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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공감, 승화 & 성화[눅23:33-46]

주하인 2018. 3. 30. 10:39



 

39.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악한 사람

'남'을 공감할 줄 모르는 자.

싸이코 패스 !


그런데..

진짜로 그런 사람이 모두 악한 자일까?

악한 자만 그럴까?

일상에서는 안 그럴까?

나는?

...


특별히 지독한 아픔 중에 있을 때 비몽사몽에라도

누구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어지는게

'원죄'의 인간들의 본능 아닐까?

 

 저 모습.

난. .아닌가?

아프다는 이유로.. .잦은 분.. .노..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아파했던...

난.. 아닌가?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그런데

다른 죄인 하나는

같은 죄인이고

같이 어려우면서 ( 십자가 고통.. 어찌 이루 말로 다할까? )

오히려 그러한 악한 '죄'인.. (아니다 , 악한 죄..를 발설하는 행위를 향하여서다.)을 질타한다.


'네가 동일한...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어찌 가능할까?

저 죄인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

안아파서일까?

두렵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그는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일게다 .

자신의 죄가 무섭고

자신이 갈 죽음이후가 두려워서 일게다 .

그러나 그것을 본능에 맡겨 분과 노를

즉, 원망을

불특정 다수(예수님....ㅠ.ㅠ;;) 에게 쏟지 않고

오히려 '끈'을 찾은 것이다.


'진리의 끈'

'영생의 끈'

' 죄사함의 끈'

다행이다 .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보라...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여 주세요' .. 아.. 가슴이 울렁인다.

그의 간절함이

그의 진리를 깨닫고 매달림이 절절하다.

그게 ,... 그대로 가슴에 온다 .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니

주께서 그러신다 .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멘이다.

그는 옳은 진리, 진실, 생명의 끈을 잡았고

구사일생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

내게 주님은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공감' 문제... 인듯하다 .

오늘.

특별히...

특히, 내 기분이 안좋거나 어려운 상황에 있다 생각될 때

타인에 대한 공감...말이다.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닌 듯..

오히려 공감의 능력은 꽤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어려운 상황,

내 필요한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이건 아니다 ' 싶을 때도 없지 않아 있다.

내 이전, 예수님 모를 때는 내 아픔 만 외치면서

타인에게 '공감'을 강요만 해온..

이제 .. 주 안에서 말씀으로 가다듬고 온 세월 만큼

많은 부분 회복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갈길이 먼..

깨닫지 못하던 부분들.. 말이다.


 

 이전 부터..

환우 분들 중 수술 권고 했을 때

타병원에 가시겠다고 하면 (세상이 다 그리 바뀌었다.. 오래 전 부터.. 큰 병원 선호.. 이구.. ㅠ.ㅠ;;)

마음 한구석이 이상히도 아프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아픈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 날 뿌리치고... ' 다.

' 아니.. 대학병원보다 나은 수술을 하는데.. 가면 손해일 것을.. 암도 아니고.. 멍청한.. '.. 등의 소리들이

무의식적으로 날 사로잡고

한편으로는 '아.. 환우들 떨어지면 난.. '이란 약간의 푸쉬.. 같은 것도 걱정이 되기도 하며..

불안함등과 어우러져 그러는 듯하다.


 그런데..

깨달아 지는게 있다.

'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먼저 감정적으로 놀라셨을 것을 공감해주고

 위로가 먼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냥.. 논리적으로 알아듣게 만 하고

 서둘러서 수술을 권고 해버리니..

그들이 마음의 부담을 크게 가진 것은 아닐런가.. ' 다.

다시 정리하면

난.. '공감' 보다는 '설명'과 '내 목적'이 우선한 것 같다는 것이다.

 

아..

맞는 듯하다.

두려웁고 무서우니 더 큰 병원 가는거 아닌거 아닌가?


그게..

오늘 십자가 위에서 심한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

마구 '저주'를 퍼붓는 '죄인'의 모습과 무에가 다른가?

