 하다. 

 

아... 

굳이 논리적으로 전개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성령의 선물

성령님의 임재

그 분의 임재감은

설명이 필요없다. 

감사와 행복....

모든 것을 다 포기해도 충분하고 남을 

어떠한 깨달음, 놀라운 '선물'의 기쁨... 행복... 

그 자체다. 

 

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이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리고 그러함은 '구원'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이 되어 표현 될 수 있다. 

 

Salvation

 

'죽을 이 사망의 몸에 있어서 누가 나를 건져낼까' 

 

굳이 이 성경의 표현이 동원되지 않더라도

이 모질고 거친 인생은

그리 나에게는 '유혹'이 되지 못했다. 

겨우 겨우 살아 움직이기 위하여

'말초적 자극'을 삶의 재미 삼아 그냥 하루 하루 살려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내 '우울기질'의 삶은

예수님 영접하기 직전,

그 첫사랑의 '구원'(정말 난 구원이란 표현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깨달았다.   너무 좋아서 둥둥 떠다니던 그 구원.. 새로 살아난듯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 터져나오던 '환희'와 기쁨과 행복은 지금도 가슴이 두근 거리게 하는 기억이다. .      불면증이 녹아나고 담배 2갑씩 20년넘게 피우던게 하찮이 없어져 버릴 만큼 강력한 기쁨의 구원 ! , 1차 중생 ^^*   )을 통하여 180도 바뀌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구원 받은 자들의 

세상 사람들의 관점,

지금 어느 정도 그 열렬한 감동이 식은 이 시점에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이러한 '누가 강하게 권하거나 규제하지 않은'

공동체의 삶이 

바야흐로 자발적으로 시작된거다 .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러함이 요즈음 이단의 교묘한 통제와 거짓영들의 영적 흐름으로 

강요받아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공동체 생활하게 하는 일도 자주 있어

비록 이러한 '자발적 공동체'의 삶이 혼탁히 보이고 있지만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기본이다. 

 

 보라. 

공동체를 살자는 게 아니다.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게 아니다. 

 이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살게 할

'기쁨'과 '순전한 마음'의 기본을 돌아보자는 거다 .

오늘 내게 '레마'로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말이다. 

 

 그 기본은 '기쁨'과 '순전함'의 회복이다. 

그래서 이 땅이 이렇게 살아지면(그렇다.. 결심이나 공모나 구호가 아니다.. 사는게 아니고 살아야 하는 당위성도 아니다.   그렇게 살아지는 거다 ^^*) 그게 천국의 삶의 

기본 심성이 아닐까 싶다. 

 그리 내거 니꺼 구분도 필요치 않고 

굳이 세상의 욕구가 사는 동기가 되는 

이 불완전한 육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

그렇지 않아도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날로 날로 소록 소록 커지고 순화되어

'행복'이 영원히 (지루해서 어쩌냐고?  그것은 육신의 경험일 뿐이다.  이 불완전한 육체는 더더더.. 다고다고 하게 만들어졌다.   내성.  마약도 .. 일반 약도 내성이 생기면 더더더 하다가 망가진다.. 아담의 원죄의 영향이 아닌가?... ㅠ.ㅠ.. 영생, 천국의 삶은 ..아니다 ! .. 당연히 .. 완전한 곳이다..내성없는 영원하고 지속적인... 그게 소망이다.) 진행형이 되는 것.. 

그것이 '성령의 선물' 이다. 

그게 '구원'받은 삶이다. 

 

나.

그렇다면

오늘, 지금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 말씀의 레마는 뚜렷하지 않던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

광야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받아 사는 

'천국'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자의 삶,

과정 중 연단으로 '성화'되어 들어가길 기대하시지만

자꾸만 몸부림치는 '죄'로 인하여 

넘어지고 깍이고 다져지는 과정.. 이 인생 아니던가?

 

 그러나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 때'보다는 훨씬 귀한 의지처가 있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이루어진

'성령의 선물'.. 

