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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시라면 (마 27:27-4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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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시라면 (마 27:27-44 )

주하인 2010. 4. 1. 09:42

제 27 장 ( Chapter 27, Matthew )

 

세상이 온통 어두워도

주님 만

제 곁에 계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하나

날 이해하는 자 없다해도

주님 십자가 

그 놀라운 사랑과

그 처절한 순종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견딜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주여

부디

그 모든 것

저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는 줄 아오니

성령의 강력한 인도하심 기대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 하루도

강력히 잡아 주소서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 씌우고

희롱하고

다시 홍포를 벗기고

옷입혀 끌고가고
  
  
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십자가에 못박은 후

옷마져 자기들끼리 제비 뽑아 나누고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4.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십자가

그 극한의 고통 중에 계시는 주님께

지나가는 자들도 모욕하고

대제사장 일행도 희롱한다.
 뿐만이던가?

그럴 자격없는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 조차

주님을 모욕한다.

 

 

 세상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다.

기적을 엄청나게 베푸시고

지혜로운 설교가 눈이 부시게 펼쳐지고

뿌리시는 神的인 위엄, 카리스마가 엄청나시던 분이

갑자기 잡혀

아무 저항하나 못하시고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모욕, 수난, 고통, 비방.....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수난을 겪으신다.

그러시면서

그 분이 보이시는 반응은

'무저항'이시다.

아니, 그를 넘어서는

온전히 맡겨 버리신 듯,

힘을 빼고 끌려다니는 느낌이시다.

 '양'

양의 도살 장 모습은 보지는 못했지만

수없이 들은 양의 특성을 감안해보거나

아.. TV등에서 실크로드나 몽골 등에서

양을 살육할 때 나타나는 특성에 의하면

아예 저항하지 않고

맡겨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 그런 모습처럼 느껴진다.

   

 안에서 수모 당하시고

끌려 나오시며

구레네 사람 시몬과 십자가를 나눠 지실 때 그러셨을 것이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에도 그러하셨고

매달리셔서 피가 빠져나가고

열사의 햇빛아래 체액이 말라가실 때도 그러셨고

그 시간에 지나가던 사람들에 의해서도

심지어는 같이 매달렸던 죄수들에게서도

수모와 멸시의 공격을 받으셨다.

 

 쉽게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과연 범인으로서 견딜수 있는 것들인가..

하지만 그런 극한의 고통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도

그 분은 '순한 양'같은

모든 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맡기는

극도의 무저항의 이유는 어디에 있으셨을까?

 나라면,

가능치 않은 이야기이겠지만

설령, 단 한마디 말로서 저항을 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또는 그 과정을 넘어서는

초 절정의 인내로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댔대도.. )

얼굴이나 눈빛으로 '원한'이나 '살기'를 쏘아내지는

다행이도 안했어도

내 속에 흐르는 다양한 생각 들은

어찌 자제 했을 것인가?

 아니,

다행이도 '멍'했더라도

잦아드는 '자괴감'은 어찌 감당했을 것인가?

불가능한 상상이 틀림없다.

만일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악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했더라면

'순한 양'의 그 철저한 무저항은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근육의 긴장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반항'이 짧게나마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

오늘 묵상에 흐르는 전체의 '기조'는 철저한 '무반응' 맞다.

그 예수님은 그러기에

그 길고도 지루하고 무섭고 힘든 시간 동안

그 마음에 '죄성'이 발휘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당연히도 그 분은 '죄'가 없는

흠없는 어린 양이다.

 그렇다면 , 저 무지막지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이유로 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런 '무저항', '무 반응'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던가?

 당연히도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이시다.

하나님이 원하심이니 그러시는 것이시다.

도저히 위에 기술한 것 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상상할 수 없는

'인지의 괴리'

즉 , 엄청난 능력자가

가장 무능한 '양'의 도살 같은 태도를 취함이

충격이겠지만

그러기에 인간의 이유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 분은 이유가 너무도 뚜렷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

'도저히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원죄 때문이다' 가

그 답이시다.

 주님의 뜻을 준행하시고

세상의 사람들의 구원을 위함이 너무도 절박하셔서

그 분은 그것을 위해서는

'무저항'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양'으로서의 자신을 드려야 하기에

그 분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나.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비평'당하는 것이다.

내 잘못을 비평당함은 잘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이없는 무지하다 판단되는 자의

'횡포'적 비평에는 견디질 못한다.

분노를 폭팔시킨다. ㅜ.ㅜ;;

 오히려 육신의 아픈 것은 낫다.

놀림 받고 공격 받는 것은 정말 싫었다.

아마도 오랜 상처 탓이리라.

주님의 상황에 날 대입시켜 보면

난, 정말 가능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은 '희망'은 보인다.

 '아..

 하나님의 뜻이시라면.. '

하지만, 내 삶 속에서 부닥치는

내 터부에 대한 좌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매일매일 , 매시간 마다 잊는다.

그러기에

'만일 예수님 같이 주님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합당히 행동하고 생각할 수 만 있다면... '이란 전제에

들어가면서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나.

아직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나의 인격에 새로운 패턴이

아주 느리지만 서서히 생겨가고 있음을

난 잘 알고 있다.

말씀을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생기는

놀라운 평강과 자존감의 상승,

그리고 주님의 위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

 그렇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늘 인지할 수 있는

조금은 더 성장한 상태라면

'무저항'도 가능할 것이란 가능성은 보인다.

 

 오늘 묵상함은 그렇다.

'주님의 무저항을 닮자'

어떤 비판이나 공격이나

어이없는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자.

그리고 그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은혜'로 가능하다... 는 것이다.

 오늘, 고난 주간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목요일이다.

아침 한끼 금식하고 있다.

정말 , 주님의 그 고난...

주님의 그 우리를 향한 거대한 사랑을 비하면

어이없는 착한 일이지만

내 할 수 있는 작은 결단임을 바쳐드린다.

주님.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서라도

나를 조금이나마 이쁘게 보셔서

늘 주님의 뜻 가운데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결심하는

내가 되어갈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적용

1.  인내한다.

  오늘은 어떤 상황에서도 참겠다.

 얼굴도 변하지 않으리라.

 눈빛도 변하지 않으리라.

 말은 하지 않으리라.

 변명의 욕구,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승리 욕심.. 무조건 포기하리라.

  주님의 뜻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기에 그렇다.

 예수님이 겪는 고난이기에 그렇다.

 

2. 성경 여덟장 읽겟다.

 

3.  내일 아침 새벽교회 나가겠다.

 오늘도 늦었다.

 내일은 꼭 그리하려 노력한다.

 

4.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한다.

 

기도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주님의 그 사랑은..

주님

제가 어찌 주님의 그 절정의 인내를 흉내낼 수 있겠습니다.

주님

제가 어찌 가능하여

주님의 그 사랑을 닮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여.

하지만 주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함으로

저 그리 닮아 가게 하소서.

주여

하나님의 뜻이시라면.. 이라는

전제 하나만으로

제 안의 모든 악한 생각들이

봄눈 녹듯이 소멸되어 버리는 경험을

늘 했으면 합니다.

주여.

주님의 그 무저항을 닮을 수 있길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모범이시기에 그러하길 원합니다.

주님.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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