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보라 나는 다만 나로[갈1:11-24] 본문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 '보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
거짓말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
늘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사는 자.
사도 바울의 선언이다.
'보라'라.......함은
그의 삶의 힘있음
그 힘있음의 이유가 하나님 앞에 서 있기에
아무런 흔들림이 없을 수 밖에 없음을
힘껏 고백함이다.
아니다.
탄성과 더불어 힘있게 고백되어짐이 원인이다.
내 하루는 어떤가?
난 정말 하나님을 매시 매초 인식하고 사는가?
멍청하게 넋을 잃은 듯
유혹에 끌리고
홀로 있을 두려움에 ,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하여
눈을 잡아끄는 영상, TV...........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던가?
24.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혹은
과거로 부터 올라오는
손가락질로 부터 혼돈 스러워 함은 또 아니던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이 아니고
'사단 뒤'에 끌려가는 삶은 아닐까?
그 영적인 왜곡자,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소리..
'너.. 가, 네까짓게.......어떻게......염치도.............' 라는 소리들.. 말이다.
이 3차원 세상의 도덕과 합리로
과연.. 그 잘못들이 용서 받을 개연성이 있는 가 질타..하는 소리.....ㅠ.ㅠ;
과연 그렇다면
그
사도바울은
그런 일을 할 자격이나 있는가?
사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안에서 역사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완전히 눈꺼풀이 벗겨지고 다른 세상, 다른 인생관으로 뒤집어 진 사람 아니던가?
25.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그가 '나로 '말미암아.. 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음은
그의 부족함 마져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원리,
약함과 부족함과 심지어는 그 잔인했음 마져 들어 쓰시는
그리고 완전히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리 될 수 있던 게 아니던가?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바로 자기이고
그런 완전히 새로워진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되는 도구로
자신을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사도 바울님의 '보라 나는 다만 나로' 라는 짧지만 강력한 외침이
내 늘어지는 영적 나태와 달려드는 구습의 흔적들을 향해
돌이키길 권하게 하시는 듯 하다 .
감사하다.
주님.
하루를 또 보내고 있습니다 .
눈뜨고 눈감고 또 눈뜨고 보면
어제와 그제와 그전과 똑같은 하루가 되풀이 되고
어제의 그 시간에 앉아 그렇게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또 하루를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안에서
'보라' 라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나는 다만.. 이라며
힘있는 하루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자신을
사도 바울 님의 힘있는 고백을 통해서 보게 하십니다 .
그리고 그러하길 막아서는
수없이 많은 세상의 이치에 근거한 그럴듯한 손가락질로
그냥 그렇게 또 매몰되어 버리려 함을
주님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그러한 부족함 마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게 하시고
사용되는 도구로서의 '나'의 어떠함,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주어지는
놀라운 자기의 발견,
그 행복한 힘있음에 대하여
다시금 상기 하게 하십니다 .
주여.
그렇습니다.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고
이후에도 살 내 모든 것,
하나님이 전제가 되는 한
또 생기 있고 힘있는 시간들이 될것이 믿어집니다.
주여.
저도 감사하며 주님 영광돌리는 하루를 살기를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내 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이 갈수록 [갈3:1-9] (0) | 2021.09.05 |
---|---|
예수 믿기 때문에 난 의롭다[갈2:11-21] (0) | 2021.09.04 |
사는 이유,목적,방향 & 視線[갈1:1-10] (0) | 2021.09.01 |
오직 주 뿐이심을 보라[사40:12-31] (0) | 2021.07.13 |
외치라 위로 받게 하자[사40:1-11] (0) | 2021.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