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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나는 다만 나로[갈1:11-24] 본문

신약 QT

보라 나는 다만 나로[갈1:11-24]

주하인 2021. 9. 2. 08:52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 '보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 

거짓말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

 

 늘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사는 자.

사도 바울의 선언이다. 

'보라'라.......함은 

그의 삶의 힘있음

그 힘있음의 이유가 하나님 앞에 서 있기에 

아무런 흔들림이 없을 수 밖에 없음을 

힘껏 고백함이다. 

아니다. 

탄성과 더불어 힘있게 고백되어짐이 원인이다. 

 

 내 하루는 어떤가?

난 정말 하나님을 매시 매초 인식하고 사는가?

멍청하게 넋을 잃은 듯

유혹에 끌리고

홀로 있을 두려움에 ,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하여

눈을 잡아끄는 영상, TV...........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던가?

 


24.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혹은 

과거로 부터 올라오는

손가락질로 부터 혼돈 스러워 함은 또 아니던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이 아니고

'사단 뒤'에 끌려가는 삶은 아닐까?
 그 영적인 왜곡자,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소리.. 

'너.. 가, 네까짓게.......어떻게......염치도.............' 라는 소리들.. 말이다. 

이 3차원 세상의 도덕과 합리로

과연.. 그 잘못들이 용서 받을 개연성이 있는 가 질타..하는 소리.....ㅠ.ㅠ;

 

 과연 그렇다면

그 

사도바울은 

그런 일을 할 자격이나 있는가?

사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안에서 역사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완전히 눈꺼풀이 벗겨지고 다른 세상, 다른 인생관으로 뒤집어 진 사람 아니던가?

 

 

25.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그가 '나로 '말미암아.. 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음은

그의 부족함 마져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원리,

약함과 부족함과 심지어는 그 잔인했음 마져 들어 쓰시는

그리고 완전히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리 될 수 있던 게 아니던가?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바로 자기이고

그런 완전히 새로워진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되는 도구로 

자신을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사도 바울님의 '보라 나는 다만 나로' 라는 짧지만 강력한 외침이

내 늘어지는 영적 나태와 달려드는 구습의 흔적들을 향해 

돌이키길 권하게 하시는 듯 하다 .

감사하다. 

 

 

 주님. 

하루를 또 보내고 있습니다 .

눈뜨고 눈감고 또 눈뜨고 보면

어제와 그제와 그전과 똑같은 하루가 되풀이 되고 

어제의 그 시간에 앉아 그렇게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또 하루를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안에서 

'보라' 라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나는 다만.. 이라며 

힘있는 하루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자신을 

사도 바울 님의 힘있는 고백을 통해서 보게 하십니다 .

 

그리고 그러하길 막아서는 

수없이 많은 세상의 이치에 근거한 그럴듯한 손가락질로 

그냥 그렇게 또 매몰되어 버리려 함을 

주님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그러한 부족함 마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게 하시고 

사용되는 도구로서의 '나'의 어떠함,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주어지는 

놀라운 자기의 발견, 

그 행복한 힘있음에 대하여 

다시금 상기 하게 하십니다 .

 

주여.

그렇습니다.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되고 

이후에도 살 내 모든 것,

하나님이 전제가 되는 한

또 생기 있고 힘있는 시간들이 될것이 믿어집니다. 

주여.

저도 감사하며 주님 영광돌리는 하루를 살기를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내 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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