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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정말 기뻐 하시는 것[행4:32-5: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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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정말 기뻐 하시는 것[행4:32-5:11]

주하인 2024. 5. 9. 06:42

부제) 주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것

      성령 은혜의 유혹

둘째 손녀 서야의 부여 잡은 손 ^^*

주여

처음 잡았던 주님의 손을

잊지 못하게 하소서

 

그 기쁨

그 놀라운 전율

그 폭죽터지듯 다가오던 행복감

일생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안전감

 

주여

그 주님 첫사랑의 기억

그 구원의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이 정말 기뻐하셔 허락하신

그 놀라운 비밀을

내 평생 

살아 있는 내내 놓치지 않도록 붙드소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기뻐하도록 하여주시고

주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게 만드소서

 

오직 주님

오직 성령님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

오직 온전한 구원

 

그 이외 다른 어떤 것도

버려지게 하시고

내려 놓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시여

 

 

(성령의 유혹 ^^* 주제로 써칭하다가 마주한 귀한 찬양, 너무 좋아서... )

 

 

[사도행전 4장]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 초창기 기독교의 태동시기에 부터 시작되었던

이러함.......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이루어졌던 

자발적 이루어짐.

 

'큰 은혜'

' 판것 모두 가져다가' 

' 사도들의 발앞에( 교회에, 교회 건축에, 종말을 피하기 위하여, 휴거를 기대하며, 이 하찮은 세상을 탈피하기 위하여................가 아니고 , 그냥 사도들의 발  앞에.. 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가? 그 마음의 하나됨.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발적, 공통적, 하나됨, 겸허함, 감사함, 은혜 앞의 전율, 그 이상의 가치가 없음을 '온~영혼'이 함께 느낀다는 사실 .. 은혜를 체험한 우리 모두 그러고 싶은 마음을 안다는 사실 , 진리.. !...말이다.) 두었다.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우리 모두 잘 아는 

바나바님.

그도 '똑같이'(똑같이..가 맞다.   그런데 왜 그만? 왜 그 이만 촛점이 될까? 한점 오류가 없는 진정한 감사의 전율, 누구보다 순전한 감사와 은혜의 크기.. 아닌가? )

'사도들의 발 앞'에 전 재산을 바쳤으나

그에게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칭호 , '바나바'라는 이름이 붙었다. 

 

 똑같은 성령의 은혜가 있더라도

감사, 기쁨과 헌신의 폭은

조금씩 다 달랐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인간의 특성,

사람마다의 특질,

그 안에 횡행하는 불완전한 인간세상,

그에 허락되어진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엵어지고 이어지는 '사람 사이의 스토리'의 다양함

허락되어진 인생 시나리오에 '애드립'으로 변화되어질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인생 광야 스토리.. 

 

 보고계신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시면서도 

지켜보고 계시는 허락하심의 일면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음이다.

 

 

[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 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 또하나의 일이 벌어진다 

 

 '아나니아 삽비라'

 

은혜 철철넘치는 이 때의 이 곳에

'순간 멸절'

아주 조그만 죄 일 수 있음에 너무 과도한 '징벌'......말이다. 

 

 이해가 되기 위하여는 

역시 '주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리 '우리네 인간의 도덕'에서 이해하려는

3차원적 의문에는 답이 없다 .

 

 당연히도 '성령을 속이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정말 싫어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또다시 드는 '제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시는  잔인.........ㅠ.ㅠ;; ..'이다.

 

 이런 의문은 더 나가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혹시.....*&^%$.......다.

 

 그런데 전제해야할 몇가지 상황을 

우리는 '너무 인간적 상황에서 헤아리려 '하는 것 아닌가?

 아주 아주 인간적 눈으로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넗히는 차원에서 

저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눌러 놓고 '에이 하나님이 하시는데 다 맞겠지... '하며

스쳐 지나려는 부분에 대하여

나름 이해 되기 위한 '논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생각케 해보시는 기회다. 

 

 우선, 

상황이 지금과 다르다 .

