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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히10:26-39] 본문

신약 QT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히10:26-39]

주하인 2019. 6. 18. 08:25

 

이 사랑의 결실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건너와야 했던가

아들로서의 아이 아빠와

그 아비의 부모가 겪은

수없이 많은 영적 고뇌들.


아이의 아비와 어미가 되기 위해

마주했어야 할

그 많은 드라마 같은 역경들

그리고는 마침내

세상에 나오기 위해 겪은

엄청난 산고의 고통


그 곁을

가슴조림과 기대와 기도로

지켜낸 가족들의 견딤

....


아이는

마치

그 후에 얻는 구원의 결실이

어떠한 것인가 보일량

이처럼

천사같이 태어난게 맞는 듯 싶다.


그렇다

허락되어지는 영생의 구원


그 온전하고 엄청난 기쁨을 위해

우리는 마땅히도

오늘 주어진

여러 연단의 힘듦도

마땅히 기뻐할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더더구나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심이니 말이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쁘다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고난의 큰 싸움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전날에'

이전 , 과거 , 지나온 시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란 이야기시다.


그 때...

난.. '예수님의 강권적 선택'으로 첫사랑의 떠다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강력한 구원의 싸인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 강골 불신자..


그리고는 또다시 시작된

'고난의 큰 싸움'

그렇다.

예수님 믿고 '축복'만 있는 기복의 상황은

전혀 거짓말이다. ㅠ.ㅠ;

그 분을 믿어도 고난은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을 위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성경구절 어디에 나오는 것처럼

고난은 믿는 우리에겐 '필연'이다.

그 고난도 '큰 싸움'을 위한 큰 힘듦이었다 .

그것... '연단'을 통한 '정금같이 나올 절대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믿는 우리, 진정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우리에게는

같이 지어야 할 필연의 조건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견디어 내고 ' 여기까지 왔다.

가슴이 아프다.

스스로..

그리고 그 아픔을 더 아프게 견뎌야했을 내 미련함이 안타깝다. ^^;

진즉에 더 빨리 내려 놓고 말것을...


왜 새삼... 이 즈음에 저 말씀이 가슴에 들어오고

왜 무엇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일까?

하필 , 오늘?


 내, 세상을 바라보고

내 과거와

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이전과는 다르고

내 마음의 흔들림이

과거.. 그처럼 바라던 '평강'의 부분에 와 있는 시기이기에 그런것 아니던가?

 이제

주님이 허락하신 '고난', 아니 연단의 한 능선을 지나고 있어서

이제 다른 류의 발전을 위하여 그러함을 허락하신 듯 싶다.


그래.

'돌아볼 과거'를 통해

새로움의 다짐을 해보라시는.... .




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이제.. 오늘, 지금.

어느 정도 '깨달은 자' . .. 연단의 성화 과정의 일정 부분에 달은 자로서

새롭게 주어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연단'과정을 말씀하시려심이 아니던가?


그렇다 .

이제 .. 현재와 '미래'를 말씀하심이시다 .

 어차피 '고난'이 죽을 때까지의 필연이면

과거를 통해 이미 배웠듯...

'기쁘게 당한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러기에

이제 '기쁘게 당할 것을 ' 선택하고 결심하라 심이시다.

그게 가능함은

주님 성령께서 도우실 것을 알기에 그렇다 .



38.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현재

나는

'의인'이다.

옳은 사람.

좋은 사람.

주님이 인증하신다.

그러나,  그 의인은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 있다 .

당연하지만 '하나님,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내 '확고 부동한 미래'는

내가 믿음 안에서 있는 한

'영원히 살... 영생'의 '살리라' 심이시다.



39.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 상태를 '구원함'이라 한 단어로 표현 하신다 .

그것도 영혼의 구원함.


 구원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중 하나가 아닐까?

비록.. 숫자에 약해서 세지는 못했지만..ㅎ.

그러기에 구원이

막연히 '천국'과 '영생'과 연결되어 있고

그러함이 '예수 십자가 ' 은혜로 이루어짐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음에도

'구원'함에 이른다.. 는

'천국'과 관련되고, 영생에 관련되는

그 구원의 본질적 현상에 대하여는

'실제적으로 실감하게 ' 밝혀 놓은 곳이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막연히...

구원되었으니

천국 백성이고

더 이상의 징죄적 판단에서는 벗어나 있는 상태임을 짐작하는 정도.......


그러니.. 더 대단한 '감동'이나

구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뛰는 설레임 같은 것이 없는 듯하다 .

