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90세 남과 87세녀의 열렬한 순애보 본문

주변 얘기

90세 남과 87세녀의 열렬한 순애보

주하인 2006. 10. 28. 20:39

 

 

( 저도 두분 들처럼 그렇게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

 

 

이 글은 2006년 10월 말에 적었던 글입니다.  

전 안양에 위치한 ‘안양 샘병원 ’의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매스컴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시피 샘병원은 많은 의료인 들이 기독교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선교’를 지향하는 병원입니다.     그런 병원에서 근무하는 저는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쉬운 조건을 충분히 부여 받고 있었던 셈이지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는 ‘전인치유’라는 샘 병원 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여건 상 시간도 바뀌고 인도자가 바뀌게 되어 손을 놓고는 있지만 이 글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전인치유’ 프로 그램의 찬양리더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이런 병원 홍보성 멘트를 하게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글을 시작하려 하는 시점이 바로 ‘전인치유’ 집회이기 때문입니다.

전인치유는 온전할 ‘전’, 사람 ‘인’, 치유한다는 ‘치유’의 뜻으로 사람은 ‘영혼’과 ‘육신’의 존재로서

한 분야 , 특별히 육체 혹은 심리적인 접근에 의한 치유의 접근인 서양의학적 접근으로는 한계를 느끼던 차 심적, 영적, 육체적인 전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대체의학 및 각종 최첨단 의학의 접목과 함께

‘영적’인 분야인 ‘기도’와 ‘찬양’ 등을 치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전인치유집회는 매주 목요일 오후 여섯시 경부터 병원 지하 샘누리 홀에서 저를 포함한 병원에 찬양에 뜻이있던 몇몇 간호사와 직원들이 20여분 찬양을 인도하고 나면,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시기도 하신 목사님의 인도하에 예배나 다양한 외부 초빙 강사나 프로그램 들을 접목하여 환우들과 함께 영적 나눔을 가진 후 직원과 봉사자들을 필두로 환우들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같이 기도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때 전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분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그분의 남편 되시는 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두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전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전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 분은 여성이십니다.

연세가 자그마치 87세 되셨습니다.

제 근무하는 안양 샘병원 의료원장님 모친이신 김집사님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몇가지 기억이 저 한테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전인치유’ 집회에서 였습니다.

올 초에 전인치유가 시행되고 나서 몇 회째 안되었을 때입니다.

환우 분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손을 잡고 , 어떤 분은 등을 껴안고 기도를 해준 후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축도와 함께 집회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휠체어를 타시고 , 어느 말기 암 환우 분은 침대째로 누워 참여 하셨다가 나가시고 어느 분은 목발로 , 또 다른 분은 보호자 분과 .. 그렇게 한분 한분 거의 모두 다 각자 병실로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 다 가시고난 그 후에도 어느 노인 분 한 분이 의자 구석에 앉으셔서

애절히 ...  정말 노인 분들의 그 힘없는 태도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깊이 기도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분 옆으로 다가 갔습니다.

그 분과 함께 기도하여 드리려 등을 끼어 안고 한손으로는 그 분의 손에 얹고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원장님 모친이셨음을 알았습니다.

그 분께서는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고 계셔서 전 그냥 잠시 그 분 기도가 상달되기를 기도하고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제 속에 드는 생각이 이랬습니다.

’연세도 많이 드신 분이시고  부군되시는 집사님께서 8년 가까이 말씀도 못하시고 병상에 누워 계시는 90 노인이시지 않는가

특별히 전인치유 집회에서 비실 무슨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천수를 다하시는 것이시고  더구나 자손들이 저리도 번성하신데

더 이상 어떠한 간절함이 있으신가? ’

실제로 그 분의 따님이 의료원장님이신 황원장님이시고

손주 분들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일류 의과대학과 경영대학을 각각 졸업한 ,

그야말로 엘리트 중 엘리트 집안들 아니던가?

그러기에 저 분의 저러한 절박함에 대하여 실은 속으로 약간 의구심을 가지고 일어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분과의 짧은 만남은 그것으로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얼마 후  김 집사님이신 그 분께서 급성 신부전으로 의식을 소실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실에 한번 뵈러 올라갔습니다. 

병실은 남편 집사님이 입원하고 계신 그 방입니다.

김집사님은 연세가 많으시고 급성신부전이시라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을 듯 싶어 보였습니다.

문병을 올라간 거기서 저는 가슴이 뭉클한 말씀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8년간을 거동을 못하시며 식물인간처럼 누워 계신 남편 집사님께서 음식을 거부하신다고요.

 아마도 같이 돌아가시려는 의지 같아 보였습니다.

(실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가슴이 뜨겁습니다.     부부가 저리도 사랑할 수 있구나.....)

 

그러시다가 김 집사님께서 얼마 만에 의식이 되돌아 오셨습니다.

