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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함으로 담담히 되다[마10:24-3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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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함으로 담담히 되다[마10:24-33]

주하인 2019. 2. 6. 08:44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두려움.

무서움

가슴 떨림.

멍해짐.

식은 땀.

온몸에 힘이 빠짐.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음.

에너지 소모

머리아픔

교감신경 활성화

우울.

압박감

터져나옴,                   

능력의 제한..........


 '경외하다'

두려워하다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위의 나열된 소모적 눌림과는 다르게

너무나 거대함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못하고 생각도 멈추어 버리는 상태..

 수년전 캐나다 록키 산맥 들어가니 '무서웠다'

그 크기가 너무 크고 너무 경이로와서 그랬다.

 유투브(우리가 접할 게 여기 밖에 더 있는가?ㅎ ) 통해서

'우주'를 들여다 보니

경외함이 엄청났다.

'태양' 이 지구의 수만배.. 그보다 수백만배는 큰 별들이 적색, 백색.. 왜성의 이름을 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은하수,  갤럭시에만 수억개의 별이 있다 .

이런 은하수가 수십억개 이상은 모여야  우주를 이룬단다.ㅠ.ㅠ;;

광년...우주에서의 기본 거리 단위.

수억광년을 지나야 은하수와 은하수를 통과할 수 있다.

그 사이의 '암흑공간'의 거리 말이다.

생각만 하여도 오금이 저릴 만큼 광활하다.

 이게 '경외감'의 실체들 아닐까?

아니.. 솔직히 그게 실감이 안가도

'왕' 앞에, 대통령 앞에 선다면 얼마나 .. 경외감이 들까?

그런데 그 우주를 만드시고

시간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선다면

과연 우리가 숨을 쉴수나 있을까?

 오죽 했으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직접뵈게 되면

타죽을 까 염려 된다 걱정된다 할까?

바윗 돌 날아다니는 바람 속에

엘리야가 죽을까봐 하나님이 동굴 바위틈에 손으로 막으시면서

하나님 영광을 보이셨을까?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함

경외할 것은 경외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당, 담대, 담담해도 될 일.

너무나도 광대하셔서

도저히 상상으로 따라갈 수 조차 없을 이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신 그 하나님의 너무너무너무너무 거대하시고 광대하신

능력을 감히 이름 들어 가까이 뵐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아니 그런 무지무지한 어불성설^^;;을 행할 수 있는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주신 말씀으로 인함,

그를 통한 성령의 전적인 도우심 탓 아니실런가?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제

내 삶...

오늘 눈 뜨고 하루를 살아내며 주님 앞에 한걸음 더 다가갈

내게 주시는

'두려워 하지 말고

 경외할 것'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라'는

'공포에 떨지말고'

'경외하라'는 이야기는 아닐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어떻게 매일을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할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 속의 논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치시키는 것.

 두려움의 잔상들.... 을

하나님의 거대하심으로 대치시키는 것.

어쩌면 투사 속의 그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성령으로 다시 그려내는 것.

내 오동작하는 '관념'의 메시지를

말씀으로 대치시키는 것.......이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 어떻게 그럴까?

다시 깊이 생각하고 기도할 모양이다.


주님

두려움과 경외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

두려움은 내 , 인간의 오래된 원죄적 틈을 타고

우리내 인생의 여러 조건들을 통해 들어온

'사단'의 잘못된 메시지와 그림 탓일 듯 싶습니다.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만 두려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동작된 부분에 유사한 상황이

끝없이 '잘못된 반응'을 가져오게 하는 것.

죄.

우리네 속의 지나친 공포감,

정도와 상황에 맞지 않는 공포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게하고

스스로 고통을 가져오게 하여

삶의 제한과

주님 앞에 나가는 발걸음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여

주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도 우리 삶에 적용되지 못하게 하고

그리함 하나하나가

서로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

아무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수천년에 걸쳐 선지자를 보내시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말씀하셔도

세상이 드디어는 이렇게 종말적 상황까지 오게 만드는

이 각각,

개인의 영혼 속에

참으로 잘못, 깊게 자리 잡은

'공포'.. 필요없는 두려움과 상대적 오동작의 욕구의 결과 탓인듯합니다.

그로 인해 주님 앞에 나가기 어렵게 하는

세상의 권세 잡은 소리들 말입니다.

주여............


이제 말씀을 통해

최소한 저에게

다시한번 깨닫고 되풀이 돌아보게 하시사

오늘 하루 제 스스로를 단속하는 레마로 주셨사오니

붙들고 살아가며

깨달아 회복시키고

타인에게도

이 블로그를 통한 사이버 세계에서

내 삶의 자그만 반경의 주변에

조금이라도 더 선한 영향 미치는 시간 되게 하소서.

 

오늘 특별히

경외하고 찬송드려야 마땅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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