'선물같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다. 

 

 그게 '구원'이다. 

구원의 본질이다. 

구원 받은 자의 삶을 내가 살고 있다 .

성령으로 인하여 '받은 선물'을 비록 잊고 ,

자주 잊어버리며 살고 있지만

난.. 구원 받은 자다. 

구원의 그 실제적 의미를

또 오늘 하루에서 돌이키며 살아야 한다 .

 

나..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을 다시금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구원의 삶이다. 

이 땅의 그 어떠한 불완전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난.. '성령의 선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갈 

당연한 당위성에 있는 자다. 

 

행복해도 될 자.

항상 기뻐하여도 될 자.. 

 

그것을 잊고 놓치고 살아가고 있음은

내 '죄'가 

나를 주님에게서 멀리 하여서 일 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성령의 은혜가 내 영혼에 차면.. 

난.. 자주도 기뻐지고 

항상 감사해질 개연성을 느끼는게 

지금까지.. .다.

 

주님의 그 강력한 첫사랑의 실제 경험후 

난.. 말씀을 사모하게 하셨다. 

말씀을 통해 흐르시는 

그 놀라운 경험들.. .

그 간증거리들.. 

매일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체험들.. 

'구원'이 어떠한 의미인지

바야흐로 알듯도 하다 .

 

이제.. 

더욱 열심히..........

힘내서 살아도 될 하루로 새삼 느껴짐이 감사하다. 

 

주님.

어제 토요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근무가 끝나자 마자 내려가 '밭'을 일구려는데

많은 시간이 연휴의 차량들로 막혀 힘들었습니다 .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잘.. 행하고 있는데

응급실에서 전화가 와서 

부리나케 걷어 들고 수술을마친 후 

새벽에 올라왔습니다 .

 

피곤한 몸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로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습니다 

몇시간 아니지만

늘 하나님을 마주 뵙는 아침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제 몸이 반응하고 

제 마음이 갈구하였습니다. 

 

누르려는 육신의 아우성과

마음을 지배하려는 온갖 '백일몽'과

'유튜브'등의 유혹들보다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의 평강'......

그 고요한 임재의 기쁨이 

훨씬 더 큰 행복으로 절 인도하시어서

전... 

일어나 앉았습니다 

 

말씀은 익히 아는 바 없어 무슨 은혜가 될 깨달음이 남아 있을까.. 하는

말씀 볼 때마다 저를 누르는 

이 버거움들을 뚫고 

그냥 말씀 앞에 앉자마자 

늘 그러시듯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의 선물같은 깨달음이 

또 제 영혼을 그득 채우시는 듯합니다 

 

그 기쁨, 

그 행복,

그 감성을 

저 는 한 단어로 이해가 되어집니다. 

'구원'

그렇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정말 구원이 몸소 오지 않던 개념이었지만

오늘 말씀 묵상에서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저러한 자발적 모임과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

'저 천국의 삶의 기본 기조'임이기에

'첫사랑의 그 강력한 구원'의 기억이 떠오르게 하며

그들의 마음이 바로 '구원' 받은 자의 그러함이며

다시... 이 일상이라는

인생광야에서 지루하게 도전해오는 

사단의 궤계에 

시들거리고 잊혀지려 했지만

'구원의 삶'을 사모해야 겠다는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

 

주님.

성령의 선물을 깨닫게 하심,

그 누리게 하여 오심을 감사드리나이다. 

구원의 반석이 어떠한 개념인지 

점점 더 확실 해집니다 .

 

주님.

제가 서 있는 곳이 '반석'..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님 이심을 

확신하게 되니

더 이상 흔들릴 일이 없게 됨을 깨달아 갑니다 .

주여.

감사합니다. 

홀로 영광 받으소서.

 

저로 인하여 

늘 회개하고 

주님 놓치지 않고 

성령의 선물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 마져 그리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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