나에게는.. 최소한..

죄송하다.


그래서 오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내 상태를 스스로 '의인'으로 확인하고

그 모든 것의 기본이 '믿음'이며

그를 끝까지 놓지 않으면

내 '미래'는

구원이 된 영생의 삶을 살것을 말씀하시며

그 구원의 상태에 대한

조금 더 실제화된 감동을 기대하고 기도해보길 권하심 같다.


 그래서.. 오늘...

(큐티로 하시는 말씀은 '오늘'에 해당한다... 매일 아버지를 만나 매시간 인도받는... 귀한.. )

주님은

그리 말씀하시고 계시다.

감사하다.


주님.

과거의 나는 그랬습니다.

아.. 주님안에서 의미가 된 '성령'의 '빛을 받은 후'에

많은 굴곡을 넘고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며

여기 까지 오는 과정이

정말 '죽도록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한 걸음 능선을 넘어서며

잠시 쉬는 발을 드리우곤

한숨 휴우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주님의 자격부여,

의인이라시는 말씀이

참으로 감동입니다.

기쁩니다.

이 말씀에 제 가슴이 따뜻해옴을 느낍니다.

주여.

말씀이있으시니 내 감정까지 변하니

이 얼마나 귀한 자격입니까?

주여..

의인이시라는 말씀이 느껴집니다.


주여.

부디

나머지의 시간동안

철저히 함께 하셨던 주님의 그 은혜를 기억하여

더 힘을 내 미래를 살기 원합니다.

내 주여.


온전한 구원,

주님의 나라에 가 누릴 그 영생의 시간을 기대하며

오늘 도 힘내서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기쁜 참음을 참게 하소서.

제게 그러한 힘과 능력을 주소서.

주님 아시오매

조금의 질타도 견디지 못했던

미련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제는 '기쁜 인내'로 참아낼수 있게 하소서.

주님.. ..아시오매

곧 있을 의미있는 그들과의 만남에서도

'기쁜 인내'를 인내하게 하소서.

의인으로서 그리하게 하소서.

내 주여.성령으로 도우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천사

맞지요?


아이의 몸동작 하나하나

소리 하나하나

모두 집중하고

같이 울고 웃게 만드는 것 보니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특별히

오신

오래된 영적 친구(우설님, 풀잎님.. ) 위해

다시 올립니다


실은

자랑하고픈 마음이 많은

할배의 변덕입니다.ㅎ




-----------  과거 묵상 (10.12.24)


담대할 수 있다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진실로 무서운 것은

세상의 가난과 실패가 아니다.

왕따와 외로움도 아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진실로 힘들어 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지 못함이다.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힘들 때 어려울 때

이전, 전날에 그 주님 가까이 하려 몸부림 치며

되지 않던 영적 전쟁에 몸사리지 않고 뛰어 든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때 그 큰 고난의 싸움에서

어떻게 참아 나왔던가를 생각하라.

 

 세상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일런가?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라.

낮아짐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약해짐은 괴로움이 아니다.

힘이 빠짐은 몸부림 칠일이 아니다.

가난해짐은 좌절할 일도 아니다.

주위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넘쳐남은 '자책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낫고 영구한 산업이 기다린다.

 

'약할 때 강함'이다.

그런 소망은 세상적 원리로는 이해 불가하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가능하다.

말씀에 그리 써 있다.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시고

성령이 그리 보이셨다.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그러니 '담대함'을 버릴 일이 없다.

다시 힘을 내야 한다.

마음의 지평을 한껏 넓혀야 한다.

 들숨 한번 깊게 들이 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한번 자유로와야 한다.

성령이 도우신다.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그리고는 '인내'해야 한다.

그 인내는 소망없는 세상의 그냥 견딤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한의 인내다.

주님 성령께서 도우실 약속의 인내다.

 인내는 '연단'을 , 연단은 '소망'을 낳기에 그렇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송년 모임이 잦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당직이다.

여성병원 당직.

송년 모임이 이 병원에 있음을 당직서러 와서야 알았다.

솔직히 서운하다.

미리 연락을 빈말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

당직이라서 당연히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이라도 풍성하지 않았을까?

나이 들면 '손주'가 '할아버지 사탕 드실 래요.. '라는 소리 한번 안하고 먹는 것만 봐도 서운하다고

새벽에 수술하는 데 나보다 선배이신

병원에 몇 안되는 '오십대' 마취과 선생님이 그러심에

너털 웃음을 웃고는 말았지만..