전 김집사님의 용태에 대하여 잊어 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두분 입원실 맞은 편에 입원하신

저의 이모님 문병올라갔다가 나오면서 열려진 그 병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병실을 나와 문을 닫고 돌아서서 나오려는 나와 맞은 편 병실의 열려진 문을 통해 눈을 뜨고 또렷이 날  쳐다 보고 계시는 김집사님을 뵈었습니다.

 거기에 마침 몇 분이 문병을 오셔서 찬양을 하고 계셨었습니다.

그 중 전도사님이 아는 분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김집사님께  ’어머님 저도 같이 해드려도 되어요? ” 하니 많이 반가와 하셨습니다.

은혜 가운데 찬양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바삐 진료 때문에 내려 가려는 절 붙잡고는 김집사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딸 황XX  잘 부탁해요.”

황 의료원장님의 실명을 거론하시며 실제 저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나의 윗분이시고 이 병원의 설립자이시며 , 연세도 자그마치 나보다 20여세 가까이 많으신데

그 분을 보고 어머니이신 김집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옛말처럼 구순 가까이 먹은 노인께서 칠순 가까이 드신 따님이 아직 아이로 보이시는 이유도 있을 게고

거기에 난 흰 까운을 입고 올라온 전인치유 기도 파트너에 ,

더구나 당일 찬양을 같이 불러드린 전도사님 일행의 영적 권위자로 느껴지신 이유가 없지 않아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당신께서 곧 떠나실 것을 예감하셨기에 이치에는 맞지 않는 부탁이시지만 저리 말씀하신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손사레를 치며 얼른 사양했습니다.

’아니.. 어머니.. 제가 부탁을 드려야지요.’

김집사님은 아셨다는 듯 씩 웃으셨습니다.

그 분의 웃음이 해맑다는 생각을 하면서 얼른 되돌아 나와 진료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또 그 모습을 뵈면서 뒤돌아 나온 후 바빠서 잊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부친께서는 그 때부터 식사를 시작하셨다구 하구요.

 

며칠 후 8월 말 모친께서 소천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전 ‘부친께서도 곧 가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곧 들었습니다 .

틀림없이 곡기(穀氣)를 끊으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 후 한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지난 목요일이 되어서야 소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황원장님을 뵙고야 자초지종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L-tube( 외과에 입원하면 코에 끼우는 주황색 줄...)

TPN ( 식사를 전혀 못하셔서 정맥을 통해 온전히 식사를 대신 공급하는 것.) 

cardiac resucitation( 심폐 소생술) ...

식사를 안하시려던 그 분에게 현대의학의 횡포(?)가 행해졌던것입니다.

의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해야 할 의학적 시술이 아마도 두 분의 투병과정을 지켜본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횡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던 두 분은 오랜 투병과 장기간의 축복 받은 이땅의 삶을 마치고 정말 비슷한 시기에 소천하셨습니다.

일순, 부부가 저렇게 비슷한 시기에 가실 수 있는 것도 참으로 행복이겠다는 부러움 마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 부러움은 감동으로 변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돌아가신 시점이 비슷합니다.

우연히라고 보시기엔 너무 간절한 바램의 결과인 듯 싶어서 더 그렇습니다.

김집사님의 부군이신 황집사님의 사인(死因)이 ’장폐색’입니다.

장폐색이라면 장이 막혀 뚫어지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의학적으로 장이 막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수술 등으로 통증이 심해 장이 마비 되는 경우나 염증이 심한 경우 혹은  수술 회복 기간 중 유착으로 인하여 서로 달라 붙어 꼬이는 경우, 궤양등으로 인하여 터진 경우 등등 많은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김집사님께서 소천 하신 후  부군 황집사님께서 입을 닫아 식사를 안하시려 하니 의사들은  L-tube을 통해 음식물을 보충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렇게 되면 안드시려 해도 안드실 수 없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장’이 막혀 더 이상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자, 혈관을 통해 주사로 영양을 공급하는 TPN 요법까지 시행 하였지만 90세의 노구에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상황을 이야기를 듣고 난 그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을 따라가려 하신 바램을 주님께서 들어 주셔서 장까지 막아주신게 아닌가 ?..... ‘

물론 과학을 하는 의료인으로서는 어이없는 생각 일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이 어이없는 생각을 뒷받침하게 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황집사님께서 출석하셨던 교회 사모님께서 꿈을 꾸셨답니다

그 분에 따르면 돌아가시던 날 밤 꿈에 황집사님과 부인이시던 김집사님이 꽃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같이 앉아계시는 게 보이셨다 합니다.

또 8년간 간병 도우미하시던 여사님 꿈에 돌아가신 김집사께서 신발을 찾으러 오셔서 , 황집사님 역시 그날 소천 하실 것을 미리 예측 하시게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개인적 느낌 탓입니다.

미리 썼지만 장이 막힐 병리적인 이유가 그리 크지 않고 , 그 시기가 묘하게도 부인의 소천시기와 일치하고 장폐색오시기 까지 의지적으로 음식을 거부하신 그 사랑을 이유로 들어 그렇습니다.