그도 ... 두려움에.. 자신의 상처의 아픔에

공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냥 외쳐대는 ......

아프면 물어버리는 동물.. 과 같은 모습이 아니던가?


반면..

같은 죄인, 십자가에 달릴 극악한 죄인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공감'을 하고 예수님을 옹호한다.

 그는 아프지 않아서 일까?

정말 .. 타고난 공감 능력자, 공감러 (^^*)일까?

 아닐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 아픈데.. 어찌... 말도 안된다.


 나.. .

공감의 능력이 있지만

오랜 성장의 습관의 잘못으로

그게 '내게 대한 공감의 바램'으로만 키워져 왓다 .

타인에 대한 '공감'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점차로 커지고는 있지만

많은 부분. .버걱거린다.

그 버걱거리는 부분 중 하나가

나도 몰랐던.

환우 분들에 대한

'이웃에 대한 공감 부분이 아닐까 싶어진다.

거기에 '의사'가 '환우'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다가는

때로는 '냉정한 판단'의 오류가 잇을 수 있기에

습관적으로 환우 인간 .. 보다는 '병'을 보고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습관이 들어서 이기도 하다 .


결국..

회복해야 할 부분이 '공감'인 것이다.

이거..

오래된 습관으로 힘들고 두렵고 어색하고 안해본거라 버걱거리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게 때로는 십자가의 고통처럼 아프지만

그 십자가를 '저주'의 이유인양 소리질러대는 '본능'과 '육신'에 속한 죄인이 아닌

'나를 기억하실 예수님과 같이 진 십자가'로 인식하고

'주 앞에 도우시길 '기도하면

회복될 '선한 능력'이 되리라.

그거..

일상에서  이루어져야할

회복되어야 할

영혼의 선한 회복이다.

'공감'..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이루어지는 '회복'이다.

주님이

이땅에 우릴 두시는

그래서 거쳐야 할 시험으로 통과해 이루어질 능력..

영혼의 선한 능력.. 말이다.

성화.. 말이다.


감사하다. .


주님.

속상했습니다.

어제

오늘..

반드시 해야할 수술의 환자 분들이고

전국에서 블로그 (수술 블로그)를 보고 오히려 몰려오는데

이들은 고생하면서도

더 큰 병원에 시간 소모, 돈소모, 더 큰 상처를 감수하며

미련한 선택을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그들'이 미웠고

날 믿지 못하는 그들이 속상했고

이 시대의 추세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습니다.

아..

생활인 의사로서도 걱정도 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

들여다 본 말씀 구절에

저 처럼 미련한 '공감 능력 부적절' 한 죄인이

마구 저주하며 질러대는 소리를 보고 있으며

불현듯.. 어찌나 나의 그러함과 닮았는지 ..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의 동료가

그 아픔 중에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을 힘을 다해 '끈'으로 붙들며

공감하여 보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여..

공감..

쉽지 않은 성품임을

체험하고 잇습니다.

이 일상에서

매사에 그런 온유한 성품으로 세상을 다 바라볼 수 만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겠으며

내 안에는 또 얼마나 귀한 '평화'가 자리 잡을 지 알면서도

많은 오래된 망상적 생각들이 절 붙들고

쉽고 편안한 대화,

습관적인 소리들로

편안히 살려 하고 있다가

그와 저 스스로도 가슴앓이 되고 있습니다.


주여.

이 십자가의 고난.

주님의 뜻대로 따르지 못하는 미련한 자로서의 갈등...

이유를 알수 없는 '배반'당한 것 같은 속상함..

불안..

모두 십자가의 고난으로 받아 들여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 만을 바라보는

두번째 죄인 같은 자 되게 하여 주시길 빕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낙원에 임하라.. 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성령으로 도우마..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시여..

곧 부르실 그날에

'낙원'에 함께 있을 것 기대하고

이 땅에서 매일 부딪쳐 올

십자가 고난을 공감으로 승화 시킬 수 있길 원합니다.

내 주여.

도우소서.

인도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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