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主하인이 酒하인이 되면( 삿 10:1-18 )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Judges )
1.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 삼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 이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하더라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여러번 읽었으면서도
처음 보는 듯한 이름들.
사사 들.
돌라.
야일
아비멜렉의 죄가 대단했어도
주님은
더 이상의 고통은 허락지 않으시고
그냥
사사가 이끌어 가는 시대를
45년 간 허락하신다.
이것은
나의 현상을 비추어 이해가 간다.
죄악이 많아서
도저히 하나님이 날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상태에서도
정말 무거운 맘으로 기도하여도
그 분은
놀라운 은혜로
내 눈과 코에서
다량의 수분의 방출을 동반시키시는 ^^;;;
은혜를 허락하신다.
항상은 아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이 알아서 허락하신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난 내 굴곡과 상관없이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은
어이없는 우리의 육신의 부모들과는 달리
끝없이 사랑으로
감싸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온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에
내 내적인 평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내 속에서 머물어
평생을 날 지배해오던 기본 성정이었던 '불안감'과 '두려움' , 거기에 따른
강팍함이
멀리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이
바로
오늘
둘로와 야일로 대표되는
주권적 '성령 임재'의 현상이 아닌가 싶다.
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8.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 평화가 계속되자 또 우상을 섬긴다.
그러자,
주님은 18년간을 학대에 방치하신다.
9.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그러니
곤고가 심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회개를 하기는 한다.
회개를 안하면 정말 버린자 된다.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우상을 섬기는 죄가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극악 무도한 죄이면서도
회개를 하자
주님이 대답하신다.
비록 구원하지는 않겠다 하시지만...
응답이 있는 기도는
회개에서 나온다.
응답이 없음이 무섭다.
혼도 내지 않고
방치 됨은 더 무섭다.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냉정하시기도 하다.
그래도
응답을 받으니 다행이다.
희망이 있다.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철저하게 매달린다.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너무 달콤한 축복은
더 긴장하고 살아야 할 상황이다.
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NIV :And he could bear Israel's misery no longer. )
회개만 해서는 안된다.
이방신을 제하는
이전의 타성을 온전히 벗어버리는
절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호와를 철저히 섬기는
기도자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곤고'를
주님께 눈물로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시면
사랑의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고
돌이키시지도 않을 죄인
우상을 섬기는 죄에서도
자신의 자식을 안타까이 여겨 근심하신다.
NIV에서는
"And he could bear Israel's misery no longer.
더 이상 이스라엘의 곤고를 참을 수 없다"고 나온다.
그 분은 그러하신 분이시다.
끝없는 사랑이시다.
어제 그제
토요일.
오래된 내 친구들을 만나러
인사동에 갔다.
갑작스레이
금요일 저녁 퇴근 길에
걷고 싶어
강변을 거쳐 가던
어둠 속의 한가함에
메시지를 보내니
오분도 안되어 급박스러이
인사동에서 5시에 만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그러하마'라고 했다.
나가보니
이벤트성으로 데리고 간
갤러리에서
대학교 때 그리도 열심히 몰려다니던
나의 오촌 조카 - 여자, 동갑..-가
초대전을 벌이고 있었다.
놀랐다.
반가왔다.
잠시 후
삼청동으로 자리를 옮겨
한옥집에서
그럴 듯한 한식과 더불어
'S S 춘'이란 술 두병을 마셨다.
이야기는 오래 이어졌다.
기분이 너무 좋다.
50이 다되어가는 길목에서
나름대로
한 분야에서 절정을 이룬 친구들
- 조카는 유명한 작가,
친구는 상당한 그룹의 사장 -과
나름대로 안정되어 가는 심성을 이룬
'主하인'이
그날 만큼은 '酒하인'이 되어 버렸다.
대화의 내용은
옛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성공의 뒷이야기.........
한옥의 깊숙한 분위기는
술을 극도로 마시지 못하는
나를
취하지도 않게 했다.
술.
죄는 아니다.
그러나,
성령의 몸에
주령이 들어가면
그거,
좋지 않은 결과를 유도할 수 있음을
몇년 만에 다시 체험한다.
일요일
열심히 교회에 나가
다름없는 신앙생활을 유지하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아침부터 짜증이 올라온다.
쉴사이 없이 손가락질이 내 속에서 올라온다.
옛 성질이
스물거리려 한다.
안정이 없다.
다 똑같은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이 좋은 분위기의 술이
가끔은
주님과 날로 더해가는 친교에
평화가 늘어가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둘로와
야일의 성령시대가
날 이끌어 가는 사이
난,
정욕의 우상에
다시금
날 놓아 버릴 위험에 있음을 직감했다.
오늘 아침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제
목사님과 나눈 영적 교류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듯하다.
오히려...
주님은
나에게 오늘 메시지를 통하여
회개 하시길 바라시는 듯하다.
저녁에 '기도원에 가서 잘것이다. '
오랫만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난 나를
주님 앞에 서게하는
약간의 내 나름의
주님께 바치는 최소한의 의식이 있다.
'기도원에 가서 자고 새벽에 내려오는'..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18년의 고생 끝에
자신의 우상을 버리고
주님 앞에 기도를 하며
처절히 울고 불고 회개하는 ..
그래서
주님으로 하여
안 일어나실 수 없는 기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난,
이 어리석은
중독성향의 주하인은
미리미리
더 고생하기 전에
주님 앞에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그 회개의 몸사위를 해야할 모양이다.
기도
감사하신 주님
늘
정말 정확히
말씀을 통하여
지적하시는 것이
다정하시고
세심하신 아버지 같습니다.
주여
당신의
그 지도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에 맞출수 있길 원합니다.
다시금
야일과 둘로의 그 평화의 시대로
절 이끄소서.
이 혼란의 감정에서 벗어나길 소원합니다.
주여
제 속에서 벗어나
다시금
우리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 평강의 세계에
머물 회개의 은혜에
절 이끄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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