어쨌든 신비적이긴 하지만 영적인 세상은 당연히도 신비일 수 밖에 없고

또한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것이 보이지 않는 다고 진실을 외면하려는 바보 같은 일임을 알수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다른 감동은 모친께서 지난 8년간을 병상을 지키시면서 당신의 집에서는 단 한차례 밖에 안 주무셨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녀 분의 강권으로 그리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간병 도우미 여사님의 말씀에 의하여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집사님은 주무실 때도 황집사님의 손을 꼭 잡고야 주무셨다합니다.

그 때 난 소름끼치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분들 손을 잡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 까요?

어차피 그 노구에 청춘의 열렬함이 있을리야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교감’이 그 분들의 손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을까요?  

어떠한 열렬함이 그들의 그 늙어 쳐지고 나뭇등걸 같은 피부밑에 둔하게 작용하는 감각신경을 통해

흘러가고 있었을까요?

누워 지새고 있으실 그 밤의 수시간 동안 그 잡은 손을 통하여 비록 두분은 대화 한마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함께 했던 시절 동안의 그 사랑이 다시 확인되어가고  두 분들의 심장 박동이 아마도 하나하나 맞추어져 어느새 비슷한 속도로 뛰어감을 느끼게 되지는 않았을 까 생각됩니다.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

 

어제 빈소에서 들려주신 원장님의 말씀으로 난 ‘확~’하고 느낀게 있습니다.

 

 그 때 그 전인치유 집회의 날

지하 샘누리 홀에 내려오셔서 의자 한 구석에 앉으셔서 그 굽은 허리 더 굽히시고 그처럼 조용히

깊이 깊이 적은 소리, 알아듣지 못할 듯한 소리로 빌어주시던 그  간절함이 90세된 당신의 남편

황집사님의 회복에 대한 열렬한 간구이거나 같이 소천을 원하는 절절한 기도였다구요.

 전 그 때 전혀 짐작을 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썼지만 그 분들의 그 연세에 그 성공한 분들의 기도에

과연 ..

어떤 간절함이 묻어 있을수나 있을까?

아니... 

난 그 연세에 있을 사랑에 대하여는 전혀 가능성 조차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정말 창피했다.

난,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깨닫지도 못하고 있던 자였던 것이다.  

사랑은 꼭 육신의 젊은 정도에 비례하는 것도

자신의 필요성을 채워준 자에 대한 보답도

이룬 것이 많고 적음에 따라 커지고 적어지는 계산적인 것도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전 이글을 어제부터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집에 가서 아들과 집사람을 깊은 애정의 마음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두 분 모두 90과 87세로 열정이 남아 있기 어려운 세월을 지나오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그렇게도 감동적인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느꼈습니다.

”사랑은 열렬한 육체의 끌림이 아니구나..

나를 죽여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려는 노력이 있고

그 노력을 영혼 깊숙이 받아 들여 

자신도 모르게 그 노력을 주는 상대에 감동하고 같이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

그리하여 어느 샌가 두 사람이 두사람이지만

하나로 생각하고

하나로 영혼이 엮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구나...”

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전 최근에 많은 느낌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제 영혼에 하나하나 얹어서

영혼을 열어갑니다.

그 기회를 전 얻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소천하신 두분 노 부부께 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거친 영혼 탓에 그들 만한 사랑은 불가능 하지만

방향 제시를 분명히 해주신 것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히 느낀 것은

이러한 

소리나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열렬하며 근 백년을 지속하는 사랑이

인간의 노력으로만 가능하겠냐는 의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거기에는

또다른 도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강권적으로 영접하시고

주위에서 끝없는 기도와

변함없는 찬양과 문병으로 이루어진 선한 영향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삽니다.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눈에 세미한 바람처럼 스쳐 보이게 하시고

떨리는 갈대의 흔들림 처럼

제 영혼에 파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 감동을 전 글로 남겨야 했습니다.

 

저도 기도제목하나 더 추가해야 겠습니다.

제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소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먼길 치열하게 살다 소천하신 두 노부부께 경하의 기도를 올립니다.

 

 
  
------------------------------------------------------

 2006.10 말

 거의 비슷하게 돌아가신 저희 병원 설립자의 부모님의 순애보적 사랑 투병기 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하게 해주신 분들입니다.

 새삼 삼가 두분의 소천을 기립니다


 
 

”멀고 험한 이 세상길 ” 


------------------------------------------------------

 

얼마전 거의 비슷하게 돌아가신 저희 병원 설립자의 부모님의 순애보적 사랑 투병기 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하게 해주신 분들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주변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교사님 부부  (0) 2007.03.16
[스크랩] 28기-5주차  (0) 2006.11.27
제가 어제  (0) 2006.10.16
난 그곳 , 밀림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거를 보았다.  (0) 2006.10.09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  (0) 2006.06.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