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와라 (슥14:12-18)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Zechariah )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
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작년 이 구절을 묵상할 때
'성결'에 대하여 한 기억이 새롭다.
오늘은 비교될 무엇이 있을까 나름대로 기대하며 묵상을 하려 했으나
아침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가며 집중하기가 어렵다.
수술 하나 끝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다.
그냥 잠시 주님 이름으로 눈을 감고 묵상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 가라 앉는게 기분이 좋다.
이럴 때 마다 영혼이 싸우나탕에 들어 앉아 있는 것만 같다.
돈 안내고
아무 때나
영혼에 좋은 몸에도 좋을 싸우나를 하는게 큐티를 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점 중의 극히 일부분이다.ㅎㅎ
눈에 띠는 구절은 예전과 다름없이 말 방울이라는 다소 유머스러운 뉘앙스의 기물을 선택하고 솥과 주발을 대미의 마지막에 선택한 하나님의 여유로우심이 재밌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극히 우스울 듯한 존재까지도 그 분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더더구나 누가 보아도 말방울을 성결하다고
솥을 성결하다고도
주발을 성결하다고도 할 수 없을 그 상황에서
그 분은 성결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것은 그렇다.
말 방울 보다 못한 나...
솥 뚜겅이 오히려 행복하지.. 하는 어떤 이들.
주발이라면 밥이라도 뜰 수 있지 , 나는 뭔가.. 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깊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전혀 아님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은 아닌가 ..하는게 이 큐티 구절을 읽으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이다.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자를 부요케 하는 자다.
징계를 받아 죽을 것 같으나 넌 살아 있는 자다.
죽은 자 같은가? 보라 . 넌 살아 있다.
근심하느냐? 가만히 보라 . 이건 기뻐하는 것이다. 항상..
아무 것도 안남은 것 같은가? 실로 많은 것을 너는 가지고 있다..."시는 것 같지 않은가?
어찌 내가 그럴 수가 있는가요?
이리 물어도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솥처럼 느껴져서 아무 것도 쓸모없는 것 같은가?
그 날에 대단한 자들이 모여 들을 때 넌 그들이 먹을 고기를 삶을 솥이 될 것이다. "라신다.
이처럼 그 분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나의 모든 쓰임을 다 아신다.
" 네가 흙도자기라서 더럽게 느껴지는가?
그 도자기 위에 담긴 성령 때문에 너는 보배 그릇이라 불릴 것이다. "라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여도
성령은 나의 깊은 곳을 다 아시고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깊은 탄식으로 대신 빌어주신다고 하신다.
아무리 보아도
거무 죽죽하게 보이는 솥 같고
아무리 들어도
시끄러운 딸랑거리는 내 소리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강아지 밥 주는 데 밖에 쓸데 없는 주발처럼 느껴져도
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성물이다.
반드시 주님 안에서 씌일 것이다.
문제는 그걸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데 딸려 있다.
내가 항상 원하는 것이 성전에 들어오는 멋진 자켓의 대 제사장 급의 위치라면
언제나 난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에서
주발이라도
말방울이라도
솥이라도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냥 받아 들이면 된다.
그게 가장 귀중한 성물로 쓰일 시발점이 된다.
받아들이자.
내가 솥이라도 좋다.
내가 주발이라도 좋다.
내가 말 방울이라도 좋다.
내 주위에 온 우주가 곧 무너진대도 좋다.
주님이 쓰신다고 만 하면 그냥 복종하고 받아드리리라.
와라
두렵지 않다.
기도
주님.
말방울이 소리 내는 것을
이제까지는 탁하고 천한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주발은 이제 더 이상 밥상에서 존재하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솥은 구 시대의 산물이라서 나오면 안되는 줄 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삼
내가 그 말 방울이 왜 그리 창피하게 느껴졌고
주발이 촌스럽게 보였었고
솥은 불편함의 상징으로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모습이 스스로 그려 느껴져서 인줄 알았습니다.
주님 .
그러나
우리 주께서 성물과 성결로 말씀하신 이후에
말 방울은 유머와 애뜻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솥은 그리움을 함유한 따스함의 느낌이고
주발은 맛있는 사랑의 밥을 담고 있는 그러한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듯 합니다.
주여
이런 내 속의 변함을 기뻐합니다.
주여
주님이 허락하시니
어줍지 않던 자존심과
괜한 ideal self 에 대한 그림을 낮추려 합니다.
이제 좀 낮출 수 있을 듯도 싶습니다.
그냥
제사장의 멋진 옷을 입지 않아도
남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솥이라도
난 날 인정하길 원합니다.
아니
주여
당신이 그리 날 쓰시겠다니
당신 하나님께 절 맡기기를 원합니다.
쓰시옵소서.
헛된 욕망 내려놓기 힘이 드오니
주님 날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적용
1. 창피한 일 생기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감사합니다.
2. 아버지 병원 면회 가려한다.
기도하면서 간다.
3. 눈을 내리 깔고 겸손하길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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