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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욕심 장사 지내기(창49:29-50:14)

주하인 2014. 11. 25. 09:01

 

  너는 아느냐 !

 

나는 정말 아는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걱정과 근심하지 말라시는

그 온전한 십자가의 사랑을.. ?

 

 

49:29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수년 전 부터 이 대목에만 오면 이 '발을 침상에 모으고'라는 부분에

눈이 멈춘다.

죽어 흰천으로 덮은 야곱의 발가락이 마치 '꼼지락'이라도 거릴 듯한

착각이...ㅎ

 

그거.

인생에 대한 미련이 남아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는 내 심성이 반영되어서 인가?

 

어쨋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던 야곱이

드디어 인생을 마무리 하고

그에게 남는것은 유사이래 누구라도 그러하듯

덮힌 흰천 속의 '赤身' , 아니 나신 뿐.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게

인생이다.

 

 
 
50: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그러나 그는 '요셉'을 아들로 두었다 .

그래서 갖은 호사를 하는 장사를 치루고 있다 .

 

그래도 그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호사는 자식들의 몫.

자신들의 잘됨과

아버지의 자식 잘둠을 칭송하지만 결국 모두 자신들의 영광일 뿐이다.

야곱은 못 가져간다 .

 

 더구나 애굽 식.

미라로 만든다.

제사장도 애굽 제사장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50: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바로.

세상의 왕.

그가 명령을 내려 모든 '호의'를 베푼다.

 

 이거.. 어찌 생각할까?

 

어쩌면 이방에 내려가 온전히 이방의 풍습에 물들어

죽을 때조차 이방식대로..

몸이 가면 마음도 따라간다는데..

죽은 야곱이야 그렇다해도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

 

 

 오늘 말씀을 보며

몇가지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다 .

일단은 장사지내기다.

아.. 그를 통한 '죽음'이다.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죽음.

그러나, 위에 열거한 죽음의 모습은 '누구나'의 죽음이다.

허무한,.. 의미없는.. .적신으로 와 적신으로 가는 인생무상의... 허탈함.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세상에서 가지고 갈 것을 욕심 부릴 필요가 없고

고민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시간이 지나버리면 다 썩어버릴 것들에 대한

초탈함... 이 배울 만한 것이다 .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죽음에 다시 더해지는 한가지가 있다 .

'새로운 생명'이다 .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이상 열풍'에 빠지는 형국이다.

거기에 보면 '오차원' 얘기가 나온다 .

사차원 만해도 힘든데 오차원이라니

그리고 그 차원의 문을 열고 닫는 존재로 '외계인'이 묘사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차원의 존재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더 다른 차원.. 육차원.. .칠차원..... 까지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21 차원'까지 밝혔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머리 아픈 것을 왜 열광하는가?

'소망'이 없는 그들이기 때문에

천재라는 '놀란' 감독에 의하여 조금이나마 밝혀진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영적으로 민감'한 백성들이 아니던가?

세상은 물질로 막혀 있어

이땅의 것이 다이고 이 3차원에서만 생각이 막혀 있다가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 하니

그 영적 본능들이 반응하는 것일 것이다.

어차피 놀란.. 역시 그리 만들어진 사람..

그를 매개로 말이다.

 

약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지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여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빠짐은

세상 사람에 의하여서도 '상상'되어지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의 '홀로 계신' ,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지실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

그래서 그 분이 만들어 놓으신 이 3차원의 세상의 우리가

21차원이 되었든 5차원이 되었든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던 3째 하늘이 되었든(이것도 차원의 문제..)

갈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게 사실이라니

더욱 '믿음'에 힘이 간다.

 말은 길어졌지만

믿는 자는 확실히 '고차원'의 천국에서 머물며 영생을 누리게 된다.

 

세상의 것을 초연히 바라볼

그래서 욕심을 내리고

고민을 내려 놓을 당위성에

허무함 보다 더큰 기쁨의 소망이 추가됨이다 .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그런데 과연 모두 그럴 수 있는가...이다.

우리 ...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눈뜨면 온통 '최고의 사양'으로 번개처럼 변해가는 정보 전쟁의 시대에

눈을 하나님 나라에만 고정하고

청빈하게 살면서

걱정과 욕심 모두를 내려 놓고 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

그럴 수 있다 .

그러기 위하여 '수도자'의 길로 가는 자들도 있다 .

목회자로 , 청빈한 삶을 살 수 있다.

제자를 추구하는 삶이 있다 .

하지만, 그들 만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던가?

어차피 모두 '구원'은 허락 받았지만.. ?

 이 세상에 살면서 허락된 삶을 살면서는 불가한가?

 

오늘 야곱들의 미이라화와 애굽제사장의 장사 행사와

이방 민족들의 '수십일의 곡소리'... 속에서도

믿음이 변화되지 않는

죽은 야곱과 이스라엘 일가를 보고 있다.

 

그렇다.

'본질'이다.

외적으로 세상의 강력한 변화는

하나님의 나라를 청빈하게 추구하기를 어렵게는 만들지만

마음, 영혼이 하나님께 고정되고

그 분을 통해 영생의 소망을 잃지 않는 자들에게는

소유의 '존재 '유무가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되는 바가 있다.

야곱의 젊어서의 고난과 연단이다.

요셉의 '인내'와 변치않는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그를 인정하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 허무한 인생...

특별히 요즈음 같은 대 혼란의 시기

영적 타락의 시기에도

그래도 의미있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며

그 것이 가능함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그 분의 허락하신 기쁨이 얼마만큼 대단한 지 체험하고

그 체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결심일 뿐이다.

 

상황은 상관없다 .

상황 속에서도

영적 청빈과

영적 성결성

그래서 다가오는 하나님의 '평강', 여호와 샬롬 속에서 살게 되면

인생의 복,..

세상의 축복이나

그러함에 상관없는 더 큰 영적 '복'이

그의 삶을 '화려하게 ' 마무리하게 할 것이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의 나라를 구함은 '기쁨', 평강.. 심령천국의 추구의 또다른 이름이다.

 

 

오늘.

나.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나.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나니 조금 불안해지려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고센.. 으로 메시지는 받았으나

결정은 보류하고 기다리고 있던차다.

그러나.. 시기가 다른가 보다

조금.. 버겁다.

 

오늘 말씀은

그러함 불안함도

아직 소유에 대하여 청빈치 못함이고

그러함은 내 '영생'의 삶에 대한 ' 추상적' 생각 수준의 믿음을 방증하는 것 같다는 깨달음이다.

더 깊은 하나님의 만남.

말씀으로 깊이 지도 받음.. .

더 사모함..

 

그리고 지금 내 형국을

내 과거 수준의 아이디어로 판단 되어지려는

온갖 나쁜 생각들의 몰려오려함.. 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거 같으시다.

 

과거 같으면 야곱들의 미이라 화가 버거웠을 것이다 .

그러나.. 다시 차분히 바라보니

깨닫는 바 있지 않던가?

누군가는 그들을 나처럼 욕하겠지만

하나님은 아니라신다.

 

나도 내 현재의 모습에 당혹스러울 일이 없다.

최소한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고 있다 .

마음이 평화롭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깨달은 바 내 영혼의 지성소에

깊이 받아들이길 원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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