어제 당직방에 앉아서 잠시 앉아서 기도하고 마음을 달래는 연습을 하였다.

솔직히 '말씀' 이 없었으면 서운한 마음이 내 마음의 한 부분을 할퀴어 상채기를 남겼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젊은이' 만을 필요로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도태된 자들로 인식되는 풍조다.

비단 난 의사라 특별히 그런게 심하지 않은 전문가 집단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의사의 숫자가 많아지고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나오는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많아지며 의사들도 점차로 

사회의 그런 조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소위 '막장과'라고 인식되어지는 몇몇과는 오래전 부터 그래왔다.

 문제는 그들이 의도적이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나이든 자의 끄덕하면 '서운해 하려는 ' 이 육신과 심리적 쇠퇴 탓이리라.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면 이것은 '심리적 연단'의 한 도구일 수 있다.

젊은 시절.

특별히 육신의 힘이 넘치는 시절.

의사라는 대우 받던 시절에, 더구나 불신자의 신분으로

온갖 '영적 죄악'들이 당연시 내 영혼에 죄가 아닌 것으로 체득되어 나서,

3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영으로 강하게 사로잡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내속의 때가 모두 벗겨나가기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지금의 알지 모르는 '외로움'으로 인한 서운함은

교만을 깍아내고 내 지혜를 의지하고 내 육신의 힘을 의지하던

그 죄의 찌거기를 하나하나 벗겨 나가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너무도 좋아하는

' 예수 그리스도을 위하여.. 약한 것.. 곤란한 것.. 괴로운 것... 기뻐하라.   약할 때 강함이다' 라는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날 위안하고 잡으시는 지 모른다.

하지만, 내 강력한 죄악이 그 말씀 마져 흔들려 할 때

오늘 처럼 아침 부터 확실히 말씀으로 잡으신다.

 

' 너. 

 주하인아.

 빛을 받은 자야.

 그것을 명심하라.

 너는 빛을 받은 자 맞지 않던가?' 

맞다.  

예수님의 빛.

그 강렬한 사랑의 빛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직통으로 경험케 하시고

그 빛을 내 영에 뿌림 주신 자 아니던가?

지난 고난의 시간 동안 얼마나 연단 가운데 '위안'을 받았던가?

얼마나 평강의 샬롬 소리를 외치며 감동하며 살았던가?

기억하자.

다시 일어나자.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신다.

' 담대하라.

  인내하라. '

당연히도 그 말씀은 세상의 뜬금없는 '그래 네가 참아야지 어쩌겠니.. '라는 뉘앙스랑은 전혀 다르다.

나에겐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당연히도 살아계시다.

그러기에 난 인내하고 담대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도 담대해져야 한다.

'약한 것을 기뻐해야 하고

 곤란한 것을 기뻐해야하고

 궁핍을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고

그것이 강해지는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난 풍성한 인격의 향기를 발하게 되며

어떤 상황에도 '심령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겸손'하다는 성품으로 표현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심이 난 너무 행복하다.

그런 내가 됨이 너무 귀하다.

감사하다.

 

 이제 곧 근무를 마치고 예산에 내려간다.

휴가를 냈다.

아버지 생신이다.

잠시 다녀 와서 그 분들...

내 사랑과 갈등의 대상이신 그 분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녹여 들이고 와야지.

담대함으로 그들을 품어야지.

 

 

적용

 

1. 감사하자.

 약해짐을 감사한다.

 서운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하자.

 모두 내 문제다.

 

2. 기뻐하자.

 난 말씀이 있다.

 말씀으로 난 자유롭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은 생명이다.

 

4. 아버지 뵙고 최대한 호의로 대접해 드려야지.

 내 모든 현재의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시는 분.

 그런 그 분을 위해 온전히 기뻐해드리고 와야지.

 

5. 담대하자.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보자.

 담대하자.

 오늘 주님의 말씀이시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사랑하는 주님

우리 주님의 덕에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제 부족으로 인하여

드는 세월로 인하여

주님께 더욱 더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이 오히려 감사합니다.

늘 제편이시고

시시 때때로 정확하게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은 특별히 담대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전에 빛을 받은 자로 그 고난의 시간동안 인내하면서 얻었던

싸움에서의 승리를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모두 살아계십니다.

주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더욱 인내하고 담대하겠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미움과 교만과

서운함과 안타까움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님 뜻이기에 그렇습니다.

성령이시여 도우소서.

주님 성령님이시여 ... 함께하시사

제 부족한 부분 채우시고

말만하고 따르지 못하는 행실을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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