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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와라 (슥14:12-18)

주하인 2007. 4. 27. 09:10

제 14 장 ( Chapter 14, Zechariah )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

     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작년 이 구절을 묵상할 때

'성결'에 대하여 한 기억이 새롭다.

 

 오늘은 비교될 무엇이 있을까 나름대로 기대하며 묵상을 하려 했으나

아침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가며 집중하기가 어렵다.

수술 하나 끝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다.

 

 그냥 잠시 주님 이름으로 눈을 감고 묵상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 가라 앉는게 기분이 좋다.

이럴 때 마다 영혼이 싸우나탕에 들어 앉아 있는 것만 같다.

돈 안내고

아무 때나

영혼에 좋은 몸에도 좋을 싸우나를 하는게 큐티를 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점 중의 극히 일부분이다.ㅎㅎ

 

 눈에 띠는 구절은 예전과 다름없이 말 방울이라는 다소 유머스러운 뉘앙스의 기물을 선택하고 솥과 주발을 대미의 마지막에 선택한 하나님의 여유로우심이 재밌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극히 우스울 듯한 존재까지도 그 분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더더구나 누가 보아도 말방울을 성결하다고

솥을 성결하다고도

주발을 성결하다고도 할 수 없을 그 상황에서

그 분은 성결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것은 그렇다.

말 방울 보다 못한 나...

솥 뚜겅이 오히려 행복하지.. 하는 어떤 이들.

주발이라면 밥이라도 뜰 수 있지 , 나는 뭔가.. 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깊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전혀 아님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은 아닌가 ..하는게 이 큐티 구절을 읽으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이다.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자를 부요케 하는 자다. 

 징계를 받아 죽을 것 같으나 넌 살아 있는 자다.

 죽은 자 같은가?   보라 .  넌 살아 있다.

 근심하느냐?   가만히 보라 . 이건 기뻐하는 것이다.   항상..

 아무 것도 안남은 것 같은가?    실로 많은 것을 너는 가지고 있다..."시는 것 같지 않은가?

 

어찌 내가 그럴 수가 있는가요?

이리 물어도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솥처럼 느껴져서 아무 것도 쓸모없는 것 같은가?

 그 날에 대단한 자들이 모여 들을 때 넌 그들이 먹을 고기를 삶을 솥이 될 것이다. "라신다.

이처럼 그 분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나의 모든 쓰임을 다 아신다.

 

" 네가 흙도자기라서 더럽게 느껴지는가?

 그 도자기 위에 담긴 성령 때문에 너는 보배 그릇이라 불릴 것이다. "라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여도

성령은 나의 깊은 곳을  다 아시고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깊은 탄식으로 대신 빌어주신다고 하신다.

 

 아무리 보아도

거무 죽죽하게 보이는 솥 같고

아무리 들어도

시끄러운 딸랑거리는 내 소리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강아지 밥 주는 데 밖에 쓸데 없는 주발처럼 느껴져도

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성물이다.

반드시 주님 안에서 씌일 것이다.

 

문제는 그걸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데 딸려 있다.

 

내가 항상 원하는 것이 성전에 들어오는 멋진 자켓의 대 제사장 급의 위치라면

언제나 난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에서

주발이라도

말방울이라도

솥이라도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냥 받아 들이면 된다.

그게 가장 귀중한 성물로 쓰일 시발점이 된다.

 

 

받아들이자.

내가 솥이라도 좋다.

내가 주발이라도 좋다.

내가 말 방울이라도 좋다.

내 주위에 온 우주가 곧 무너진대도 좋다.

주님이 쓰신다고 만 하면 그냥 복종하고 받아드리리라.

 

와라

 

두렵지 않다.

 

 

 
 


 기도

 

주님.

말방울이 소리 내는 것을

이제까지는 탁하고 천한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주발은 이제 더 이상 밥상에서 존재하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솥은 구 시대의 산물이라서 나오면 안되는 줄 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삼

내가 그 말 방울이 왜 그리 창피하게 느껴졌고

주발이 촌스럽게 보였었고

솥은 불편함의 상징으로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모습이 스스로 그려 느껴져서 인줄 알았습니다.

주님 .

그러나

우리 주께서 성물과 성결로 말씀하신 이후에

말 방울은 유머와 애뜻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솥은 그리움을 함유한 따스함의 느낌이고

주발은 맛있는 사랑의 밥을 담고 있는 그러한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듯 합니다.

주여

이런 내 속의 변함을 기뻐합니다.

주여

주님이 허락하시니

어줍지 않던 자존심과

괜한 ideal self 에 대한 그림을 낮추려 합니다.

이제 좀 낮출 수 있을 듯도 싶습니다.

그냥

제사장의 멋진 옷을 입지 않아도

남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솥이라도

난 날 인정하길 원합니다.

아니

주여

당신이 그리 날 쓰시겠다니

당신 하나님께 절 맡기기를 원합니다.

쓰시옵소서.

헛된 욕망 내려놓기 힘이 드오니

주님 날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적용

 

1. 창피한 일 생기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감사합니다.

 

2. 아버지 병원 면회 가려한다.

  기도하면서 간다.

 

3. 눈을 내리 깔고 겸손하길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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