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감동의 餘韻(출 35:20-29) 본문

구약 QT

감동의 餘韻(출 35:20-29)

주하인 2009. 6. 19. 07:51

제 35 장 ( Chapter 35, Exodus )

 

 

 

무슨 풀꽃인지 모르지만

아내가 사다가 물컵에 담아논

아주 적은 꽃들이다.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을

윤기나는 노란 꽃이

아름다운 곡선의 줄기를 받침으로 피어났다.

뒤편의 검은색 소파를 배경으로

베란다 창틀을 통해 들어온

햇빛을 받아

놀랍도록 아름다운 작품을 지어낸다.

사진기가 디카라서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

 

어디든

성령의 감동으로

내 모든 것을 피워 올리자.

기쁨으로 올리는 내 모든 것은

주님 앞에

꽃이 되리라.

 

크기가 문제인가?

생김새가 문제인가?

 

문제는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성령을 받아

내 모든 것을 피워내는 그것이다.

그것이 진짜 아름답다.

사진을 찍어대며 느끼는 것이다.

적은 꽃들의 아름다움이

날 그리 느끼게 한다.

 

 

 


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주님이 임하시는 예배는

그 자리를 물러나와도 여운이 남는다.

오래 감동으로 남는다.

 난, 참 행운아다.

살고있는 집이 '유원지 ' 바로 아래로  거기에는 '기도원'이 있다.

그 기도원이 놀랍도록 깨어 있다.

말씀이 살아서 숨을 쉰다.

 처음 신앙생활하던 교회가 개척교회였지만 깨어 있으려 몸부림치던 교회다.

사정으로 인하여 옮긴 현 교회의 '홍'목사님은 대단하시다.

한달.

그동안 예배를 많이 참석했지만

예배가 감동이 아닐 때가 '단 한번'도 없었다.

 

  물러나와도 '여운 餘韻'이 남는다.

 


 
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그 여운의 실체는 '성령의 감동'이다.

성령 감동은 그 분 목회자님들의 주님 앞에 솔선 수범하는 서 있으려는 몸부림이 있으시기에 가능하다.

회중으로 모세같은 목회자들을 뵙는 행운이야 말로 놀랍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엄한 죄를 지은 뻔뻔한^^;; 심성을 가지고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반대로 '감동'을 한다.

 이 조삼모사, 너무도 쉽게, 어이없이 , 당연한 것 처럼 바뀌는 것이 영적인 원리에 의거한다고 생각한다.

 늘 이야기지만 인간은 '성전'의 모형이다.

그 성전의 지성소, 영혼의 깊숙한 어디에 주님의 '영'이 임하셔야 한다.

그러나, 사단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면

그때는 확.. 돌변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회개하고 말씀으로 살려는 결심 후

주님의 성령을 간구하면 그 분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우리의 지성소에 거하신다.

그러면 또 '확'하고 감동으로 바뀐다.

 

 그런데, 감동하는 자와 자원 하는 자라 나온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감동하는 자는 '전적인 성령의 임하심에 의한 타율적 현상'이지만

자원은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이라는

조금은 '인간의 의지와 바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자율적 '성격을 띈다.

 감동이 좀더 강렬한 사로잡힘이지만

자원은 '약하게 나마 주님의 감동'을 맛보았던 자들이

자신의 성격적 특성이나 환경 탓으로 자아가 들어간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둘 모두 나쁘고 좋다는 개념은 아니다.

문제는 원함에는 순수한 주님의 감동이외의 목적이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에 보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큰 교회일 수록 이 프로그램에 많은 헌신자들이 있다.

그들 모두 '감동'으로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떠한가?

자원으로 하는가?

감동으로 하는가?

아직은 감동이다.

감동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고정된 시각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자원'만으로 봉사하는 신앙인들을 조금은 뜨악하게 바라보는 면이 없지 않았다.

난, 그것을 '자기 열심'으로 보아왔다.

물론 모두는 아니다.

그럴 위험이 보이는 자원이 많이 보였었다는 이야기다.

난, 그들을 순수한 신앙인으로 보지 않았었다.

실은 조금 경멸 비슷한 '성령'적이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죄송하다.^^;;;

 

 

 
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그러나, 여기에는 나의 착오가 없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특별히 오늘.

 자원하는 자들도 '여호와께 ' 고정된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그 자원의 마음이 순수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채워져 갈 날이 없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처음 묵상 시작은 '자원'의 성격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거의 매일 아침마다 감동으로 날 채워가신 하나님이 날 성령의 감동으로 채워갔다.

감동이 없는 어떤 것도 행동으로 하지 않으려 하는 나의 심성은

그 분이 진리이시고 진리의 감동이 나의 행동의 원천이 됨이기에

나이가 중년의 후반에 있는 자로서 새로운 것들이 습득되어 갔다.

 

23.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 왔으며  
24.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 목이

     있는 자는 가져 왔으며  
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 왔으며   
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낳았으며  
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 왔으며  
28.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 왔으니 
 그런데 , 이 자원하는 자들이 열심히 열심히 '가져온다'

실을 낳기도 한다.

 자기 열심으로 앞서 나가는 자들을 참  경계하는 바 였는데

이들에 대한 성경의 시야가 남다르다.

긍정적으로 보인다.

기쁘게 받으시는 헌신으로 보고 계시는 듯한 톤이다.
 


29.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즐거이 드림이 원인이다.

여호와께 드림을 알고 드리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것은 비록 자기가 좀 앞서기는 -내 생각 , 오직 지금까지의 내 판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자원하기에

그 마음에 역으로 감동이 들어차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가오는 몇가지 느낌이 있다.

 

 우선, 성령의 감동으로 늘 나를 채울 노력을 하여야 한다.

감동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이 굳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굳지 않기 위해서는 '회개'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주님 때문에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심이 필요한다.

주님 성령께서 오시면 그게 얼마나 감동이고 기쁨인지 늘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 늘 주님으로 감동하는 상태가 되어서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 열심히 드려야 한다.

주님의 감동이든, 그 주님을 기뻐하든,

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으로 드리는 자기적 열심이든

주님께 드릴 것은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한다.

 즐거이 드리면 감동으로 선물하실 것이다.

그 감동은 일상의 에너지로 표현되어 나올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축복으로도 변할 것이다.

이게 순서다.

 

셋째.

 주님 앞에 드리는 열심은 어떤 것이든 귀하다.

어떤 모습과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였든 간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시작은

예수님을 의식하는 집중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지속은

결국은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인지하게 되는 자들이 될 거이다.

그게 감동하는 자가 아닌가?

결국 자원하는 자는 감동하는 자가 될 필연성에 놓여 있다.

함부로 정죄말자.

 

넷째

예배에 열심히 참가하자.

 

다섯 째

여운을 주는 자가 되자.

주님 만 신경쓰자.

이웃에게는 주님의 감동을 나누어 주어야 되는 자들로 인식하자.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의 감동 안에서 늘 살았으면 합니다.

그 감동의 여운이

주님 자리에서 물러나와 있을 때도 유지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진한 향을 내면 쉬이 없어지지 않듯

인격의 향기가 주님으로 인하여 뿜어지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난, 주님의 감동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렵니다.

눈을 절제하고

입을 절제하겠습니다.

 사람들에 대하여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겠습니다.

열심으로 주님께 드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