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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이는 하늘처럼(행2:14-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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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이는 하늘처럼(행2:14-21)

주하인 2007. 9. 4. 08:37

제 2 장 ( Chapter 2, Acts )

 

 

( 개이는 하늘 처럼 우리 인생도 주님 안에서 이제는 개이길 소원 합니다. )

  

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예루 살렘 사는 '모든 사람아'

 

 " 귀를 기울이라"


 

 말 한마디 한마디

그들의 서 있는 모습

 당당하고

하나 하나 나열 하는 순간에

천군 만마의 위용

마치 천국의 군대가 갑옷을 입고 도열하여 소리 지르는 영화의 장면이 연상되는 듯하다.

 

대단하다.

멋지다.

훌륭하다.

베드로..

열 한 사도.

 

 

 

 

 그런데................................

 

 

 

 

 웃기다 ~~~~~~~~

 

이 사람들이

바로 전에

�라, �라.... 방언하며

넘어지고 자빠지던 사람 들이다.

 베드로는 예수님 세번 부인하던 자들이다.

열 한 사도들 모두 배신자고

그 중 어떤 이는 알몸으로 도망도 치던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뿜어내는 위용이 저러하다니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다.

 무학의 어부 출신들이 행할 태도라 비아냥 거려야 마땅할 것만 같다.

- 실은 이런 비아냥에 의해 한없이 쭈구러 드는게

 의기소침한 많은 기독교인 들의 전도를 하지 못하고

 자신 없어 하는 이유가 될 것 만 같다.

  송사.

 

 그러나,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유는 성령충만함이다.

주님의 강권적 인도하심이다.

 여기에 개인적 특성  -베드로의 용기와 리더 자질- 이 겹쳐져

이러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 묵상은 희망적이다.

 

 찌푸러져서

숙명인양 살아오던 삶이

긍정적이고 힘있는 삶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노력 여부에는 전혀 상관없이..

 

 배울게 있다.

 

모여야 한다.

열한 사도가 그랬던 것 처럼.

 

그러나, 그것도 주님이 하시면 알아서 해 주실 것이시다.

모임

같이 서서 소리를 낼 수 있는 동역자.

 반드시 모두 옳고 뛰어난 자가 아니고

나름대로 아픔이 있고

주님 앞에 실수가 있는 자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앞에서 꼬꾸러져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며

주님 얘기 만 해도

눈에 눈물이 그렁 거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건

그들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안온감이 이유일 수가 있기도 하고

죄사함 받고

평강의 충만한 기쁨을 체험하는 자로서

진실이시고 진리이신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가 되었다는 '다행감'으로 가득 차있기 에 그러하다 .

같은 비밀을 공유한 자들로서

이해할 수 없는 영적 끈으로 묶여있는 듯한

영적 동질감으로 꽁꽁 쌓이고 있는 자들.

그러한 자들의 모임이

이제 곧 이루어 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는 묵상이기도 하다 .

물론 내가 그런 자의 모임에 참여할 자격이 되어야 할 당위성과 의지를 굳히려 함도 물론이지만..

 

 또한

벌써 명기한 대로

머리 속에서는

승천하신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충만하지만

사단의 송사에 부딪치기만 하면

한 없이 힘이 없어지고 쪼그라만 드는 자신이

이제

베드로 등의 그러한 힘있는 모습으로 곧 변화할 것이 기대가 된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한 이야기이며

이제

그들의 그 힘있는 삶,

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일에 대한

절대적 소명감으로 그득 차게 되어

세상의 삶의 모습이 어떻든

하나도 �이 나지 않고

당당하고 힘이 있는 삶의 모습이 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 묵상은

권면이시기도 하지만

마치

'예언'이기라도 한  양

슬그머니 가슴에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   출근하는 길에 차를 길 옆에 부리나케 세우고 찍은 하늘.                                        

   그 때가 되면 , 먹구름은 저리 작아지고 부드럽고 맑은 하늘 구름이 내 영혼을 덮으리라 )

 

  그때가 되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세상의 것이 아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만 외쳐 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은 권위가 있어

사람들과

그 보다

내 스스로 내 안에서

힘을 가지고

권위를 발휘하기를 원합니다.

 

프라이드 경기나

주식이나

노후나

경쟁이나

........

아무런 의미가 없기를 원합니다.

 내 속에서

그런 것들은

주님의 허락하신 
결과물로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내 삶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물론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 깊이

절절하고 당당하게

힘을 가지고

권위 있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 버리고 포기를 하였지만

아직도

솔직히

주님의 말씀 만 가지고

전도가 내 필생의 유일한 관심이지 못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주여

하지만

오늘 주시는 예언처럼 느껴지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공감시켜 주시는 장면이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고

제가 궁극적으로 나가야 할 방향으로 느껴집니다.

 

주여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기후는 급변하고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국가간의 경쟁은 끝없이 일촉즉발의 끝으로 달려가고

세상은 경제를 위하여 총력하는 느낌입니다.

 그 안에

주님을 알고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의 부담을 가진 자로서

특별히 기를 쓰고 들어가

그들과 같아지고

그들의 한계점에 다달은 뺏어 먹기식 

경쟁에 참여하기도 어렵습니다.

 

주여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이 오늘 베드로 사도 일행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게 반드시 그들처럼

목회자의 모습은 아니고

선택 받은 소수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내 삶에서

내 삶의 방편을 유지하여 가며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 되고

그 나라에 대한 소개가 우선이 되며

그러기 위해

나의 삶 일부분이

적절하게

그러지 못한 이웃들을 위하여 나뉘어 지고

나뉘어지는 부분을

머리속의 개념 적 차원이 아니고

주의 강렬한 이끌림에 의한

소명의식으로 바뀌기 원합니다.

삶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아직은 그리하지 못하지만

그리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그러한 삶을 공유할 자들이 이루어진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기도 원합니다.

그런 만남의 덩어리 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필요한 그때

주님이 부르시면

숨겨 놓았던 칠천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길 원합니다.

그 모습 조차

우리의 그림이나 목표의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게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그때 쯤 가면

그런 이유였구나.. 알 수 있을

인도하심 받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1. 같이 설 자들을 보내주시길 기대한다.

 

2. 당당한 소리를 외칠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3. 주님이 내 삶의 모든 존재 이유로 존재할 수 있기를 원한다.

 

4. TV 하루 안 보겠다.

 

5.  성경 다섯장 읽겠다.

 

6. 인도하심 기대한다.

   내 열정

   내 달란트

   기회

 주님이 인도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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