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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가 아니다 자유다(전1:1-11 )

주하인 2009. 2. 5. 10:25

제 1 장 ( Chapter 1, Ecclesiastes )

 

 

나무는

얼마전 눈 꽃으로 뒤덮여있더만

이제 다시 누드의 몸으로 되었다.

조금 있으면 순초록의 눈으로

생명의 흔적을 발하다가

무성한 한여름의 잎사귀로 덮이겠지..

그러다가 또다시 내년 이맘 쯤에는 ..

세상은 변함이 없이 이리 이리 돌고 돌 것이다.

비록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은

앙상한 나무고

하늘에는 영원할 것 같은

비행기의 궤적이 보이지만

궤적은 사라지고

나무는 또 그 삶을 되풀이 할 것이다.

 

허무한 흔적에 눈돌리면

그 짧은 사라짐에

허무하고 말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무게감이 있는 중량급 인사의 말씀이네..ㅎ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허무하게 느껴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열심 보이는 모든 것들이 헛된 것은 사실이다.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사람들의 삶은 똑같이 유전된다.

 

하지만 땅은 그대로고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해도 그대로다.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도 그대로다.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강물도 그대로 흐른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난 다른 것 처럼

무엇인가 이루고 가려고 무진 애를 써도

그것은 다 이전에 이 땅에 살던 자들이 되풀이 하던 것들이다.

 결국은 죽음 앞에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치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름을 남기면 또 무엇할까?

무엇을 발명하고 편의를 도모하면 또 무엇할 까?

인생에 도움이 될 철학적 깨달음을 남기면 또 어쩔건가?

그래도 다.... 스러져갈 인생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무한히 되풀이 되는 자연과 시간의 흐름 앞에

속절없이 먼지로 변하고 말

개미보다 못한 존재에 다름이 없지 않은가?

 솔로몬의 영광도 수십년이다.

돈많고 부러울 것 없는 현대의 편안함과 화려함도

시간이 주고야 마는 육신의 신경의 둔해짐 아래에서는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하고 말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호화롭게

모든 육신의 것을 다 즐기고 가는 '솔로몬'의 발언이 저렇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

 

일견 보면, 그것은 허무주의 같다.

속상하게도 '지'-자기ㅎㅎ-는 젊을 때 즐길 것 다 즐기다가

물려 버리니까 저리 하는 주책없는 노인네 같다.

평생을 돈 많지 못해 상대적 결핍감에 시달리는 우리는 어쩌라구.ㅎㅎ

 

 아침에 일주일 중 목요일 아침의 큐티에

찬양을 인도하는 시간이어서

다른 때보다 부지런을 떨어서 나왔다.

 지하의 샘누리 홀에 내려가니 문이 굳게 잠겼다.

식당에서 만난 전도사님이

이제부터는 체재가 바뀌어서 올라가서 '에스텍' 경비에게

열쇠를 받아서 와야 한다 한다.

 '어.. 새벽 예배 끝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쩌구?

 난..

 아무런 칭찬하는 사람 없었지만 

 남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와 스크린 내리고 기타 꺼내어 조율하고

 컴퓨터에 엊저녁 늦게까지 만든 ppt 띄우고

 기도하고, 찬양을 몇 소절 연습하며 나름대로 불신자 직원을 위해

 희생을 하는데.........거기에 열쇠를 가지러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속이 상한다.

힘든 것은 좋다.

외로운 것도 좋다.

수년간 주님 만을 본다는 생각으로 참아 가고 있다.

하지만 냉랭해지는 한국 교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문까지 굳게 잠가 놓고 혼자 열고 들어가라니............

 시험에 들으려 한다.

누구도 나에게 강제한 바 없으니 나도 그만하면 된다.

괜히 시험에 들거 있는가?

 목회자 님들도 그런데 무감각하신데.......

생각이 돈다.

 그래서 그냥 올라왔다.

내 찬양 대신 목사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올라와서 기도를 하였다.

속이 흔들흔들한다.

'주님 일인데 , 정체도 뚜렷지 않은  괜한 속상함- 상처의 이유 - 일 수도 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 해아래 새 것도 없는데  나 만 옳고 남들은 틀리다'는 생각으로

더 기분 나빠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그렇다.

'내 것

 내 노력

 내 마음 같지 않음

 내 권리.................'

이 것들 때문에 어리석게도 인간들은

죽어갈 유한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또한

그러한 생각 조차 세상의 살아가다가 죽어가는 모든 사람이 붙들려 사는 생각인 것을

마치 혼자 만 깨달은 것 처럼

분노하고 열심을 내다가 실망하고............ 되풀이 하는 것이야 말로

허무한 것 아닌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 것'을 주장하며 사는 것.

믿음 마져 내 믿음이 최고인양,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양

그리 살며 나와 다른 자들을 손가락질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데도 괜한 중보를 하며

혼자 열심을 보이는 것........

그것도 헛된 쳇바퀴의 그것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헛된 것을 헛되이 보고 포기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감정일까

과연 성경 속에서 '헛된 허무주의'를 퍼뜨리고자 그리 말씀하시는 걸까?

 아니다.

