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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형통할 때 잘하자(왕상9:10-28)

주하인 2006. 5. 4. 09:39

(열왕기상9:10-9:28) 

 

 솔로몬께서 최정상에 올랐다.

최소한 주님 앞에 바쳐 그의 충성을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전을 완공하고도 또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균열이 눈에 뜨인다.

 

. 눈에 들지 아니하여 

. 바로~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

.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 자손

노예 역군을 삼아

.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제

 

 

 완전하여 보이고 국세가 엄청나서 도저히 뚫고 들어갈 틈이 없는 철옹성 같아 보이는 솔로몬에게도 본문 중 다섯 군데의 틈이 엄연히 있다.

 특히 마지막 제사 부분에서

눈이 걸렸다 .

주님께 기뻐해서 드리는 제사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속죄제

속건제

 

등의 회개성 제사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 것이 어딘 지 모르게 허전하다.

 

제사 내용과 방법에 대하여 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정확히 모르겠으나 민수기에 보면 속죄제 드린 후 번제를 드리는 내용도 나오고 레위기나 히브리서 등을 참고 하여본 바 속죄 후에 깨끗하여진 다음 번제를 통하여 그 '성결해진 은총을 나누는 제사'가 번제라는 것을 보아 깨끗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속죄제'에 대한 언급이 없음은 오염이 될 확률이 높아질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도 해마다 세번씩 '번제'와 '감사제'는 꼭꼭 절기마다 드렸다.

 

이건 이런 의미인 것 같다.

 

너무 강성한 번영은 그 백성들 스스로 '자기들은 온전하다'는 무의식적인 교만함을 가지게 했을 것이며

너무 달콤한 열매를 오랫동안 맛보니 은총이나 은혜와 기쁨에는 너무도 익숙하고 더더더 다고다고 하지만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자기 반성을 하고 회개를 한다는 소리 자체는 듣기에 너무 고리타분하고 싫은 소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딘지 모르게 오늘날의 모습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적으로 볼 때

초대형 교회가 많이 생겨나고

세계 최대의 교인을 자랑하는 교회도 있고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 인구 밀도당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내며

교회 별로 엄청난 봉사와 구제를 시행하고

휘항찬란한 프로그램으로 행사를 벌이며

구석구석 봉사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많이들 하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허전한 구석.

 

기도는 하지만

가슴깊이

스스로의 하루의 행사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주님의 그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여 통곡하기 보다는

이 땅에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바램과

반드시 있을 축복에 대하여 더 빨리 주시지 않는데 대한

요구성 눈물 기도만 있을 뿐인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주하인 나름대로는

열심히

큐티하고

몇 세미나에 가서 찬양 봉사도 하고

열심히 전도도 하고

글 올려서 나름대로 열심히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실은

하루의 행사를 가만히 돌아다 보면

찬양 속에는 내 감각적 만족 추구가 더 많고

아침에 큐티는 실은

처절한 주님과의 대면이 아니고

오직 감정적 편안함 만을 위하고

전도에도

성경에서 복 준다니까 하고

묵상글 나눔에는

조회수에 더 관심을 두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던가?

 

엊저녁

읽은 어떤 글에서

사람의 욕구는 한이 없어서

겸손하려고 하는 사람 조차도

비교되는 다른 사람보다

더 겸손해 보이려는 욕심을 보인다고 하는 말이

나에대한

오늘 큐티와 남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완벽하게 보이는

솔로몬의 그 왕국도

곳곳에 틈이 보이는

최절정의 지금

 

그 틈새를

강한 자기 반성과

회개와

주님과의 일대일 면담을 통하여

고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주님께 간구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용기를 구하며

알 수 없는 결점은 지혜를 달라고 다시한번 구하여

 

찢어진 그 틈을

오직 주님의 도우심으로 메꿔

이 땅에서 오직 다함이 없는 평안을

저 생에서는 끝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묵상에서 허락하신

자기 반성을 통해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수 있기를 주님께 원합니다.

 

예수님 도우소서.

아멘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형통한 자가 된다. - 강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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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천 기업가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자칫 잘못하면 신앙을 사업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싶다.

기독교가 내세의 천국뿐만 아니라 이생의 물질적 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있다면, 그들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라고 가르쳤는가?

교회의 역사는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성경과 역사의 교훈은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 지식, 외모, 능력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만일 바울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그는 “나는 육신적인 것을 포기한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다.

무한히 아름다운 그분을 알고 교제하기 위해 내가 무엇이든 못 버리겠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배설물로 여겼던 것들을 움켜쥐는 것이 ‘성공’과 ‘출세’라고 생각한다.

정신 차리라.


 그러므로 영적 성공의 삶은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이다.

영적 성공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해 사업의 번창을 도모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당신 안에 혼자 계실 수 없다면 하나님은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지 않을 것이다.


- 「이것이 성공이다」/ A. 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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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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