아니.. 달라도 확실하고 온전하여야 되는

좁은 길을 가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쿄훈이다. 

 

 아.

교훈.. 이 첫째는 아니지만

이유의 하나이기도 할게다. 

 

 각설하고

저시기는 '교회'의 태동의 시기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성육화 하셔서 '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승천하시며 '죄'를 다 가져가시고

'성령 보혜사'를 보내시어

이 땅에 '구원'의 길을 온전히 여신

새 세상의 시작에(교회가 예수님 안계신 이 땅에 얼마나 중요한가?  교회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연결시키기 위한 눈에 보이는 존재 아닌가?)

'사단'..

'성령의 은혜'와 반대되는 '물질의 유혹'을 심으려는

저 어리석은 '가룟 유다' 같은 오염을 제거함이시다. 

 유다나 저들 부부의 어리석음,

그냥 욕심이 나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왜.. 아닌가?

 그러나 상대적으로 '은혜'를 맛본 

영적 버퍼가 큰 자들이

어찌 세상에 머물까?

 

 이 불완전한 세상에 그나마 유일한 도피처, 요새인

교회를 위하여 방해가 되는 

사단의 궤계를 '과감히 '자름으로 일벌백계한 이유도 있음이다. 

 

 또 , 상대적으로 귀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어떠함임인지 

확연히 '세상에' .. '주하인'에게 보여주시고

흔들리려는 마음에 깨달음, 

은혜의 되살림을 허락하심이시다. 

 

 누구는 똑같이 '사도의 발앞에' 

온 재산을 다 바칠 만큼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의 아들' 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큼 

영혼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차이는 있지만

어떤 이는 '세상의 달콤함'에 미련을 둚이 

그 영혼에 남아 있음이다. 

 양다리는 

주님이 '질투'하실 만큼 싫어하신다는 데

'나'.. 

주하인이라는 나는 

혹여 '아나니아'와 같이 

한 걸음 .........그러지 않던가?

 

 다행이도 난.. '초창기 교회의 그분들' 만큼

완전한 순종과 헌신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것.. 

어쩌면 다행이 아닐 수 있을 만큼

은혜의 강도는 적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고

그러함은 

주님의 진정 기뻐하시는 자에게 허락되어진

그 놀랍고 온전한 '은혜'는

아직도 내게 부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함은

'세상의 그 어던 것'과 비교불가한 차원,

지금까지 내 예수님 첫사랑 구원 이후에 체험하여

여기까지 나를 살아오게 하시느

하나님의 '유혹'^^; .. 

하나님의 은혜의 달콤한 행복,

내 삶의 동기로 상상하기 힘든 차원의 기쁨이 

아직 내게도 남아 있음이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더 뚜렷하지 않은가?

 '내 재산을 다 팔아라' ... 라거나

'재산을 다 팔아도 될만큼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라'는 

세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것........

그 기뻐하심을 같이 누리기 위하여 

내게도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

은혜를 더욱 사모하여

성령 충만함이 깊어지며

정말 주님이 싫어하시는 '죄'에는 

근접할 단 한톨의 유혹도 느끼지 못하는 거.........아니겠는가?

 

..

 

주님.

알람이 울렸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바나바님... 

그리고 그들의 위로 ,

11제자 분들이 경험하셨던

'은혜'의 크기와 강도의 놀라움,

한마디로 '행복의 전율'.......의 은혜를 알것도 같아

제 마음이 마구 달리려 하는데

출근하라 하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비되는 두 부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의 예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바나바'님의 예와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은혜를 경험했지만 죄의 유혹도 포기 못하는 아나니아 등'을 묵상하며

진정 주께서 기뻐하시는 자 , 

주님의 은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세상에 살아가는 온통의 이유가 

하나님으로 만.......되는 자 되길 원합니다. 

 

주여.

모든 것 바쳐서 

선교와 순교의 자리로 가는 것.. 

