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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맡겨진 일 (창25:19-34)

주하인 2007. 5. 1. 11:03

제 25 장 ( Chapter 25, Genesis )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몸이 감기로 나른하고 힘이 든다.

머리는 기분 나쁘게 지끈 거리고

온 몸의 근육은 고추가루 뿌린 듯 언짢다.

어제 저녁에 늦게나마 기도원에 올라가서 자고 내려왔지만 비몽사몽이라서 기도도 깊이 못했다.

 

 몸이 안좋으니 기분도 따라 안좋으려 한다.

아내가 내 상태를 고려해서 늦게 깨웠던 차 아침의 큐티는 참가할 생각조차 못했다.

 

아침에 비가 소스소슬 내린다.

날씨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한마디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꼭 내 상태랑 비슷하다.

 버스타고가려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차를 몰고 나왔다.

앉아서 먼저 큐티 책을 들여다 보려는 차... 아뿔싸... 새달 것을 준비를 못했다.

그냥 어제 이어 시편 43편을 들여다 본다.

눈에 띠는 대로 머리 속에 입력했다.

 1절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5절 내 영혼아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역시 항상 눈에 띠는 게 내 왜곡된 삶의 지표를 바로 잡는 말씀이다.

 

그리고는 병원의 큐티 모임이 안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왔다.

나도 너무 게을러져 있음을 부담을 가지며 어제 저녁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을 바라려는 그 바램이 약간의 육신의 부담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한편 내가 지금 맡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너무 안이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잊고 말았다.

 

 아침에 회진을 돌고 complaint하는 환자에 대한 부담과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인의 문제에 정신을 쏟다가 하나 둘 해결하고 11가 넘어서야 미련하게도, 정말 미련하게도, 게으르게도 큐티를 들쳐 보았다.

시편 43장일 거라는 나태한 생각이 날 지배했다.

아무 생각없이 ..

 

 창세기 .

너무도 유명한 구절.

부담 조차 없다.

 

하나하나 내가 쌓아 오며 몇년간 그리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 앞의 겸허함이 어느새 많이 무너져 있었다.

별로 죄스러움도 없고

별로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얼마 전까지 뜨거우려 애는 썼는데...

 

이게 내 오랜 cycle에 연루한 것일까?

( 터프가이는 사소하지만 자칫 정말 중요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에서가 들에서 들어오며 피곤하다.

한번 날 가져다가 대입시켜 보았다.

그 피곤함이 내 감기 걸린 육신의 나른함 보다 조금 더 심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는 장자권이 아무것도 아닌 듯 내 던진다.

실제로 난 그가 무식해서 그걸 그리 던진 것은 절대로 아니라 생각한다.

그는 나름대로 선택받은 가정에서 장자로 태어난 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신이 강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모든 것을 함부로 해도 남들이 다 인정할 듯한 교만함이 어느 샌가 그의 전신에 차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기에 조용하고

그의 가치관으로 볼 때 세상에 왜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 만큼

부족한 '야곱'의 조용한 접근에 대하여 같지 않게 여겨졌을 것이며

그의 나른한 나태함과 더불어 멋지고 싶은 욕구가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장자권' 쯤, 아무렇지 않게 양도할 수 있는 '남자다움'을 보이고자하는

영성(장자권을 귀히 여기는 영적인 마음)과 육성( 잘난체 하고 싶은 육신의 마음)의 대결에서

육성이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멋지게

Tough 하게

던지고 갔을 것이다.

 

 그게 영원을 좌우하고 큰 일이 될 줄이야

그때 적은 사건-에서의 생각과 잘못된 인지 속의 판단- 속에 머무는 에서가 감히 어찌 짐작이나 할까?

 

 

 오늘로 돌아와서 나는 어떤가?

남들 모두 그게 전부냐,

과연 그렇게 심하게 하는게 믿음의 다냐...라는 손가락질 속에서

그렇게 손가락질 하는 소리가 맞다는 판단은 마치 에서의 '육성'의 승리의 소리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정말 적은 일 같고

세상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이 큐티라든가,

어쩌면 목요일 저녁에 소리소리 지르며

찬양이나 한다고 무슨 귀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

더더구나 일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처음 얼마의 믿지못할 일 생긴 이후에는 별 변화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이런 판단에서

실은 '내가 선 곳은 거룩하고'

내가 하는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난 늘 주님을 만나러 가며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난 남은 자로서 남을 것이며

그 모든 이유가 주님이기 때문이고

그것 만이 내가 이 세상을 사는 기본적 가치관이라는 생각을 뚜렷이 가지는 게

영성의 삶이 될 것이다.

위엣 것을 바라보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

주님은 너무도 유명하여 하나도 묵상할 거리가 남지 않은 듯한 에서의 장자권 예에서 나를 찌르신다.

 

 

적용

1. 큐티를 더 열심히 하겠다.

   기타를 가지고 출근해서 혼자라도 찬양한다.

 

2. 찬양 준비를 기도하며 하겠다.

 

3. 나에게 맡겨진 센터장 역할에 대하여 최선을 다한다.

  하나님을 바란 후.

 

4. 성경 5장 읽겠다.

 

 

 

 

 

 

기도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태한 마음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자꾸만 가라앉는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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