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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 & Passion of Christ(요13:31-3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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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 & Passion of Christ(요13:31-38)

주하인 2006. 2. 17. 10:31

 

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유다가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대 역사의 거대한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전자오락실에서 코인 넣으니, PC방에서 카드번호 입력하고 나서 컴퓨터 프로그램 작동하기 시작한 것처럼 '저가 나간 후'  프로그램 '십자가' 가 드디어 종국을 향해 치달리기 시작한다.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과 '하나님'은 아시고 계시었다.

그 분들이 작동을 시작하시는 분들이니...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거대한 프로그램인게 문제이지만.

피씨는 작동만 하지만.. 그 분은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와서 작동을 하니 ...

 

 거기에다 창작된 프로그램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모두 느껴야 하는 십자가 고통이니..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서스펜스, 스릴러, 사랑의 로망스와 대 희생의 눈물을 삼키며 보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기적의 프로그램이다. ㅎㅎ

 

 

 그런데... !!

 

 Passion of Christ에서 보았듯이 십자가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전단계가 더 힘들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손가락 질도 엄청나게 무서웠다.

 문제는 주님은 이 모든 걸 다 아시는 '신'이시자 '인간'이라는 데 딜레마가 있다.

 

 오직 썩어죽을 이 주하인 같은 자들은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지만 그 고통을 알며 초조해하는 심성 만큼은 인간들과 전혀 다름 없는 '인자'이신 예수님의 특질에 있다.

죽을 것 같은 초조함과 두려움은 겟세마네 피땀을 흘리신 것 보아도 그 심정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인생 33년(아니.. 신이신 그 분 예수님의 태아생활 10개월 포함해야 한다..)을 짓누르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어찌 견디셨는가?

 

 이 Stress충만한 고통을 우리 주님은 어찌 견디셨는가?

단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죄인들 처럼 십자가에 끌려 당일 고생만 하시다 죽으셨으면 감동이 덜하겠지만...

 

 그 분은 모든 생각 뿐 아니다.

전 인격적 행동의 모든 분야에서 처절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에 집중되어 있고 그 하나님의 뜻에 전혀 한톨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

계속 되풀이 되고 아래에 또 나오지만.. '사랑'

그 허접하고 쓰레기같은 엉터리 인간들을 위해..................

 

 

그래서, 더 유다의 나감과 동시에 '영광'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가슴 찌르르하게  죄송함과 감사함으로 가슴 깊이 다가온다.

 

 할렐루야 !

행운아 주하인

죄송한 주하인

감사한 주하인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오늘 주님이 '사랑하라'라고 강력히 권면하신다.

그래야 주님의 제자란다.

물론 제자라면 '일반 ' 기독교인들의 단순한 '구원'을 넘어서는 높은 상급을 원하는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제자화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  이것만 보아도 우리 주님께서 천국에서 대접을 달리하실 것이란 추론을 쉽게 할 수가 있다.

    과연 구원만 받고 만족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영원의 행복을 마다하고 이땅에서 단순히 구원 받은 것만 만족하면서 주님의 명령과 영광 ,

    사랑, 성화라는 단어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아주 잠시의 이 땅의 것만을 즐기다가 천국에서

     '그 때 잘했더라면..'하며 후회할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자 조차 어떻게 사랑을 하라는 것일까?

사랑하는 감정이 들어야 사랑을 할 수 있을 듯 싶은 데 평생을 해왔지만 감정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가있던가?

심지어는 자식 조차 맘에 안들 때는 사랑의 교훈을 유지하기 힘든 때 하물며...

 

그러나..

주님이 명령하신다.

사랑하라고..

 

 분명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본원에서 조회가 있음을 깜박하고 큐티 장소에 갔더니 깜박한 아주 소수 - 2명 더-

만 참여 하였다.

 

 그 분중 한분이 재 작년에 23년 모시던 시어머니 소천하신 분이셨다.

 

그중 13년 간은 서로 견원 지간 이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낮추면 될것을..'이란 생각이 퍼뜩들어 행동을 변화시켰단다.

 어머니 우선..

 그러자 마음이 평화로워 지고 나중 10년은 거의 어머니와 딸같이 보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다.

 

 

 사랑은 의지다.

생각의 변화로 가능한 감정의 상태이다.

 

 그러나 사랑을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은 변화시킬 수가 없다 .

절대로 !

 그렇다면  나를 낮추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낮추는 것도 내 의지로는 정말 힘들다.

 

주님의 모본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 때문에 사랑한다는 인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안되는 나머지 부분은 주님께 맡기면 된다.

 

그리하여

행동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감정이 변한다.

 

우리 안에 사랑이 들어오면

늘 원망하고 비평하던 어둠은 사라지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별일 아닌데도 기뻐하게 된다.

 

남을 사랑함으로써

내 영혼이 밝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가슴 속에는

천국의 기틀이 자리잡게 된다.

 

할렐루야.

 

주님이 그리도 강조하시는 사랑과 주님의 영광이 실체를 다시한번 드러내는 순간이다.

 

 

 

 

적용

 

최선을 다해 손님을 위해 나를 낮춘다.

화를 내지 않는다.

 

유다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심정을 묵상한다.

 

주님께 감사한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리석고 부족한 저를 위해

이제 거대한 프로그램이 마침내 힘차게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다

어쩌면 제 모습일지도 모를 어리석은 그 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무소부지와

끝없는 사랑과

한없는 참으심과

표시도 내색도 하지 않고 품고 다니시는 그 자비로움과 긍휼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아침 저에게

주님의 영광과 사랑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저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들 이었습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일상에서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의지와 지혜를 허락하소서.

 

동행하시는 성령님

도우시길

예수님의 이름들어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영광의 빛을 굴절시키는 프리즘이 되도록 지어졌다.

- 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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