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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급과 갈망(시421:12) 본문

구약 QT

갈급과 갈망(시421:12)

주하인 2007. 4. 30. 11:27

제 42 장 ( Chapter 42, Psalms )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나도 이렇게 주님을 갈구합니다. )

 

 

 


 아침에 버스 타기 전에 시계를 보았다.

8시 5분.

버스를 타고 가면 8시 반까지 빠듯한 시간.

빨리 가야하는데..하면서 오늘도 혼자서 할 큐티 시간이 될지 모른다 생각하니 속이 답답하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 낙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 병원에 주님을 묵상할 자들이 없습니다.

점차로 아침 큐티가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하였다.

 

 버스에 올라타니 힘이 들때 많이 가슴을 치던 구절이 눈에 보인다.

혼자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모습을 취한 구절이라서

'참으로 성경도 기가막히구나'하며 믿음 초기에 성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절에 눈에 확 들어온 구절이 바로 5절 '내 영혼아...'이다.

 특별히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에서 눈이 멈춘다.

아침에 버스 타기 전 '하나님 우리 병원 큐티 어떡해요' 했더니 금방 응답하시는 듯하다.

 

   재 작년 원치 않게 여성병원에서 아침 큐티를 인도하고 본 병원으로 돌아오는 아침 일정을 1년 넘게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솔직히 내적인 부대낌이 많았다.

그럼에도 주님이 강력히 날 붙드셨다.

아침의 묵상 시간에 나누는 그 나눔을 통해서 전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처음에 혼자 나가서 할 때도 있었다.

요즈음 처럼.. .

그러다가 점차로 사람이 늘어서 15명까지 아침에 나오기 시작했었다.

기도 제목을 구체화 시켜서 응답받는 체험까지 여러번 하며 그 시간은 참으로 힘이 들었지만 은혜가 넘쳤고 사람들 눈이 전부 기쁨으로 차기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본병원에서의 아침 시간.

요사이 점차로  모이기가 힘이 들어진다.

물론 , 직장에서 모이지 않는다고 나름대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랜 큐티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게 있다.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모임을 귀히 보신다.

매일 아침 주시고자 하시는 선한 말씀과 강력한 은혜로 하루를 지내는 에너지를 삼기를 원하신다.

말씀을 준행하고 반성하고 한걸음 씩 나아가는 것을 주님은 보시고자 하신다.

특별히 이 병원은 '미션병원'을 지향하고 있기에 성령충만하지 않고는 내외적 부딪침이 많을 진대 ...

그러기에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럴 때 나 혼자의 내적인 부대낌이 솔직히 더 많았다면 이제는 나는 담담하게 느껴진다.

 직장이 안타깝다.

실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속으로 내가 좀 성장했음을 느끼기에 대견한 면이 없지 아니 든다.

이 아침에..

그러면서 이  하나님을 바라라 라는 말씀을 보면서 느껴지는 게 있다.

예전에는 혼자 별 구상을 다하고 온갖 생각을 다하다가 '예수님 어쩌지요?'라는 기도를 했으나

이제는 주님을 먼저 바라보는 게 우선일 듯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렇다.

내 속의 헛된 생각을 내려놓고 - 실제로 가능성 있는 몇몇 사람들 찾아가서 밥을 먹이고 대화를 하고...의 나한테는 너무나 어려운 행위를 상상하다가 좌절하는 -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분이 인도하심을 믿고 그 분의 응답대로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은 내 생각으로 한없이 펼쳐지는 '헛된 생각'의 향연과 자신없는 노력을 내려놓고

주님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오늘의 묵상의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을 오늘 잠시 버스 정류장에서 생각하고 묵상집 펼쳐든 단 10분의 짧은 버스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1절 부터 두번 씩 나오는 '갈급'함 ,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에 머리를 담고 허겁지겁 마시는 그런 갈급함으로 이 아침을 불쌍히 , 이 나라의 영적인 상태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 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2절에서 나오는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갈망하나니    라 나오는 것 처럼 생존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그 분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당연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 그 당연한 것을 시로 쓰니 그것은 더욱 절절하다.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뵈어야 한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늘 하나님 앞에 있는 '면전 신앙'이 되어야 한다 .

오늘 잠깐의 느낌이 아니라

늘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 치는 그러한 갈급함과 갈망으로 먼저 직장,

아니 우리나라,

아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정말 정말 소원해야 한다.

그래야 그분이 응답하신다.

3절의' 사람들이 아무리 하루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놀려도

그래서 내 가슴이 종일토록 안타깝고 속상해서 눈물이 양식이 되어도

주님을 간절히 간절히 바랠 수 있어야 '하나님을 바라는' 그러한 응답의 조건이 될 것이다.

 

 눈물이 양식이 된다..는 이 구절은 참 묘하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면 이게 배 부를 정도였을까 생각하면

記者의 가슴 아픔이 그대로 전해오듯 미어지는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눈물이 흘러 내리면서 일 부분 코 뒷 부분을 통해 목으로 흘러 내려 배를 채울 때...ㅎㅎ.. 이게 눈물 뿐일까..생각하니 피식 웃음도 금할 길이 없다.

당연히 콧물도 넘어 가겠지.

 성경이 이처럼 재밌는 표현이 구석구석 있고

그 재밌는 표현이 현대인 들의 구강구조와 전혀 다름이 없으므로 나온 것이며

그들도 은혜 받거나

심령이 가난해지면 지금 우리 내가 은혜 받거나 회개할 때 흐르는 눈물이 넘쳐서 뱃속으로 흘러 들어가 신나게 기도하고 울고나면 어느 땐가 '끄윽'하고 트름이 나올 정도로 배가 부른 적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입꼬리 한쪽이 비스듬히 올라갈 만큼 공감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성경은 살아 있다.

특별히 그 분들의 감정을 이입해서 들여다 보면 어찌나 내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는지 놀라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있는 글이라는 것 같다.

 

 

 오늘 은 특별히 시편의 이 구절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고 필요하다면 외우기라도 할 모양이다.

그리고 울 직장을 위하여

울 나라를 위하여 다시 한번 깊이 이 구절에 맞추어 기도할 모양이다.

 

적용

 

1. 내 직장의 영적 상황을 위하여 주님 앞에 내려놓는다.

 

2.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으로 바뀌길 기도하겠다

 

3. 성경을 5장 읽겠다.

 

4. 저녁에 기도원 가겠다.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바라야할 상황에 대하여 내려 놓고 기도하겠다.

 

5. TV 를 끄겠다.

 자꾸 시간이 늘어난다.

 요번 주는 TV 안보겠다.

 

 

 

기도

 

주여

틀림없이 주는 저에게도 생존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 한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여

주님의 말씀을 준행한다는게

주여

주님을 바라는게 무엇인지도 잊어먹고  또 습관적으로 이 시간까지 지내왔나이다.

용서하시고

주님을 바라는 시편의 기자의 말씀이 내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특별히 몸이 감기로 인해 나를 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

당신을 찾기를 결심했사오니 도우소서.

이 병원을

이 나라를

내 가정을 위하여

주님 당신의 뜻을 바라오니

어찌 기도할지

어찌 내가 행동해야 할 지 가르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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