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당연히도 마땅한 하나님 앞에서의 [행5:27-42] 본문
.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들'
세상 사람들의 (심지어는 종교의 이념으로 까지 무장된 ㅜ.ㅜ) 극치.
그들의 궁극적 목표가 나온다.
'자아'다.
'자신'들의 위력이다.
어떤 분들은 ''통제'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한 삶의 동기 중 하나라 하였다.
통제의 욕구가 너무 강해져(다양한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모두 다 '자아'다. 자기의 위신이 무너지고 자기의 권리가 깨어질까봐 두려워함... 이 자아의 궁극은 다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손쉬운 , 강력한 눈앞의 증거가 남들에 대한 통제 ..아닌가? 권력, 재물, 자식.. 어쩌면 그 깊은 내면에 자신의 성공, 통제의 성공을 확인함이 기본 아닐까?... ) 타인의 것은 결코 신경을 쓸 여력도 없게 된다.
아니.. 오히려 그를 통한 자신의 성공의 증거를 삼기 위하여
이들은 이렇게 까지 한게 아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그리고 그 소리가 퍼져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전전긍긍...ㅠ.ㅠ...
결국 이 땅,
이 물질계,
자아의 끝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세워놓은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야생.
동물의 왕국 *&^%...과 과연 뭐 다르던가?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런 우리 들에게
유일하게 '옳게 ' 살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 계시다.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무가치하고 어이없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고
유일한 삶의 가치를 밝혀 주신 분.
그 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당연히 마땅한 것 아니던가?
아..
너무나도 일찌기 '삶의 무가치', '허무'로
이 세상에 의욕을 상실해온 ^^;;; 내게
유일한 길로서
직접 찾아오시고
가르치시고
매일 말씀을 통해서 바로잡아 주시며
성령의 은혜로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금 깊~은 감동을 올려 드립니다 .
할렐루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그런데 어찌 '저들 제자'들이
저리 당당히 , 옳게 , 두려움 없이 , 흔들림 없는 소리를
한목소리로 낼 수 있었을까?
당연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선택 받았고(아... 값없이 선택하고 구원자녀 삼아주신 주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
그분 곁에서 모든 것을 가르침 받고 목도 하였으며
드디어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믿어지게'까지 하셨으니
어찌 아니 저리 될 수 있었을까?
나.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
분명코 '저분 사도들'.. 사도 행전의 저 시간대의
저분들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작은 강도의 '예수 구원' .. '성령 임재'의 인도하심이 있었을 지라도
확연히 난.. 알아진다.
더 이상 이 세상의 가치..
재물 욕, 지배욕, 통제욕... 그 어떤 유혹도(아.. 몇가지 아직 남아 있는 특질적 죄성은 있다. ㅠ.ㅠ... 가야할 길..어쩌면 그래서 아직 이땅에 거하게 하시는 지도 모를 내 부족한...ㅠ.ㅠ ) 이제 별 저항이 되지 못한다 .
그러나...
남은 가야할 길을
덜 흔들리고
더 힘있게
저분 들 처럼 강한 '당당함'이 되기 위하여
'성령충만'이 멈추지 않아야 되리라.
순종에 대한 결심이 더 커져야 한다.
내가 주인이 아닌
이 당연한 삶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백성으로서의 얻은 자격을
오직 성령님의 강력한 도우심을 힘입어
더욱 하루 열심히
주님 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그 결과로
매일의 하루 하루 속에서
'회개'함과
'죄사함 '받은 자로서의 어떠함이
점점 더 커져야 한다.
그 부담이 더 늘어야 한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아니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
'능욕받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자 되어야 한다.
주님.
어제 ㅇㅅ 밭에 내려 와 있습니다.
겨우 겨우 달래며 2/3정도를 갈고 나니 '미니 경작기'가
드디어 멈추어 버렸습니다.
나름 이리저리 꿰맞추어 가지고 있던 어넥스를 텐트 대신 세웠던 것이
지난 비바람에 이곳 저곳 뒤틀려 버렸습니다.
아..
할일이 태산 같은데...
괜히 욕심 부렸나.. 하며
저물어 가는 석양에 마음이 급해지며
이리 저리 뛰려던 흔들림을
그마져 허락하신 풍랑임을 깨달아
그냥 하나하나 정리하고는
좀 늦게 루프탑 텐트를 세우고는 들어와
'예배'를 참여 했습니다.
말씀에 많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름의 '여유'로 느즈막히 잠이 들고는
아침에 일어나 근처의 '농기계 수리 센터'에 가기 전
바삐 말씀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
그랬습니다.
이제 .. 정말 '통제욕'이니 '성공'을 다시 생각하기에
생물학적, 사회적으로도 제 손을 떠난 나이입니다.
그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제 '특질'에 맞는
비록 돌이키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인생과정이었지만
'저런 종교지도자'들의 통제욕과
그로 인한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상대적인 두려움을 보면서
이 세상을 내 마음대로 잘 살아나갔으면
얼마나 불행하고 큰일날 일이었던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비록 '제자 분'들의 위험과 불편함과는 비교할 바 못되는
편한 자리에서 '묵상'을 하지만
'그 분들의 당당함과 담대함'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첫사랑의 그 감격으로 구원 받은 존재로
인생의 모든 내내 '주님의 강력한 손길'을 체험하게 하셨으며
말씀으로 매일인도 하시며
나를 들여다 보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오류들..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그 강력한 제한들이
성령의 은혜와 감동으로 하나하나
말씀에 비추어 닦여 나가고 씻겨나가게 하시어 왔습니다
이제 '부활'의 일상에서 어떠함
오직 성령 충만으로 이해되고 믿어짐...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 말씀만을 순종할 결심'..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존재의 이유이고
그를 위하여 허락되어진 인생광야임을
단 한톨도 부인 못하게 되어 오고 있습니다 .
주여.
비록.. 이 장소에 지금 이렇게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틀리지 않는 하루가 되도록
더욱 조심하게 하소서.
주여.
주님 만 아시오는 '어제'의 또 그러함....
예수님 부활하심으로 허락되어진
새로운 영혼의 깨끗함으로 또 하루 새로 딛게 하소서.
그것이 성령으로 믿어지게 하소서.
그게 감사해지게 하소서.
그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법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 주 예수 시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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