진리가 있다.

그 진리를 매달리기 위해

그 진리를 옳게 보기 위해

헛된 매달림을 떨구고

헛된 판단을 내려 놓고

헛된 용기를 가라앉히고

헛된 분노를 정화하려 마음 먹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내 헛된 것은 무엇이던가?

내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이다.

내 정해진 원칙이 파기 된 것이다.

한마디로 내 통제에서 벗어난 것이 속상한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헛된 것 맞다.

 주님 앞에 모든 판단을 내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뒤틀리면 돌아보지 않는 옛 습성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고 하시지 않는가?

억지로 힘을 내어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조용히 내 속을 말씀드렸다.

그러니 ' 며칠 전 샘누리 홀의 컴퓨터가 도난 당했어요.. 그래서..  다음 부터는 제가 일찍 ...'

이해가 간다.

짐작은 했지만 여러 복잡한 생각의 꼬리에 밟혀서

나랑 다름없이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 수도 없이 많은

이땅 위를 살다가 가고  또 살고 있는 분들의 생각과 다름없는 생각의 꼬리에 밟혔었다.

 그래서 '아닙니다... 제가.. '했다.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

주님은 아주 적은 일까지도 미리 아시고 말씀으로 권고하신다.

그게 나의 말씀 묵상의 시간 동안 늘 그러셨던 인도 방식이시었다.

 

 나는 확신을 가진다.

내가 사는 인생.

내가 통제하는 인생은

일견 힘이 있어 보이고 화려해 보이고 속이 후련하지만

결국은 내 통제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식은 뜻대로 되지 않고

손에는 힘이 줄어 들어 수술장비를 오래 동안 부여 잡고 있다 보면

수술 끝나고 손이 달달 떨리는 힘없음이 찾아 오게 되고

내 열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내 바램과는 달리

주님의 열정이 조금 씩 식어져만 가는 것 같고

자주 관절이 우두둑 대고 편치 않아 지고

잇몸은 왜 이리 자주 들 뜨는 듯하고

입 안은 자주 허는 지....................

 

 이제 헛된 인생 부여 잡으려 노력 하지 말고

그 헛된 인생에 부여 해 주시는

주님의 어떠한 뜻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 분은 내려 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겸손을 받아 들여야 하고

내 고집은 내려 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추려 노력하고

내 소유는 내려 놓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자유를 받아 들여야 한다.

내 자식의 어떠함을 내려놓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들의 장래도 받아 들여야 한다.

...........

 

 그것 만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된 삶이

허허롭고 허허로우니 허허롭고 허허로운

자유와 빈듯한 충만함의 삶을 살게 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 자유와 빈 충만함 - 맞지 않는 '빈'과 '충만'의 역설이 공존하는 게 주님의 원리다.-에

계기 만 주어지면 놀라운 은혜와 기쁨이 차게 된다.

그것이 주님이 허락하시고 주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평강'의 기본 원리다.

 

 오늘의 주제는 '허무'가 아니다.

오늘의 주제는 "자유"다.

 

특별히 아들의 마지막 발표가 오늘이다.

속이 불편하다.

속이 상하려고도

아들이 불쌍하기도

기대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내려놓고 열심히 기도했다.

결과가 잘 나오기를 빈다.

그 결과 마져도 기대하지만 순종하겠다.

 

 

 

적용

1.  헛된 삶, 그리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내려 놓겠다.

 내려 놓음의 과정에서 소외의 감, 외로움의 감이 덮치려 한다.

 그것은 솔로몬의 헛된 듯한 발언이

 자유의 감탄이고 주님 하나님을 보고 있는 자의 여유임을 명심하자.

 

2. 아들.. 어떤 결과에도 순복하자.

 믿지만 실망은 안한다.

 

3.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기대한다.

 

4. 말씀 일곱장 읽겠다.

 

5.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다.

 부도 명예도 시간 앞에 스러진다.

 내 불행도 고난도 상처도 시간이 지나니 스러진다.

 이제는 자유로움이 더 많다.

 감사하다.

 감사한 하루를 산다.

 

 

 

기도

 

주님

놀라우신 주님.

오늘 솔로몬 님의 헛되다는 고백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헛된 삶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 임을 다시금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 ,

솔로몬도

그 영광의 맛을

최절정으로 본 그 분도

나이들어

다 똑같이 늙어가는 늙은 이의 입장으로 회한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압니다.

자유로움은 내려 놓음에 있음을요.

주님 안에서만 가능한 그 자유.

전 압니다.

주님 아직은 욕심이 절 그대로 두지는 않고

비교가 절 붙들려 손톱을 세우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절감하여이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그 단계까지 절 자유로이 만드소서.

절 성화시키소서

주님 안에서 진실로 놀라운 평강으로 살길 원합니다.

저로 인하여

제 주위가 그리되게 하소서.

절 도구로 쓰소서.

저의 목소리, 저의 달란트, 저의 가진 모든 것을 들어서라도

주님 그리하소서.

제가 자격이 있다면 말입니다.

주여.

 이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소서.

헛된 세상에서 헛된 욕심으로 다시 눈돌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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