제게는 어려운 일인 듯하지만

은혜의 크기가 커지는

제 안의 오류가 훨씬 덜하게 되어 

주님의 말씀하심이 

제게 그대로 다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는 그 때는

저도 그리 완전한 '위로의 아들'의 자리에 갈 수도 있지 않겠나이까?

 

주여.

두려워도

부러워하지도

못함을 좌절하지도 못하게 하시며

그냥... 

저 분 들, 바나바님들보다 부족한 저의 이러함 조차

주께서 허락하신 '풍랑'의 일종임을 이해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놓치지 않고 

죄를 멀리 하는 결심을 하며

하루를 보내길 원하나이다. 

 

바라옵기는 

저분들의 은혜의 체험을 

더 깊이 오늘도 누렸으면 합니다. 

감사하오며 

거룩하고 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추가 의문

 

# 1.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굳이 '죽음'을 자초할 미련을 벌였을까?

즉, 욕심나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왜 굳이.. 다. 

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으며

죽음은 죽음대로 비참하게 경험하였을까?

그들이 정말 '미련한 자'.. '악한 자'들 이었을까?

 

 

 '은혜'의 맛을 본 자들이다 .

은혜의 맛^^; 이 얼마나 강렬한가  .. 하는 반증이다. 

많은 '주하인'들의 '좁은 길'을 선택하게 하는.... 

 

표현이 그러하기는 하지만

'성령의 은혜의 유혹^^;'은

세상의 그 어떠한 대체재(마약 , ㅅs, 성공, 자녀의 영달, ... .&^%$#..) 보다 더 하다 .

그 안전감과 행복함은 지속적이고 점점 커진다. 

 

세상의 것들은 일시적이고 더더더.. 다고다고.. 한다. 

허탈함이 훨씬 더 크게 뒤따르고 추악하다 .

 

 그러하기에 그들은

그러한 기쁨을 체험한 자들임을

우리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런거다 .

 

하나님의 기쁨이 얼마나 크고 

하나님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역으로 

저들처럼 세상의 욕심도 많고 걱정과 근심으로 계산을 하는 자들도

'공동체'로 들어가기로 결심할 만큼

'진실'이고 '사실'임을 알 수 있는 반증이다. 

 

그렇다. 

모든 '좁은 길'을 가는 자들에게 허락되어진

뚜렷한 길

은혜의 길

살아계신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 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흔들리지 말자 .

의혹할 일 없다

흔들릴 일 없다 .^^*

주하인아... 

 

#2.

 아나니아 들이 같은 기쁨으로 참여했다가

세상적인 시선으로 보면 '작은 죄(죽을 죄가 아닐 것임에도... )'에 죽어나가는데

같은 동료들은 아무 반응없는 '로봇'처럼 

시체를 치웠다. 

 삽비라 역시.. 

 

 가끔 보는 '이단들의 종교적 횡포'와 유사한 느낌으로 보인다. 

마치 '광신도'들의 그것 같이 

온통 세상의 원리들을 다 '해악시 '하며

자신들만 옳기에 '죄책감' 들이 마비된듯한...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어떠한 도도한 흐름을 

난.. 안다. 

우리 '원리'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흐르는 자들,

깊은 체험하는 자들은 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이 옳으심'..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의 

마땅히 어떠할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생각과 마음의 혼돈 마져

'밤바다의 풍랑' 처럼 허락하셨음을... 

 

 이 부분.

내가 이해하여서 '주님은 그래도 옳아'하고 

그냥 갈무리 하는 

그러한   것이 아닌

그냥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 판단하실 것임을 믿고

자연스레이 '은혜'안에서 흘려 보내는 것.................

그러한 개념이 아닐까?

 

  내가 옳고 그르다 판단하기엔 

너무 크신 분의 뜻이시기에

잠시 그 분의 '말씀을 근거로한 은혜의 흐름' 안에서

잠시 보류해두는 

정말 귀중한 부분.. 말이다 .

 

너무 다 이해의 범주에 넣어버리고 

불가지의 영역을 배제해버리는 거..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자리에 앉아 버린.. 

그 오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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